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부 언론사에서 의원 가족의 집에까지 찾아오고 있습니다. 즉시 자제해 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2. 의원직 사퇴로 수사를 회피하는 것은 원래 가능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고대하는 바입니다. 본인 및 가족은 어떤 조사에도 성실히 임할 것입니다.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부친의 토지 매입과정에서 전혀 관여한 바가 없으며, 수사과정에서 요청이 있을 경우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제출하겠습니다.

3. 사직서는 어제 기자회견 전 의안과에 제출하였습니다. 야당의원의 정치적 결단을 본인 선거나 본인 의혹을 가리기 위해 이용하고 흠집 내는 행태는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4. 의원 본인, 가족, 전 직장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한 억측과 허위사실이 유포되고 있어,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5. 사퇴쇼라 비난하기보다 다수당이신 민주당이 본회의에서 가결하셔서 사퇴를 완성시켜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지금 저 자신을 공수처에 수사 의뢰한다"면서 "공수처가 못하겠다면 합수본에 다시 의뢰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부친 땅 투기 의혹이 거세지던 지난 26일 오후,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실은 이런 공지를 내놨다. 애초 국민권익위원회가 제기한 부친의 농지법 위반이나 주민등록법 위반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아야 할 입장인 윤 의원은 무척이나 당당했다. 

앞서 25일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 당시 “아버님의 농지법 위반 의혹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게 되어 송구합니다”란 단 한 문장을 빼고 단 한 번도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던 그 당당함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었다.  

대신 민주당을 향해서는 무척이나 기세등등했다. 일반인들을 향해 법적 대응을 시사하는 등 적반하장식 반응까지 나왔다. 사퇴서를 제출했다고 해서 이미 의원직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걸까. 

반면 언론을 향해서는 자택 취재를 제외하고 별다른 불만이 없는 듯 했다. 그럴 만했다. 사퇴 기자회견 직후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정치의 품격' 같은 상찬 기사들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27일 오후 해명 기자회견에 나선 윤 의원은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역대급 퍼포먼스를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치 결자해지라는 듯 부친을 앞세웠던 것은 물론이고. 

친필 편지 읽으며 아버지에게 법적 책임 떠넘겨 

“윤희숙 의원 애비되는 사람입니다. 평범한 노년을 살면서 인생의 황혼을 준비할 일이 이럴게 큰 평지풍파를 일으킬 줄은 몰랐습니다. 출가외인인 딸자식에게 이렇게 큰 상처를 주게 되어 애비된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집니다.

그동안 제 딸자식을 응원하시는 많은 국민들께도 늘 과분하다 여기며 감사해하며 살았습니다. 그분들께도 정말 죄송합니다. 딸자식이 못난 애비 때문에 숱한 모욕을 겪으면서도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데 애비된 자가 어찌 애비된 도리를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문제가 된 농지는 매각이 되는 대로 그 이익은 전부 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부디 저의 마음을 너그러이 살피시어 제 딸자식이 아니라 모두 이 못한 애비 탓이라 여겨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8월 27일 윤희숙 의원 부 윤홍.”

▲ <이미지 출처=JTBC 화면 캡처>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 의원이 기자들에게 공개한 것도 모자라 직접 읽어내려 간 부친의 자필 편지 전문이다. 윤 의원은 편지를 읽은 후 “저는 살날이 얼마 안 남으신 저희 아버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아마 당신께서는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시면서 무조건 죄송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 일절 사과나 유감표명은 없었다. 농지 매각 이익금의 사회 환원 약속 역시 본인이 아닌 부친의 입을 통한 것이었다. 투기를 인정한 것도, 조사를 받고 법적 처분을 지겠다는 것 모두 부친의 몫이었다.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부친의 책임을 강조한 셈이다. 

그 외에는 적반하장으로 온통 점철돼 있었다. “이틀간의 마타도어는 제 상상을 초월했습니다”라던 윤 의원은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은 이러한 공론장의 기능을 저해하는 악법이라는 것이 제 소신”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의 합리적 문제 제기 자체는 당연하다”고 전제하면서도 마치 자신을 향한 정당한, 그리고 아직 몇 건 이뤄지지도 않은 의혹 제기와 검증 보도가 민주당발 가짜뉴스인양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지금 민주당의 모습을 보십시오. 입법으로 언론을 탄압하면서, 저같은 정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가짜뉴스 양산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저는 언론재갈법에 반대하는 한편,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허위사실유포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해 저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겠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부친 편지를 읽기 전 “이혼 후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했고”라거나 “부모님께 저는 지금도 속상하게 만드는 철부지 딸”이라며 인정에 호소하는 듯했던 윤 의원은 이후 KDI 재직 시절 세종시 산단 관련 예비타당성 조사 정보를 빼돌렸다는 의혹에 대해선 나름 적극 해명했다. 한데, 그 해명조차 핀트가 어긋나 있었다.  

▲ <이미지 출처=JTBC 화면 캡처>

적반하장 기자회견에 국민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의혹의 핵심은 윤 의원이 “KDI에 근무하면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가족과 공모해 땅 투기를 했을 것”이 아니다. 진짜 핵심은 그 정보로 부친에게 세종시 땅 매입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귀띔을 했느냐 아니냐다. 

국민 상식 상 1936년생인 부친인 윤씨의 땅이 향후 부인과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돌아갈 것이란 사실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KDI 직원들에 대한 전수조사 목소리가 드높은 것도 그래서다. 자신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간단한 정보가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가 진짜 문제인 것이다. 

단 이틀만에 의혹 제기가 확대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고. 무엇보다 윤 의원이 현재 공직자인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었다면 국민감정이나 농민들의 심기를 건드리지도, 언론의 검증을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윤 의원이 시종일관 무시하는 듯한 스탠스로 일관한 그 권익위 조사는 국민의힘이 고심 끝에 의뢰한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조사의 일환임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윤 의원은 “문제는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투기라는 심각한 범죄를 타인에게 씌울 때는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상식조차 내다 버린 것”이라며 민주당 의원들 개개인의 실명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모든 게 여당의 정치공세 탓이라는 스탠스였다. 그러면서 세종시 집 특별공급 혜택으로 얻은 시세차익은, 그럼에도 “나는 임차인”이라며 지난해부터 국민들을 기만해 온 것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었다. 

더 나아가 윤 의원은 “그러니 저는 지금 저 자신을 공수처에 수사의뢰합니다. 공수처가 못하겠다면 합수본에 다시 의뢰하겠습니다”라며 또 한 번 꼼수를 부렸다. 이미 관련 수사는 권익위가 의뢰한 부동산 투기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윤 의원은 부친이 세종시 땅을 매입한 2016년 당시 공수처 수사 대상도 아니었다. 이를 잘 알고 있을 윤 의원이 공수처 운운한 것은 그야말로 언론플레이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이재명 지사나 방송인 김어준씨에 대한 언급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듣도 보도 못한 물타기일 것이다. 

해명이 아닌 역공이었다. 이틀간 고심 끝에 내린 해명이 이 정도라니, 과연 어떤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법적 책임은 모두 부친에게 떠넘긴 채 일말의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자세로 일관하는 것도 모자라 여당 공세를 위해 핏대를 세운 윤 의원. 그렇게 언론중재법 입법을 반대하며 자신에게 우호적인 언론들을 적극적으로 호명한 윤 의원이 해명 기자회견을 연 대상은 분명해 보였다. 그 대상에 국민들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 역시 확실하고.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