[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28]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
지난달 하순 백종문 MBC 미래전락본부장과 박현명 <폴리뷰> 편집장의 거래를 담은 녹취록이 공개돼었지만 MBC측은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는 문제가 있어서 해고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진척이 없다.
지난 2012년 언론노조 MBC 본부(이하 MBC 노조) 170일 파업을 이끈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여 지난 12일 상암에 위치한 MBC 사옥 내의 노조 사무실에서 백종문 녹취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정 전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MBC, 배째라 식으로 강변하며 뭉개고 있다”
- 지난달 하순 백종문 녹취록이 공개되어 파문을 일으키는데 어떻게 보고 계세요?
“처음에는 ‘사적인 자리에서 있었던 얘기라 코멘트 할 게 없고 입장을 낼 게 없다’고 했다가 그 다음 날 장문의 회사 입장이 나왔는데 바뀌었더라고요.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를 그냥 해고 한 게 아니고 문제가 있어 했다는 건데 백종문 본부장이 스스로 얘기한 녹취록 내용과는 전혀 다른 거여서 놀라웠습니다. 배 째라는 식으로 강변하며 뭉개고 가는 거죠.
녹취를 보며 사실 이보다 솔직한 심경 고백이 어느 공간, 어느 자리에서 있을 수 있겠나 싶었습니다. 법정에 불려 나와도 이런 솔직담백한 자기고백은 하기 힘든 것인데…. 백종문 본부장뿐만 아니라 당시 인사위원이었던 분들의 입장도 함께 드러난 건데, 이건 진실이죠. 뭉갠다고 없어지거나 변하는 게 아니란 말이죠.”
- 왜 그럴까요?
“저희가 직접 찾아가서 어떻게 된 건지, 당사자인 백종문 본부장한테 자초지종을 들어 보자고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가 찾아가서 면담 신청도 해보고 기다려도 보고 했는데 아예 만나질 않으려 하고 어렵게 만나도 묵묵부답 투명인간 취급이고요. 상대하지 않고 무시해서 뭉개는 스탠스로 가는데 왜 그런지는 뻔한 것 아니겠어요? 본인의 입으로 얘기한 걸 바꿀 방법은 없고 그렇다고 확인해줄 수도 없고 노코멘트 말곤 방법이 없겠죠.”
“그런 자리 만든 백종문과 MBC 간부들이 정치공작 주체”
- 사측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공작을 벌인다”고 하던데.
“노조가 문제의 저녁 자리를 만든 것도 아니고. 녹취한 것도 아니고, 녹취 파일 제보를 기획한 것도 아니고, 녹취를 공개한 것도 아니죠. 정치공작의 주체는 그런 자리를 만들고 그런 얘기를 주고받은 녹취록에 등장하는 백 본부장을 비롯한 MBC 간부들이라 하는 게 순리겠지요.”
- 사측은 “이게 2014년 일인데 왜 지금 까냐”라는 거겠죠.
“무슨 빌미든 잡고 싶은데 잡히는 게 없으니 별말 다 하네요. 이런 녹취가 터지면 누가 녹음해서 제공한 거냐에 방점을 찍어 불법행위로 몰아가는 게 전가의 보도인데, 그런 얘긴 없고 2014년 일을 왜 이제야 까느냐는 생뚱맞은 얘기가 들리는 걸 보면 독수독과(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독수)에 의하여 발견된 제2차 증거(독과)의 증거능력은 인정할 수 없다는 이론)가 성립 안 되는 케이스인가 보네요.녹음 파일을 제보한 분에게 따지고 물어야 할 얘기를 노조에 물으니 참 갑갑하네요.
이런 얘기가 이런 식으로 세상에 공개될 줄 그 누가 알았겠어요. 천우신조라고 얘기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선하건 악하건 행위가 드러날 땐 백번 해야, 천 번 해야 한번 드러나는 거지 한번 했는데 바로 세상에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증거 없이 그냥 해고했다는 실증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봅니다.”
- MBC라는 대형 방송사와 극우 인터넷 언론의 부적절한 거래가 녹취록의 핵심 같은데.
“작년에 MBC 구성원들에게 회사가 정보공개서약이란 걸 서명하도록 돌린 적이 있어요. 제가 듣기론 전체사원 중에 2명 빼고 다 했다는데, 말이 자율이지 안 하면 불이익 받을까 싶어 반강제로 서명을 돌린 거더라고요. 회사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시 회사가 개인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서약인데, 사원들에겐 개인정보까지 제공하는 보안 의무를 강요해 놓고 임원과 보직 간부가 회사 정보를 요구하는 극우 인터넷 매체에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준 거죠. MBC에 감사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정보공개서약에 근거해 내사에 착수해야 하고 결과를 구성원에게 공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안 하면 하게 만들려고요.”
“경영진 목소리 들어줄 언론 하나도 없으니 극우매체와 한 것”
- <폴리뷰>라는 매체는 큰 곳도 아니고 아마 우리 국민 99%는 모를 거예요. 그런데 작은 언론사와 거래를 했을까요?
“그건 현재 MBC 경영진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언론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분들도 제대로 갖춘 규모 있는 매체에서 본인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길 바랐을 텐데 없었던 거죠. 규모는 둘째 치고 극우라 평가받는 매체와 하고 싶었겠어요? 언론이란 게 대중적 공신력을 얻으려면 규모보다 중요한 게 이념을 탈피한 정론·직필인데 폴리뷰는 그런 실적도 없고 대중적 인지도도 확보하지 못한 언론사잖아요. 정말 급하고 간절했던 겁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언론이 담고 싶어도 차마 그러지 못할 얘기를 해대니 경영진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매체가 없었던 거지요.”
- 당시 조중동에서는 기사가 어떻게 나왔나요?
“아예 안 다뤘어요. 경영진의 여러 가지 경영행위를 서포트할 수 있는 기사를 써주는 데는 <폴리뷰>가 유일했던 거예요. 녹취를 보면 이분들이 얘기하는 게 ‘노동조합의 얘기는 뭐 한마디만 하면 <오마이뉴스>에도 <프레시안>에도 실리고 하는데 하면서 노조에 우호적인 집단으로 규정하잖아요. 언론으로 규정하지 않아요, 즉, 노조 입장을 실어주는 매체는 노조가 다 작업하고 포섭해서 기사가 그렇게 실리는 거로 생각하는 거죠. 기사를 기록으로 보는 게 아니라 거래에 의한 상품으로 보는 거예요.”
- 녹취록이 처음 나왔을 때 어땠어요?
“심증은 충분했지만, 물증이 없어 ‘그랬을 거야’라고 생각하던 부분을 직접 확인하니 시원하기도 했고 열 받기도 했죠. 저희야 겪어서 생소하지 않은 내용이라 그렇지만, 이거 대중들이 보면 드라마, 영화 만들 때 제안서 단계에 거칠게 쓴 시놉시스를 보는 거 같을 거예요.”
- 녹취록을 보면 라디오나 예능 프로그램까지 좌파 낙인을 찍는 건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같아요.
“ MBC 예능이 좌파 프로그램이고 그걸 만드는 PD들이 좌파라면 대한민국 국민의 다수가 좌파란 건데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긴지 몰라요. MBC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국민에게 당신은 좌파라고 얘기하면 대부분이 ‘뭥미? 뭔 미친 소리?’라는 반응을 보일 겁니다. 이건 내 편 아니면 적, 나와 생각이 다르면 종북좌파라고 규정하는 분들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상식과 논리로 상대의 인정 끌어내지 못할 때 ‘좌파, 종북’ 규정”
- 지난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한창일 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역사학계 99%가 좌파다”라고 했는데 같은 맥락 같아요.
“같은 맥락이고 논리죠. 다양성을 경계하고 싫어하는 분들이 ‘넌 틀린 거야. 맞지 않는 거야’란 말을 하고 싶은데 상식과 논리로 상대의 인정을 끌어내지 못할 때 ‘좌파다. 종북이다’라고 규정하고 자기 얘기를 하는 방식이죠. 레드컴플렉스만큼 지겹고 재미없는 ‘전가의 보도’ 같은 건데 이거 바꾸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은 그림의 떡입니다.”
- 백 본부장은 스스럼없이 프로그램을 통제한다고 말하던데 방송법 위반으로 알고 있어요.
“그건 명확히 방송법 위반이에요. 방송법 4조에 보면 ‘방송편성에 대한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 ‘누구든지 방송통신에 관해서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따르지 않고는 어떤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라고 명문화 돼 있어요. 이분들은 의견충돌 시 누군가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그 주체는 권한을 가진 경영진임을 강조하며 그런 간섭과 통제는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따라서 본인들의 행위는 방송법 위반이 아닌 정상적인 경영행위라고 강변할 거 같은데 그런 식이라면, MBC 경영진을 임명하는 방문진도, 방문진을 임명하는 방통위도, 방통위를 임명하는 정권도 자신들의 생각을 내세워 프로그램에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겁니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자유와 독립이 있는 거고, 그걸 법으로 명문화한 게 방송법인 거죠.”
- 사측은 해고 무효소송서 2:4 정도는 예상한 것 같아요. 그러나 전원 무효가 나와서 멘붕에 빠진 것 같은데.
“증거 없이 그냥 해고한 2명은 어쩔 수 없어도, 확신에 차서 해고한 4명은 해고는 정당이라는 판결을 받을 줄 알았는데 6명 전원이 해고무효를 받았으니 멘붕 왔겠죠. 그것도 항소심까지 퍼펙트하게 해고무효가 나왔으니 멘붕에 멘붕이었겠죠. 본인들이 자초한 거예요. 파업의 원인을 제공한 것도, 파업의 정당성을 갖춰준 것도, 파업으로 인한 해고가 무효로 귀결된 것도 경영진이 기획하고 연출한 결과이죠. 멘붕은 인과응보, 자업자득인 겁니다.”
- 녹취록으로 대법 판결에 영향을 줄 것 같아요.
“그럴 거로 생각합니다. 근거 없이 그냥 해고하는 경영진이 정상적으로 보일 리 없잖아요? 법정에서 우리가 증언했던 내용이 주장이 아닌 펙트로 확인될 테고, 저분들의 주장은 신빙성을 잃을 테니 판결에 영향이 없진 않겠죠.”
- 녹취록에 보면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다”는 내용이 나오던데 자기 돈도 아니잖아요.
“이분들이 평소 회사의 녹을 먹는 자세를 보여 주는 건데 ‘어차피 내 돈 아니고, 내가 손해 보는 거 없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어.’라는 식으로 회사의 공금을 집행하고 있는 거죠. 예산, 조직, 인사권을 가지고 집행하는 분들인데 도덕적으로 엄청난 문제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PD수첩> 방송하며 행복했다는 사람이 임원됐다고 <PD수첩> 잘못됐다?”
- 백 본부장이 지금은 노조를 탄압하는 데에 앞장섰지만 20년에는 <PD수첩>도 제작했고 노조 부위원장을 할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단 거죠. 백 본부장 스스로도 “<PD수첩>을 맡았을 때, 사회적 약자, 즉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 방송하며 많은 시청자가 박수를 쳐줄 때 제일 행복했다”고 술회했던데.
“백종문 본부장은 평생 자기가 걸어왔던 길, 생각이 자기 소신과 철학에 의한 게 아니고 보신과 연명에 기반한 것임을 자인하고 있는 셈이죠. 백 본부장이 96년 정찬형 위원장 시절 편성제작부위원장으로 조합활동을 했죠. 단일노조 1기 집행부였는데, 당시 19개 지역사와 본사를 하나로 묶는 산별노조 개념의 MBC 본부를 태동시킨 집행부였죠. 언론노동조합 MBC 본부를 만든 장본인이죠. 그런 분이 임원이 된 지금 본인이 만든 노동조합 본부 체제와 산별노조개념을 파괴하기 위한 행위를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어요. 완전 자기 부정이죠.
<PD수첩>도 PD가 지녀야 할 자세도 마찬가진데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 방송하며 행복했다고 말하는 PD가 임원이 됐다고 쌍용차 문제, 성 소수자 문제를 방송한 PD수첩이 잘못됐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건가요.”
- ‘시선집중’을 만든 정찬영 TBS 사장은 ‘현재 MBC에서는 제2의 손석희가 나올 수 없다”고 하던데 그건 국가적으로도 손실 아닌가요?
“엄청난 손해죠. 언론인 한 명이 사회를 정화해내는 능력이 사정기관이나 수사기관 등 죄를 징벌하는 기관의 효과보다 훨씬 크거든요. 방송은 사후처방은 물론 예방의 효과까지 거둘 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매체기 때문에 대중이 인정하는 언론인을 양성하는 건 중요한 일이죠. 국가가 가장 적은 비용을 지불하며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언론의 순기능을 활성화 시키는 겁니다.”
“방석호 황제출장, 언론 감시 기능만 제대로 살았어도 안 일어나”
- 최근 방석호 아리랑TV 사장의 행보가 논란이었는데 김재철 사장과 데자뷔인 것 같아요.
“저도 같은 생각 했어요. 금액으로 보면 김재철 사장이 훨씬 크지만, 내용으로 보면 방석호 사장이 가족들도 마음껏 썼고, 동반 여행도 보란 듯이 해서 더 넓더라고요. 그렇게 맘대로 써도 ‘걸리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거나, 주변에 그렇게 쓰는 분들이 많았거나 했을 거예요. 언론의 감시 기능만 제대로 살아 있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안 물러나고 버틴 것에 비해 방석호 사장은 물러난 건 그래도 나은 것 같아요(웃음).
“그런 면에서는 그분이 좀 낫네요(웃음). 결국, 김 사장도 안 물러나고 버티다가 잘리고 법정 가서 배임으로 벌금 2천만 원 실형 선고받은 거죠.”
- 지난 연말 사측이 노조 집행부에 업무복귀명령을 내렸잖아요. 비대위가 꾸려진 것으로 알아요. 2달이 되어가는데 어떤 상황인가요?
“작년 12월 임금협상이 진행되는 중에 상근집행부 5명 전원이 현업근무 복귀발령을 받아 집행부 공백을 메꾸기 위해 비대위에 들어왔는데, 시간 정신없이 지나갔죠. 임협에 단협에 녹취록 사태에 일도 많았고. 현재 위원장과 상근집행부는 개인 휴가를 써가며 조합업무 보고 있고 해직자 중에 저하고 강지웅 PD가 매일 조합으로 출근하며 발령받은 집행부 빈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MBC 경영진은 ‘파업 한번 해보지.’라는 기세로 노사관계를 막장으로 몰아가고 있고요. 회사가 대화를 원하면 대화를 하겠지만, 투쟁으로 내몰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게 노조인데 극단적인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구성원들은 노사 상생을 원하니까요. 주저앉지 않으면 길은 열리고 그렇게 걷다 보면 잘 될 거라 믿으며 파이팅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