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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안 그래도 비 맞으면서 순례하고 싶었는데 소원 이룬거지 뭐”

지난 18일은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이 11번째 아침을 맞은 날이다. 이른 새벽부터 짙게 피어오른 물안개 속에 순례단은 전북 김제시를 향했다.

오전 5시 20분 전날 도착지점이었던 전북 목천동 목천교차로에서 출발한 순례단은 오전 8시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라는 난관을 만났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에 순례단의 옷은 금새 젖어버렸다. 폭우는 천둥 번개까지 동반해 순례단을 긴장시켰다. 바로 옆 도로에선 덤프트럭들이 빗물을 튀기며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이날 오전에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호남 일부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됐다. 순례단이 있었던 전북 익산은 시간당 20mm의 강한 비가 쏟아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쏟아지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순례단은 예정대로 23번 국도를 따라 행진을 이어갔다. 순례단 선두에 선 이호진씨와 김학일씨는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며 묵묵히 걸음을 내딛었다.

1시간 가량 폭우를 맞으며 행진한 순례단은 인근 자동차 정비소에서 겨우 비를 피했다. 편안한 실내가 아닌 기름 냄새가 나는 장비 작업장 안으로 순례단은 빗물에 젖은 발을 털며 들어갔다. 정비소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두 아버지의 의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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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씨는 순례단과 떨어진 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먼 곳을 응시했다. 슬레이트 지붕을 요란스럽게 때리는 빗소리에 그는 젖은 옷을 털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흙탕물이 묻은 신발 옆에는 정비소 직원이 건내준 자판기 커피가 있었다.

그는 “온 몸이 비에 다 젖었다. 우비나 우산이 없었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우비가 없어 그냥 비를 맞았다”고 짧게 답했다. 그러면서 “웅기 아버지(김학일씨)와 비 맞으면서 순례하고 싶었는데 지금 그 소원 이루어져 좋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 씨는 “더운 것 보다 시원하게 비를 맞으며 걷는 게 더 도움이 된다.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바람까지 불면 자동으로 마르니 얼마나 좋냐”라면서 “우리 때문에 비 맞아서 어떻게 하냐”며 취재진을 걱정했다.

하지만 이씨가 마냥 비를 반가워 한 것은 아니다. 늘 가슴에 걸고 다닌 승현군의 사진이 빗물에 젖기 때문이다.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던 그는 “승현이가 아빠랑 같이 비를 맞았다. 빗물 때문에 코팅한 사진이 조금씩 번져서 다시 코팅을 해야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한편 순례단은 21일 하루 순례 일정을 중단하고, 22일 오전 5시 20분 전북 고창 세곡삼거리에서 순례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