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심리전단장 대선 다음날 김하영에 “덕분에 선거결과 편히 봤다”

‘종북’ 기준 묻자 “다른데는 있는지 몰라도…” 말끝 흐려

2일 진행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2차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부장판사 이범균)에서 민병주 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단장이 지난해 12월 17일과 대선 다음날인 20일 국정원 직원 김하영(29)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2건이 공개됐다.

“어제 보고 와서 위로 하려고 갔다가 오히려 위로 받고 왔습니다. 경찰 공식 발표도 났고 이제 가닥을 잡아가고 있으니까, 마음 편히 갖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17일 문자는 지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공개된 바 있지만, 20일 문자 공개는 처음이다.

평소 김씨와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는 민 전 단장은 12월 17일 오후 1시 44분 김씨에게 “이제 가닥을 잡아가고 있으니까”라는 내용이 담긴 문자를 보냈다. 이때는 경찰이 16일 밤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하고, 17일 오전 수서경찰서에서 브리핑을 실시한 직후다.

두 번째 문자를 보낸 12월 20일 오후 2시는 대선 바로 다음날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후였다. 이 문자에서 민 전 단장은 “선거도 끝나고 이제는 흔적만 남았네요. 김하영 씨 덕분에 선거 결과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라고 보냈다.

국정원 여직원이 수신한 문자메세지 ⓒ'민중의소리'
국정원 여직원이 수신한 문자메세지 ⓒ'민중의소리'

‘선거 결과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의 의미에 대해 민 전 단장은 “저희 활동이 노출돼 문제가 됐는데, 경찰(중간) 발표로 논란이 안 되고 대선도 잘 끝나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민 전 단장은 국정원 직원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비방한 글을 쓴 행위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1월23일 심리전단 직원이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비판한 글을 쓴 데 대해 검찰이 “이 글을 대북활동으로 볼 수 있냐”고 묻자 민 전 단장은 “직원 개인의 정체성에서 이뤄진 것인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가, 검찰이 “이런 글이 선거에 영향을 준 사실은 인정하냐”고 묻자 “특정 후보를 거명했다는 건 저는…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 전 단장은 또 “매달 전 부서장 회의, 매일 모닝브리핑에서 피고인(원세훈)이 지시‧강조한 내용을 ‘이슈’로 사이버활동을 한 것이 맞냐”는 검찰의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민 전 단장은 “활동 내용 중 특별히 보고해야 할 사안은 3차장에게 보고하고, 3차장이 원장님께 보고했다. 내가 원장님께 서면으로 보고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민 전 단장은 게시글·댓글·찬반클릭 등 사이버 활동은 모두 북한 및 종북세력의 국론분열·국정폄훼 공격에 대처하는 심리전단의 고유 업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심리전단의 공격 대상인 ‘종북세력’의 기준에 대해서 뚜렷한 답을 하지 못했다.

검찰이 “심리전단의 공작활동은 대상이 명확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민 전 단장은 “종북세력의 국정폄훼 실상을 알리는 측면이어서 구체적인 타깃이 없다”고 말했다.

재판장도 “종북의 기준이 없나”라고 묻자, 그는 “다른 데는 있는지 몰라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검찰은 “댓글 달기도 공권력 행사인데 기준이 없다면 종북 척결을 빙자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기준과 범위 없이 공작부서 임의로 이뤄질 경우 100% 선거 개입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심리전단의 천안함 관련 사이버 활동 보고서엔 심리전 상대 주체로 ‘북한과 종북세력’이라고 명시돼 있으나, 4대강 사업 관련 활동보고서에는 심리전 상대 주체 부분이 삭제된 채 검찰에 제출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고발뉴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