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백발 투사의 목소리 ‘쩌렁쩌렁’

백기완 선생 첫 시 낭송회.. ‘新유신 파시즘’ 저항선언문

‘진보운동의 산 역사’이자 평생을 민중과 노동자들을 위해 길 위에서 싸워온 백기완 선생의 생애 첫 시낭송회가 열렸다.

29일 저녁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시 낭송회는 선생이 그간 살아온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권력에 부당하게 탄압받는 약자들과 함께해온 선생의 시 낭송회에는 일반 시민들과 쌍용차 해고노동자,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도 함께했다.

낭송회는 총 250여석의 공연장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 통로는 물론 무대에까지 관객들이 둘러앉아 전통 마당놀이를 연상시켰다.

ⓒ 'go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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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공식 명칭은 시낭송회였지만 백기완 선생은 ‘시’라고 하지 않고, ‘비나리’라고 불렀다. 백 선생은 낭송에 앞서 “시는 글을 아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서 세계를 글로 써놓은 것이다. 그럼 글을 모르던 절대다수 무지렁이들이 시적인 감응이 없었겠는가. 아니다. 시적 감응을 입과 온몸으로 그렸다. 그것이 비나리”라고 말했다.

즉 비나리는 민중의 언어로 민중의 감정을 표현하던 생활 속의 시 형식인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자본과 권력에 짓눌려 자신의 언어와 표현을 가질 수 없는 이들의 염원을 모으는 형식으로 이런 ‘비나리’ 정신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 선생의 생각이다.

낭송회의 ‘투쟁하는 노동자 합창단’이 ‘민중의 노래’를 부르며 시작됐다. 이들은 쌍용차, 기륭전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콜트 콜텍, 전교조, 공무원 노조 등의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합창단이다.

이날 선생이 낭송한 비나리는 <아, 따끔한 한 모금>, <그렇다 시작이다>, <한자락 시여 한바탕 노래여>, <나는 그때 왜>, <묏비나리> 등 15편이었다.

이 중 <나는 그때 왜>는 선생이 어려웠던 시절 넋두리처럼 했던 유언을 담은 비나리다. 특히 “아 이럴 수가. 인류의 역사 3백만 년 처음으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돈의 노예, 돈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쇠줄을 꿰어 소처럼 끌고 가는데, 예술이여! 철학이여! 생각이여! 왜들 가만히 있는 건가. 왜들 가만히 있어!”라는 선생의 외침이 담긴 <한자락 시여 한바탕 노래여>는 당대를 마주하는 선생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비나리다.

선생은 “요즘 내가 노동자들이 몸부림치는 현장이나 촛불집회에 나가서 외치는 것처럼 나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도사려 있는 비나리”라고 설명했다.

그 유명한 <묏비나리>도 낭송됐다. 이 비나리는 80년 광주를 상징하고 이후 수많은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불린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시(原詩)이다. 비나리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세월은 흘러가도/구비치는 강물은 안다/벗이여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라/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일어나라 일어나라/소리치는 피맺힌 함성/앞서서 나가니/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는 부분이 노랫말로 옮겨졌다.

ⓒ go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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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비나리 낭송에 송경동, 심보선, 진은영 등 젊은 시인들이 함께 연대시를 읊었다. 이 중 송경동 시인은 지난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 해결과 당시 크레인에서 고공 농성 중이던 김진숙 지도위원을 위해 최초로 희망버스를 제안했다.

이들은 <이 시대 저항에 대하여>라는 연대시에서 민중의 투쟁을 “몰아치는 비람 속에서, 눈보라 속에서 저항조차 하지 않으면 어떤 삶의 의미도 찾을 길 없는 헐벗은 자들의 절규와 몸부림”이라 말했다.

이들은 이어 “봐. 밀양의 할매 할배들을. 봐. 강정의 주민들을. 봐. 24개의 관을 가슴에 묻고사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봐. 목 잘린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다시 고공으로 올라갈 유성기업 노동자들을”이라 하나하나 외쳤고 이에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날은 박근혜 정부를 향한 저항선언문도 발표됐다. 해고노동자들이 무대에 올라 낭송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낭독했다.

이들은 저항선언문에서 “지금 한국의 하늘엔 신유신 파시즘의 망령이 떠돌고 있다”며 “유신잔당과 군부를 핵심 세력으로 한 청와대-국정원-검찰-경찰의 카르텔은 국민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노동자 민중은 죽기보다 더 힘든 삶을 연명하고 있다”며 “더 이상 저항을 미룰 수 없다. 어두운 죽음의 시대의 도래를 탓할 일이 아니다. 어두울수록 별은 맑게 빛나고 길은 열려 멀리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오늘 백기완 선생이 팔순 노구를 이끌고 분연히 일어나 죽음의 시대를 깨는 쇳소리를 냈다”며 “우리는 온몸으로 선배 혁명가의 비나리에 답하며 길을 내야한다”고 선언했다.

낭송회는 그 동안 촛불집회와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서 함께해온 민중가수들의 함께 모여 <탈환>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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