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일이 지났다. 그 사이 달력은 2장 밖에 남지 않았고, 계절은 초겨울 문턱에 들어섰다. 서울 청운동 농성장을 지키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옷도 얇은 반소매에서 두툼한 겨울옷으로 바뀌었다. 열 평 남짓한 비닐 천막에서 가족들은 짐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걸려있던 걸개를 떼고, 노란우산을 한 켠으로 모으고, 아이들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떼 상자에 담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며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농성해온 세월호 유가족들이 농성 76일째인 5일 천막 농성장을 철거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이하 가족대책위)는 이날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고 “농성기간 동안 유가족들을 응원해주신 국민들과 주민들의 도움이 있어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강주희

가족대책위는 “언제든 찾아오라는 대통령의 말만 믿고 76일간 이 곳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이렇게 철저히 외면 당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대통령에게 아프다고, 서럽다고, 눈물을 닦아 달라고 애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오늘 청와대의 무심함과 이웃과 국민의 정을 느꼈던 청운동을 떠난다”며 “대통령으로 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 왔는데, 그 보다 더 크고 위대한 주민들과 국민들의 위로와 응원만을 가슴에 가득 채웠다. 앞으로 광화문과 전국 방방곡곡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회는 오는 7일 특별법을 통과시킬 예정인데 많이 미흡하지만, 그마나 이 정도라도 만들어 진상규명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국민들 덕분”이라며 “아이들의 억울함을 진상규명할 길은 험난하겠지만 끝까지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강주희

유가족과 함께 청운동 농성장에서 상주한 이윤상 목사는 76일간의 소회를 밝혔다. 이 목사는 “생전 아이들이 좋아하던 반찬이라도 먹는 날에는 유가족 모두가 눈물에 젖은 밥을 먹었다. 대통령에게 모진 외면을 받고 경찰에게 둘러싸여도 가족들은 끝까지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 곳에서 버텨왔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씨는 “더 이상 대통령을 기다리지 않겠다”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권씨는 “세월호 유가족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지만.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며 “유가족들은 자식이 있는 평범한 부모들의 행복을 이제 못 느끼겠지만 국민들이 그 행복 보여주면 가족들은 꿋꿋히 일어난다”라고 전했다.

▲ ©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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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대책위는 지난 7월 12일부터 국회에서 117일째, 광화문에서는 7월 14일부터 115일째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오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특별법이 합의대로 통과되는지 지켜본 뒤 국회 본청 앞에 있는 농성장을 철수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반면 광화문 농성장은 계속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