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차주일] “시인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슬픔”

추모시 <씨발>.. 학부모·시민 1박 2일 촛불행진서 낭독

학부모와 시민들의 촛불행진이 7일 저녁부터 1박 2일로 진행됐다. 사진은 창동역을 출발해 광화문으로 향하는 학부모들 ⓒ'트위터(이계덕 기자)'
학부모와 시민들의 촛불행진이 7일 저녁부터 1박 2일로 진행됐다. 사진은 창동역을 출발해 광화문으로 향하는 학부모들 ⓒ'트위터(이계덕 기자)'


씨발!

- 팔과 주먹으로 만든 느낌표가 붙어 있는 단어

시를 사랑하지 않고
시를 신앙으로 섬기며 살아온 지 십여 년
시인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슬픔과 맞닥뜨렸습니다.

차주일 시인
차주일 시인

며칠간 수천 페이지를 넘겨대던 바다가
젊은 시신 한 구를 수평선 위에 펼쳐놓았습니다.

나는 처음 보는 이 단어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허둥댑니다.

침묵이라는 앞표지와 통곡이라는 뒤표지 사이를 샅샅이 훑어보지만
시신은 여전히 내 눈동자에서 출렁거리기만 하고
바다는 두꺼운 사전을 덮어 또 한밤이 깊어집니다.

시신의 몸뚱이 옆에
팔과 주먹으로 만든 느낌표가 붙어 있습니다.

죽었어야 할 손이 살아남았어야 할 주먹을 펼쳐 읽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안 젊은이가
제 마지막 입모양과 마지막 표정이 썩은 뒤 발견될 거라는 생각에
엄마와 아빠가 제 얼굴 찾아 헤맬 거라는 생각에
죽음 이후에도 썩지 않는 주먹으로 학생증을 쥐어 외친 한마디

“엄마! 아빠! 나야!”
“나 여기 있어!” 라고 외치는 그 주먹의 말 한마디

나는 내 몸속 어디에 비통이라는 단어가 있는지 몰라
맞닥뜨린 슬픔을 써낼 수 없습니다.

어찌해야 저 문장을 써낼 수 있을까 중얼거립니다.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릴 때
파도소리가 들립니다.
젊은이가 살아생전 돌아다니며 가장 많이 쓰던 말이 들립니다.
씨발, 씨발, 씨발……

지금 살아남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젊은이에게도 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더러운 세상이었나 봅니다.

젊은이의 말을 따라 해 봅니다.
물속에서 절규하는 단어들의 입모양을 따라 해 봅니다.
씨발, 씨발, 씨발……

침묵과 통곡의 중간 자리에서 비통이 출렁거립니다.
이제, 이 세상을 걱정하다가 돌아간 한 젊은이의 말을 빌려
시인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던 슬픔을 써낼 수 있겠습니다.

그 문장은 젊은 시신의 팔과 주먹을 빌려다
느낌표로 찍어야만 완성되는 한 단어입니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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