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이라고 해서 희망일까. 우는 얼굴이라고 해서 절망일까. 일상을 무던히 수행한다고 해서 멀쩡하고 살 만한 상태인 것일까. 일상을 다 접고 숨을 곳을 찾아들어간다고 해서 진짜 죽으려던 것일까.

스스로의 죽음이라는 극단을 생각하고 기획하고 누군가와 공모까지 한다고 해서 과연 정말 죽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 처절한 몸짓은 절박한 구조 요청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그 신호음을 알아채 주기를 바라면서도 모든 끈을 놓으려 할 때, 어떤 귀 밝은 이들은 그런 나지막한 한숨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렇게 누군가 들어주어야만, 희망도 기적도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기적이란, 절망의 바닥이 희망으로 몸을 뒤채는 놀라운 전환의 순간의 다른 이름이 아니겠는가.

▲ 조창호 감독 '다른 길이 있다' <이미지출처=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조창호 감독의 영화 <다른 길이 있다>(2015)에는 단정한 슬픔이 있다. 슬픔이 단정하다는 말의 의미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이 당사자를 제외한 모든 게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뜻이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지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함부로 침범해 들어오는 불행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차분하다.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소리 내어 말하거나 울부짖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더 잘 ‘일’과 ‘가족’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담담함이야말로 숨죽인 응어리들이다. 얼음장 밑으로 내내 흐르고 있는 물이 한 순간 ‘해빙’을 만나 우는 소리를 낼 때처럼, 자신이 애초에 빠져 들어간 구멍을 찾기만 하면 어떻게든 물 밖으로 기어오르려고 몸부림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속이라 해도, 물 밖이라 해도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얼음장 밑에 그래도 죽지 않은 숨구멍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죽고 싶을 만큼 살고 싶다는 역설, 아무 도리 없지만 방법을 만들어야 하는 잔혹한 모순이 어떤 인생에게는 일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 죽고 싶었던 자리가 곧 몸서리치게 살고 싶었던 흔적일 수도 있다. 섭리란 오묘해서, 끝과 시작은 사실 인간의 힘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더 본질적으로 묻자. 얼음이 맺혔다고 해서 물은 정말 언 것인가. 강 표면이 얼었다고 해서 굳은 ‘땅’처럼 여기며 건너가도 되는 것인가. 건너는 도중에 살얼음에 금이 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만히 있으면 살 수는 있는 것인가. 얼음이 깨지는 그 찰나의 파열음은 왜 그리 서러운 영혼의 울음처럼 낮고 둔중한가.

▲ 조창호 감독 '다른 길이 있다' <이미지출처=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영화 <다른 길이 있다>는 2015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 공식 초청작이다. 7일에는 주연배우들이 GV(관객과의 대화)에서 관객들과 직접 만날 예정이다. 영화제의 공식 설명을 옮겨 줄거리를 적으면 다음과 같다. ‘전신 마비로 누워있는 어머니를 돌보는 딸이 있다. 이벤트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딸은 어느 날 자살을 결심한다. 한편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 있는 남자는 지금 경찰로 일하지만 삶에 의욕을 잃는다. 둘은 우연히 동반자살을 계획한다.’

배우 김재욱과 서예지가 ‘검은 새’와 ‘흰 새’ 두 서글픈 주인공으로 열연한다. 남자는 경찰이고 자기 한 몸 건사는 어찌어찌 된다. 그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것들은 정작 엉뚱한 데서 온다. 한 번도 제 의지대로 생이 굴러가지지 않는다. 그가 손을 뻗을 수조차 없는 곳에서 그의 운명은 결정되고 차곡차곡 진행된다. 저항조차 할 수 없도록.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저 아득한 기억 속 묘하게 빛나던 엄마의 마지막 미소 같은 것이다. 살아보려고 비틀거리다 어떤 살얼음판에서 마주친 두 사람. 그토록 안타까이 희구했던 삶의 끈은 이들을 붙잡아줄 것인가.

▲ <이미지출처=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나는 지난 주말 부산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번째로 본 영화였다. 다른 길이 있다는, 영화의 제목에 끌려서라기보다는 여러 사정 상 볼 수 있는 영화가 한정돼 우연히 고르게 됐다. 그러나 보고 나서 잠시 울컥했다. 좀 과장하자면, 나는 아무래도 이번에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부산까지 내려왔구나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지난해 영화 <다이빙벨>을 공식 초청작으로 불러들인 이후 공교로운 잡음들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온갖 진통을 겪어야 했고 올해는 예산이 절반으로 삭감되는 고통마저 껴안고 진행 중이다. 실제로 부산 현장은 20번째 생일을 맞는 국제적 위상의 영화제 치고는 기대 수준만큼 북적이지는 않는다. 아주 많은 어려움 속에 치러진 이번 영화제는, 20년 역사를 역설적으로 찬찬히 돌아보게 한다.

새라고 늘 날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날개를 접고 쉬기도 해야 한다. 낮은 포복으로 땅을 기면서 살아도 새는 새다. 물이 내는 숨구멍 소리, 그 묘한 울음소리가 영화 내내 묘한 긴장과 아울러 위안을 주며 흐른다. 얼어 죽은 것 같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고,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소리를 내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