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승민 찍어내기’ 앞장서며 ‘박근혜 통법부’ 자임한 ‘친박’
국회법 거부권 행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한 사실상 ‘찍어내기’ 가까운 공개 비난과 함께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친박 의원들을 보고있자니 자꾸만 ‘기시감’이 든다.
지난 25일 박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 여야 합의 추진의 주역이었던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 심판 해달라’ 등의 독한 발언을 쏟아냈다.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한 마디로 ‘나 때문에 국회의원 당선된 네가 감히 이제 와서 나한테 반기를 들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들을 미루어 볼 때, 자당 의원들을 입법부의 구성원이자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자신의 은혜를 입은 아랫사람’ 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총, 칼 앞세운 쿠데타로 세워진 정권 유지를 위해 독재철권을 휘두른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유년시절부터 지근거리에서 보고 자랐다는 점과 권력자 스스로 ‘권력의 칼 휘두르기’를 자제하기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감안 하더라도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재회부해 표결도 해보지 않고 아예 자동폐기 시키겠다는 당론을 정한 새누리당도 이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유승민 찍어내기’ 돌격대 친박, ‘유정회’와 뭐가 다른가?
또 박 대통령의 거친 발언 이후 친박계 좌장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의 ‘유승민 원내대표직 사퇴’ 촉구를 신호탄으로 김태흠, 이장우 등 두 초선 의원이 총대를 메고 나서서 ‘유승민 찍어내기’의 행동대장을 자임한 것도 그렇다.
이장우 의원은 지난 25일 이후 하루에 한 번꼴로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유승민 사퇴’를 촉구했다.
심지어 김태흠 의원은 29일 <YTN 라디오 최영일의 뉴스!>에 출연해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해서 유 원내대표가 사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저희(친박 의원)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의원총회를 소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한 유 원내대표나 ‘사과 했으니 사퇴까지 할 필요 있냐’고 하던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의 입장이 강경하자 주말을 기점으로 ‘대통령을 이길 순 없지 않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도 친박 의원들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를 두고 29일 김 대표는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하자 ‘비박’ 재선 의원 21명이 ‘유승민 찍어내기 중단촉구’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스스로 행정부의 통법부임을 자임한 새누리당의 일련의 행태는 ‘아버지 박정희’를 연상시키는 박 대통령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격렬하게 ‘유승민 찍어내기’ 행동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친박’의원들을 보자니 유신시절 ‘의회 굴욕’의 상징이었던 ‘유정회’가 떠오른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선포한 유신헌법에 따라,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추천하면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승인‧선출하였다. 이렇게 국회의원이 된 의원들이 만든 단체가 ‘유신정우회’였다.
탄생배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유정회는 유신체제를 지지하고 박정희의 의지를 정치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국회 출장소’역할을 아주 출중히 해낸 단체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새누리당 내의 소위 ‘친박’ 의원들의 행태를 보자니 자꾸 떠오르지 말아야 할 ‘유신의 추억’이 떠오른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를 하든 말든 그 과정에서 보여준 이들의 행태는 ‘유정회’를 충분히 능가하고도 남을 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