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 외치며 분신.. “촛불 아닌 횃불 되겠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국정원 대선 개입 등에 대한 특검 도입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고 이남종 씨의 영결식이 4일 오전 9시 30분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다.
영결식에는 약 1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다. 또한 박영선, 양승조, 우원식, 이종걸, 정청래, 남윤인순, 이학영 민주당 의원들과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등 정치권 인사들도 참석했다.
특히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와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씨,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도 함께해 이씨의 죽음이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이었다는 점을 대변해주었다.
영결식은 기독교 예배로 시작됐다. 예배에서 종교인들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이명박 구속과 박근혜 사퇴를 촉구하는 개신교평신도시국대책위원장 김동한 장로는 “정의를 위해 고난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내어 놓으면서까지 실천한 고 이남종 열사는 예수살기를 몸 바쳐 실천한 작은 예수”라고 말했다.
김 장로는 이어 “가짜대통령 박근혜 독재정권 하에서 1년 동안 전전긍긍하며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땅의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 시민사회단체 운동가들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에게 그 공포와 두려움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일어서라고 절규하신 고 이남종 열사의 그 죽비소리를 정언명령으로 이어받아 이명박 구속과 박근혜 사퇴를 관철시킬 수 있도록 힘과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한국기독교 장로회 원로목사인 문대골 목사는 ‘거룩한 제물’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성서가 요구하는 최선의 제사는 몸으로 드리는 것”이라며 “이남종 열사의 죽음은 분신도 자살도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제물로 쓰신 것이다. 그래서 그 죽음이 귀하고 거룩한 것”이라 강조했다.
문 목사는 이어 “이런 이남종 열사의 거룩한 죽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있다”며 “여기 모인 우리는 열사의 죽음을 성성(聖性)을 지킬 책임이 있다. 열사의 죽음을 훼손하려는 무리들의 만행을 절대로 좌시할 수 없다”고 경고하며 경찰이 이씨의 분신 동기를 개인적 채무 등으로 몰고 간 것을 비판했다.
문 목사는 “경찰은 보도자료를 내기 전 이미 이남종 열사의 일기장을 확보하고 있었다. 분신의 참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경찰이 열사의 유서를 가지고 장난을 친 것”이라 주장했다.
문 목사는 설교 마지막에서 ‘여러분 공포와 두려움 제가 가지고 갑니다. 여러분 일어나십시오’라고 밝힌 이씨의 유서를 언급하며 “이제는 우리들 모두가 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박석운 국정원 시국회의 공동대표는 이날 조사(弔詞)에서 “(고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국가기관에 의한 총체적 관권부정선거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적 특검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은 아직도 관권선거 부정과 수사방해 공작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도리어 민주파괴, 공약파기, 민생파탄 만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피눈물을 삼키며 열사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지만, 관권부정선거의 진상을 축소·은폐하고 수사방해 공작을 일삼는 박근혜 정권과 정면 대결하는 제2단계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로 규정했다.
그는 “만일 박근혜 정권이 특검도입을 통한 진상규명 요구를 계속 거부하고 수사방해 책동을 지속한다면, 우리 국민들 모두가 나서 박근혜 정권의 퇴진 투쟁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공동대표와 함께 장례위원장을 맡은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도 “박근혜 정권은 공무원 노조, 전교조에 대해 이성 잃은 탄압을 했고, 국민이 지지하는 철도노조의 민영화 저지 파업을 불법으로 내몰았고, 급기야 한국노동운동의 심장이자 노동자들의 영혼인 민주노총까지 침탈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며 “이 사회는 민주주의, 인권도 내다버린 비정상 그 자체”라고 규탄했다.
신 위원장은 이어 “이남종 열사가 외친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는 현재 민주노총 요구와 다르지 않다”며 “이제 우리는 더욱 거세게 몰아친 광풍에 흔들리는 촛불이 아닌 횃불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조사 낭독이 끝나고 연단에 오른 이남종 씨의 동생 이상영 씨는 “(형의 죽음을) 아직도 믿기 힘들다”며 “형을 떠나 보내야하는 슬픈 현실에서도 저희 유족들과 함께 눈물 흘려준 국민들에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 씨는 이어 “박근혜 대통령께 묻습니다”며 “국정원 댓글 사건이 개인적 일탈이라고 주장하듯이 제 형님의 죽음도 개인 일탈입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와 결핍을 알기는 하시나요”라고 반문했다.
특히 이 씨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인 독주 시대를 멈추고 국가기관의 시녀화에 사죄하십시오”라고 촉구했다.
한편 영결식이 진행되는 도중 이 씨가 분신했던 고가도로 위에서 한 시민이 ‘국정원 특검 실시’라는 플랜카드를 내걸고 “박근혜 퇴진”과 “특검실시”를 외치고 사라졌다. 경찰은 이 플랜카드를 철거했다.
또 일부 시민들은 이 씨의 분신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며 <KBS>와 <MBC> 뉴스 카메라를 영결식장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KBS>는 1일 이씨가 사망한 후 2일 ‘뉴스9’에서 ‘간추린 단신’으로 보도했으며, <MBC>는 1일 아침 ‘뉴스 투데이’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특검’ 요구...분신 소동”으로 짧게 처리했다.
영결식이 끝나자 고인의 시신은 고향인 광주로 옮겨졌다. 오후 3시 30분 광주 금남로에서 노제가 열리며 오후 5시 광주 망월동 민주 묘역에 안치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