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된 배를 버리고 선장이 먼저 도망가는 나라
우리가 진정 애도한다면
얼마 전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쓰신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노명우 선생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들려주는 독일의 유학 생활과 사회보장 제도 얘기를 들으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독일의 백화점들은 일요일에 문을 안 연다고 합니다. 노명우 교수 말씀하시길 처음엔 그 시스템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런 규칙이 왜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면서 뼈가 시린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서비스업 종사원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존중해야만 하는 사생할이 있다, 그러니 영업시간 준수하자는 겁니다. 그 때문에 백화점은 평일 6시에 닫고 목요일에만 연장해서 8시까지 영업하고 토요일은 오전에만 열고 일요일은 슈퍼마켓도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도 우리랑은 정 반대로 연장 운행이 아니라 일찍 막차가 끊어지는데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운전하는 사람들도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내야 하니까. 덕분에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자기 시간이 생기게 된 거죠. 이런 게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서 정해졌다는 게 놀랍지 않습니까? 모두가 조금씩 불편하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이 개선된다는 것. 독일 사람들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런 규칙들을 만들고 스스로 만든 규칙이기에 그걸 매우 잘 지킨다고 합니다.
만약 독일에서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면 초기 언론들이 잘 알아보지도 않고 떠벌인 것처럼 ‘전원 구조’ 됐을지도 모릅니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고 아예 사회적으로 누구나 보장받을 수 있는 있도록 스스로 법과 규칙을 만들고 그걸 또 누구보다 잘 지키는 사람들이니까요.그런데 한국은 어떤가요? 어린 학생들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는데 선장이 제일 먼저 도망가는 나라입니다. 그 와중에 60개나 되는 구명보트는 겨우 한 개만 펼쳐졌습니다. 구명조끼도 터무니없이 모자랐습니다. 그 때문에 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죽거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침몰 당시 구조하러 온 미군 헬기를 우리 군이 돌려보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의 재난시스템은 정부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었고, 언론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미국의 CNN이 저온에서 생존자들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방송하는 동안 MBC는 보험금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도표로 설명하고 KBS는 대통령 동정을 살폈다는 군요. 아이들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부끄럽고 슬픈 세상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이 모양일까요? 선장이라는 인간은 제 목숨 먼저 건지고 병원에 누워 태연히 젖은 돈을 말렸다고 하더군요. 돈, 돈, 돈…. 돈 버는 것 말고는 이 사회에 대해서 아무 관심도 없고 배려도 할 줄 모르는 비상식적인 어른들 투성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비양심적인 어른들에게 세상을 맡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 죄도 없이 언제든 희생당 할 수 있는 가여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차마 고인의 명복 어쩌구 하는 소리는 못 하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얘들아, 천국에서는 낮잠을 잘 수 있대. 숙제도, 입시 준비도, 취업 준비도 안 해도 돼. 가족들과 친구들을 못 보는 슬픔이 있겠지만 그들이 널 늘 생각하고 그리워 할 거야. 그리고 우리도 이 잘못된 나라를 우리 힘으로, 우리 손으로 고치는 일에 예전보다 더욱 더 힘 쓸게. 너희들의 무고한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말이야.”
앞서 얘기한 <세상 물정의 사회학>은 어른들이 만든 이 사회는 결코 아름답지만 않다고 얘기하는 책입니다. 내 목숨 하나 보존하기도 힘든 무시무시한 세상이죠. 추하기도 합니다. 크고 작게 추잡스러운 자들만이 이 사회의 부와 안전을 누리고 산다고 생각하면 치가 떨리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제 목숨, 제 밥그릇만 챙기는 어른들이 ‘괜찮을 거다. 그러니 동요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고 무고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천천히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어떤 분은 트위터에 “침몰한 세월호뿐 아니라, 어쩌면 한국 사회 전체가 침몰하고 있으며, ‘침착하게 제자리를 지켜라’는 윗사람들 말만 믿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니냐’는 글을 올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더 이상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됩니다. 다행히 한국 사회가 아직 완전히 침몰한 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침몰과 함께 익사하기 전에 잘못된 것들을 우리 손으로 고쳐야만 합니다. 너무 요원한 일이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독일이란 나라는 역대 최악의 독재자와 가장 야만적인 학살의 역사 속에서 재탄생한 나라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더 안전한 나라, 서로를 배려하는 더 아름답고 합리적인 나라, 노동 시간은 짧고 삶의 질은 더 높은 좋은 나라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세월호와 함께 사라진 아이들의 희생에 답하는 성숙한 어른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무엇부터 할까요? 그 고민이 아마도 먼저일 겁니다.
참고로 제가 여러분이라면, MBC와 KBS, 그리고 사고 초기 사실 확인도 안 하고 ‘전원 구조’ 라는 뉴스 내보낸 매체(대표적으로 <연합뉴스>) 신문 안 볼 겁니다.
두 번째는 박근혜 정부에게 책임을 물을 겁니다. 박근혜 씨가 적극 도운 이명박 정권이 20년 수명의 배를 10년 더 운행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하고, 이명박 정권이 국정원 선거 개입․ 댓글 활동까지 묵인하며 탄생시킨 반민주적인 박근혜 정권의 방만하고 무능한 사고 대처 능력 때문에 이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세 번째, 오는 지방 선거에 관심 가질 겁니다. 제도를, 정책을 바꿀 수 있는 건 성숙한 시민 연대가 먼저, 그 다음은 시민 연대에 의한 선거 결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박근혜 대통령에게 항의 하는 유가족들을 행해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 했던 정몽준 의원 아드님과 그의 가족 정서에 대해 고민해 볼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