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시 <씨발>.. 학부모·시민 1박 2일 촛불행진서 낭독
씨발!
- 팔과 주먹으로 만든 느낌표가 붙어 있는 단어
시를 사랑하지 않고
시를 신앙으로 섬기며 살아온 지 십여 년
시인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슬픔과 맞닥뜨렸습니다.
며칠간 수천 페이지를 넘겨대던 바다가
젊은 시신 한 구를 수평선 위에 펼쳐놓았습니다.
나는 처음 보는 이 단어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허둥댑니다.
침묵이라는 앞표지와 통곡이라는 뒤표지 사이를 샅샅이 훑어보지만
시신은 여전히 내 눈동자에서 출렁거리기만 하고
바다는 두꺼운 사전을 덮어 또 한밤이 깊어집니다.
시신의 몸뚱이 옆에
팔과 주먹으로 만든 느낌표가 붙어 있습니다.
죽었어야 할 손이 살아남았어야 할 주먹을 펼쳐 읽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안 젊은이가
제 마지막 입모양과 마지막 표정이 썩은 뒤 발견될 거라는 생각에
엄마와 아빠가 제 얼굴 찾아 헤맬 거라는 생각에
죽음 이후에도 썩지 않는 주먹으로 학생증을 쥐어 외친 한마디
“엄마! 아빠! 나야!”
“나 여기 있어!” 라고 외치는 그 주먹의 말 한마디
나는 내 몸속 어디에 비통이라는 단어가 있는지 몰라
맞닥뜨린 슬픔을 써낼 수 없습니다.
어찌해야 저 문장을 써낼 수 있을까 중얼거립니다.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릴 때
파도소리가 들립니다.
젊은이가 살아생전 돌아다니며 가장 많이 쓰던 말이 들립니다.
씨발, 씨발, 씨발……
지금 살아남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젊은이에게도 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더러운 세상이었나 봅니다.
젊은이의 말을 따라 해 봅니다.
물속에서 절규하는 단어들의 입모양을 따라 해 봅니다.
씨발, 씨발, 씨발……
침묵과 통곡의 중간 자리에서 비통이 출렁거립니다.
이제, 이 세상을 걱정하다가 돌아간 한 젊은이의 말을 빌려
시인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던 슬픔을 써낼 수 있겠습니다.
그 문장은 젊은 시신의 팔과 주먹을 빌려다
느낌표로 찍어야만 완성되는 한 단어입니다.
씨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