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강만수 기재부 장관 물러나기 전 보고서 통째로 사라져”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 시절 한국투자공사가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에 2조원을 투자했다가 1조원대 손실을 본 사건과 관련, 투자과정을 둘러싸고 수많은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데 KBS가 의혹의 실마리를 풀 당시 회의록을 입수했다.
13일 KBS <뉴스9>는 메릴린치가 15조 원대의 손실을 봤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2008년 1월 열린 한국투자공사의 운영위원회 회의록을 입수했다면서 내용을 소개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회의 초반 분위기는 대부분 위험한 투자라며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학교수는 “경영권도 못 얻어 전략적 가치가 없는데다 투자 규모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고, 투자공사 임원도 “의사록에 내가 반대했다는 내용을 분명히 기록해달라”고 요청했다.
심지어 법무법인의 한 운영위원은 “절차까지 어기며 추진할 이유가 있는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회의가 반대 분위기로 흐르자 줄곧 투자를 주장해온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심의관이었던 조인강씨는 정회를 요청했다. 그리고 15분 뒤 재개된 회의장 분위기는 180도 바뀌면서 만장일치로 찬성이 결정됐다.
결국 이런 회의과정을 거쳐 메릴린치가 우리나라에 자금을 요청한 지 단 일주일 만에 2조원이 넘는 나랏돈을 투자하는 결정이 내려지게 된 것.
조인강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심의관은 “국익을 위한 일이었습니다”라고 <KBS>에 해명했다.
하지만 너무 쉽게 투자를 결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김상조 교수는 “개인이 해도 일주일만에 할 수 없고, 너무 성급한 결정으로 공기업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아홉 달 뒤 메릴린치는 결국 미국 은행 BOA에 헐값에 팔렸고, 당시 한국투자공사가 입은 손실평가액은 1조원을 넘었다.
<KBS>는 또한 거액 투자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 한국투자공사 관계자들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에 계획을 사전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투자공사 특별 감사에서 해당 내용은 통째로 빠진 것으로 드러나 의문을 낳고 있다.
메릴린치 투자 실패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 제기됐던 지난 2008년 10월, 한국투자공사는 자체 특별 감사에 착수했다. 투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이들은 조사한 뒤 1차 감사 보고서는 석달 만에 나왔다.
이 보고서에는 투자 결정이 내려지기 이틀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과 재정경제부 관료들이 대통령직 인수위를 찾아가 강만수 인수위원과 최중경 전문위원에게 보고한 사실도 포함됐다.
강만수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은 <KBS>에 “우리는 그 때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용을.. 잘 모르는 내용입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내용을 포함한 1차 보고서 상당부분이 한 달 뒤에 다시 작성된 2차 보고서에는 통째로 사라졌다. 당시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가폭등 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무렵이다.
한국투자공사 관계자는 기재부 관계자들이 인수위 보고 내용을 포함한 투자결정과정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국회 기획재정위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권력형 비리”라며 “정권 교체기에 권력형 비리가 있다는 의혹을 씻을 수 없다”고 의혹에 대해 따져봐야 할 것을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