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백마부대 중위였던 이지문씨는 군의 부재자 투표 부정사례를 세상에 폭로했다. 그의 데뷔작인 ‘공익의 호루라기, 내부고발’에는 당시 제14대 총선 부재자투표 과정에서 군부대가 공개투표, 정신교육 등을 통해 병사들에게 민주당 지지를 강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부당한 장면에 이씨는 호루라기를 불었고, 결국 징계를 받아 중위로 전역했다.

그로부터 11년 후, 한국공익신고지원센터장이 된 이씨가 번역한 책 ‘민주주의 구하기-미국에서 날아온 하나의 혁신적 개혁모델’이 세상에 나왔다. 책은 오늘날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를 사라진 시민들의 목소리라고 지적한다. 국민의 호루라기 소리가 더이상 정치판에 들리지 않는 얘기다.

▲ ©글항아리

미국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 민주주의연구센터의 연구위원이자 이 책의 저자 케빈 올리어리는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겪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시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정치적 딜레마를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올리어리는 ‘미국 정치학계의 좌장’인 로버트 달 예일대 교수의 민주주의 이론을 사사한 ‘예일학’파다. 갈등하는 집단들의 사회적 균형이 현대 민주주의 핵심이라 꼽는 스승에 영향을 받은 듯 저자는 “지역 민회가 정치인과 시민들의 틈을 메우는 길”이라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가 제시한 방법은 바로 미국의 전통적인 타운 홀(Town hall).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정부가 직면한 쟁점들을 심의하기 위해 현재 미국 하원의원의 선거구를 100개의 구로 바꿔 구 마다 한 명씩 추첨한다. 하원선거구 마다 100명으로 구성되는 지역민회를 만드는 것이다.

지역민회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면 지역민회 네트워크를 만들어지면 기존 상·하원과 함께 삼원제 의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를 “엘리트의 손에서 다시 시민의 품으로 민주주의를 돌려놓는 매우 현실적인 방법”라고 말한다.

올리어리는 “지역 민회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면, 즉각적으로 답변하는 여론조사과 다른 이점이 있다”며  “구체적인 정보에 근거한 지역민회의 견해로 선거에 선출된 공직자들과 언론은 주의 깊게 볼 것이고, 대중들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을 옮긴 이지문 씨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정치에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기 위한 제도로 한국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