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교육부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국정 교과서 체제’ 회귀 움직임에 대해 역사∙역사교육 학자들은 절대 다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12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진보와 보수를 모두 포함해 역사교육학회ㆍ한국고대사학회ㆍ한국근현대사학회ㆍ한국역사연구회ㆍ한국현대사학회의 5개 학회 임원을 맡고 있는 학자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33명 중 단 1명을 제외한 32명(97%)이 국정 체제 전환에 반대했다.

이들 대부분은 북한 등 극소수 국가에서만 사용하는 국정 교과서는 “군사정권에서나 하던 제도로 다양한 역사해석을 가로막고 우리나라 국격에도 맞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정연태 한국역사연구회장(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은 “국정 체제로 바뀌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역사교육의 정치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정권에 따라 교과서가 좌지우지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심지어 역사왜곡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 공주대 역사교육과 이명희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현대사학회의 한 이사조차 “정권에 따라 역사 서술이 바뀔 수 있다”며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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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의 핵심인 다양한 해석을 가로막는다는 의견도 많았다. 익명의 한 교수는 “자라나는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자신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하는데 국정체제에선 불가능하다”며 “역사교육 제대로 하는 나라엔 국정체제는 없다”고 말했다.

편수 전담조직을 부활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도 79%(26명)가 “정부의 개입이 과도해 져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며 반대했다.

“교과서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는 정부의 견해에 동의한 이는 15%(5명)에 그쳤다. 동국대 역사교육과 한철호 교수는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ㆍ자치성마저 위반하는, 시대를 역행하는 조치”라고 <한국일보>에 말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나머지 7종 교과서가 오히려 좌편향이라는 보수 진영의 주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 29명(88%)은 “좌편향이라고 볼 수 없다”고 답했다.

경상대 역사교육과 권오현 교수는 “역사학계의 최신 성과를 충실히 반영한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됐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목적을 갖고 매도하는 행위”라고 일축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검인정제도 자체보단 국사편찬위가 제 역할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33명 중 25명(76%)은 “현행 검인정제에 문제가 있다”면서도 ‘검인정 강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연세대 사학과 하일식 교수는 “군사독재 미화 등 과거 국정 교과서의 폐해를 고려한다면 검인정 과정 강화 쪽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검인정제도 자체의 문제보다 교육부로부터 역사 교과서 검정을 위임받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역사교육학회 소속의 한 교수는 “지난해 10월 정부가 우편향 인사를 위원장에 앉히면서 국편조차 정파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며 “학계의 중론과 달리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 합격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사도 다른 교과목처럼 교육과정평가원에 검정을 위임하거나, 정치적 입김이 미치지 않는 독립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편수조직을 만들려는 교육부의 방침에 전문가들 다수가 “정부 개입을 줄여야 한다”며 반대하는 이유와 같다.

한 교수는 “집필기준, 검정지침 등에서 너무 세부적인 것까지 규정해 오히려 집필에 간섭하는 셈인데, 일선 학교의 채택과정마저 교사들에게 맡겨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