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관음증 있습니까?” 비난 쇄도…시민들은 ‘쇼핑몰 돈쭐’로 진천 응원
“진짜 역겹다. 이래서 ‘기레기’라고 하는 것이다(This is really disgusting. This is where ‘기레기’ comes from).”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이던 지난 2018년 2월 8일,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에 참가하기도 했던 애나 파이필드 미 <워싱턴포스트> 도쿄 지국장이 자신의 트위터에 쓴 글이다. 같은 날 연합뉴스가 휴게소 화장실에 들른 북한 응원단을 촬영한 사진을 공유하면서 그는 ‘기레기’라는 단어를 한국어로 강조한 바 있다(☞ 관련기사: 외신기자 ‘북한 응원단 화장실 사진’에 “너무 역겹다, 기레기”).
외신 기자의 눈에, 그것도 여성 기자의 눈에 인권의식이 실종된 ‘연합뉴스’ 보도가 어떻게 보였길래 ‘기레기’란 멸칭을 서슴없이 한국어로 사용했을까. 이에 대해 당시 연합뉴스 사진부 관계자는 “여성 기자가 찍은 것인데 (설명을 들어보니) 화장실 안에서 응원단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고 있는 시민들이 있었고, 그렇다 보니 ‘시민 스케치’를 한다는 생각에 판단이 흐려졌던 것 같다. 문제가 있는 사진이라 내부에서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궤변에 가까운 변명이 아닐 수 없다. 뉴스1, 노컷뉴스 등도 이런 보도에 동참했다. TV조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같은 달 10일 <TV조선>은 <[단독] 북한 응원단, 숙소에서 남한 방송 시청>이란 보도를 통해 여성 북한 응원단의 숙소 창문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카메라 앵글을 한껏 당겼고 조악해진 화질이어도 상관없었다. 창 안으로 여성들이 움직이고, 앉아 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흥신소에서 찍은 ‘몰래카메라’가 무색해 보일 지경이다.
“북한 응원단 여성 단원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됐던 문제였으나 이번에는 관음증 수준으로까지 추락했다. 지난 7일 가평 휴게소 화장실을 이용하는 북한여성응원단원들의 사진을 촬영한 연합뉴스, 여성단원들 다리에 초점을 맞춘 사진을 출고한 노컷뉴스와 한 통신사 등에서는 북한 여성을 성적 이미지로만 소비하고, 취재원의 인권 보호에는 관심이 없는 우리 언론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응원단원과 예술단원들을 ‘미녀 응원단’, ‘미녀 예술단’으로 부르며 응원단원들의 외모에 집착하는 보도도 여전했다. 특히 지난 10일 북한 응원단의 숙소를 촬영해 보도한 TV조선의 보도는 독자의 궁금증 해소를 명분으로 취재원 사생활 보호라는 취재 윤리를 내팽개친 심각한 사례다.” (2018년 2월 21일 기자협회보, <평창올림픽 보도에 드러난 한국언론의 민낯> 중에서)
4년이 지난 지금 그 한국언론의 민낯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제 버릇 개 못준다고 했나. 지난 26일 입국한 아프가니스탄인 특별기여자를 찍은 ‘몰래카메라’ 보도가 또 등장해 비난이 폭주 중이다. 문제의 보도는 29일 한국일보의 <답답함일까, 걱정일까... 아프간 소녀의 눈물>란 ‘사진이슈’ 기사였다.
한국일보의 한심하고 퇴행적인 망원렌즈 보도
“멀리서 망원렌즈를 통해 관측한 이들의 주말은 평범해 보였습니다. 입국 후 격리 중인 만큼 몸과 마음이 답답하다는 점만 빼고 말이죠. 밀린 빨래를 베란다에 너는 엄마와 숙소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노는 남매,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아빠 등 보통 가정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평화로운 휴일 오후 조금 다른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실 창문 앞에 앉아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소녀가 갑자기 손으로 눈가 주변을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10대로 보이는 이 소녀는 그렇게 10여 분간 울음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29일 한국일보 <답답함일까, 걱정일까... 아프간 소녀의 눈물> 보도 중에서)
해당 기사는 “29일 충북 진천군 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자가격리 생활 중인 아프간 소녀가 창밖을 바라보다 눈물을 닦고 있다”며 망원렌즈로 진천인재개발원에서 휴식 중인 아프간인들을 촬영한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게재한 뒤 제대로 취재되지 않은 ‘소설’급 문장들을 나열했다. 이어진 문장은 이랬다.
“창밖에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을 보다 시커먼 연기와 총성으로 뒤덮인 고향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이 떠올랐을까요. 급하게 떠나오느라 안부조차 전하지 못한 친지와 친구들의 안전이 걱정됐을 수도 있습니다. 얼마 후 울음을 그친 소녀는 집 안으로 들어가 방충망을 닫았고,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소녀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부터 어른 할 것 없이 망원렌즈에 담긴 아프가니스탄 가족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보도됐다. 비난이 폭주했다. 한국일보 홈페이지에도, 포털 네이버와 다음 및 소셜 미디어 상에서도 비난 댓글 일색이었다.
“다른 사람의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순간을 허락도 없이 멀리서 도촬해서 올리면서 감성적인 척 하는 기사네요. 본문대로 정말로 아프간 난민들의 행복을 원한다면 독수리처럼 도촬할 기회나 엿보지 말고 그들의 사생활을 존중하세요.” (한국일보 홈페이지 sueOOO)
“대놓고 몰카 찍혀서 우는 겁니다. 이슬람권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빤히 쳐다보기만 해도 여자가 수치심을 느낍니다. 공인도 아니고 범법자도 아닌데 휴일날 망원렌즈로 뭐하는 짓입니까? 기자 관음증 있습니까?” (네이버 mobeOOO)
이러고도 언론중재법 반대?
앞서 외교부는 이번에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얼굴을 보도 사진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가이드했다. 외신을 모니터링하는 탈레반이 행여 이들을 특정, 향후 이들에게나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가족·친지들에게 불이익을 줄까하는 염려였다. 하지만 이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도 있었다. 바로 동아일보였다.
“반면 한국에서 취재하는 외국 통신사는 이들의 얼굴을 공개했다. 외국 통신사에서는 이러한 모자이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러한 조치에 대해 1)넓은 공항에서 왜 자유 취재가 제한되는지? 2)아프간 조력자들이 얼굴을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 했는지? 3)만약 요구를 했다면, 사진 기자들이 얼굴이 잘 안나오게 찍어서 모자이크 할 필요 없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던지 4)도착 시 동선을 미리 전달해 멀리서 촬영기회를 만들어줘서, 모자이크 할 필요 없는 사진을 찍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27일 동아일보는 <한국언론만 모자이크 처리한 아프간 시민들 얼굴[청계천 옆 사진관]> 기사에서 일부 외신들의 문제제기를 소개한 뒤 “이번 아프간 협력자 보도를 기회로 무조건 모자이크가 아닌 ‘글로벌 스탠다드’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램 이다. 여러분은 어떤 사진이 보고 싶은가요?”라고 물었다.
그 결과가 한국일보의 ‘몰래 카메라’ 보도라면 어떡할 텐가. 외교부가 얼굴 공개 금지 가이드라인을 정한 것은 과거 평창올림픽 보도처럼 한국 언론의 관음증을 우려해서는 아니었을까. 특종 욕심에 눈이 먼 한국일보가 그 관음증의 본색을 재차 드러낸 셈이고.
우리 국민들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을 환영한 진천 시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진천 쇼핑몰을 이른바 ‘돈쭐’낸 화제를 모았다. 그러는 동안 우리 언론은 왜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얼굴을 공개하지 못하느냐고 윽박 질렀다. 한국일보는 불법촬영에 가까운 사진을 보도했다.
그 사이 대다수 언론이 법무부의 ‘황제 의전’을 때리는데 열을 올렸다. 우리 시민들의 인권의식은, 시민의식은 성숙해 가는 반면 우리 언론의 보도 윤리는 그에 반비례해 곤두박질치는 형국이다. 이러고도 언론들은 여당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법률 개정을 반대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국민들이 과연 그런 언론들을 신뢰할까.
하성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