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만약 장래에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조선에 용감한 투사가 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술잔을 부어 놓아라. 1932년 12월 19일 윤봉길 의사.

제76주년 광복절인 2021년 8월 15일, 윤석열 대통령 예비후보가 윤봉길 의사의 그 깊은 뜻을 담은 술 한 잔 올려드립니다. 상식에서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국민 개개인의 꿈을 멀게 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지난 15일 윤석열 국민캠프 페이스북 글)

▲ <이미지 출처=윤석열 국민캠프 페이스북 캡처>

문장과 표현은 문제될 게 없었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를 방문, 흔한 정치행보를 이어간 것으로 풀이할 만했다. 캠프 측도 페이스북에 ‘#윤봉길 #안중근 #김구’ 등의 해시태그를 달기도 했다.  

문제는 사진이었다. 윤석열 캠프 측은 해당 게시물에 윤 전 총장이 안중근 의사 영정 앞에 술을 올리는 사진을 게시했다. 게시물과 사진만 놓고 보면, 누가 봐도 윤 전 총장이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를 혼동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게시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른바 ‘역사 인식’ 논란이 일 만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틀릴 게 따로 있지’라는 반응과 함께 안중근 의사 영정 앞에서 윤봉길 의사에게 술을 따르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 것 자체를 두고 결례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앞서 지난달 27일 부산 민주공원을 찾은 윤 전 총장은 이한열 열사 기념 조형물 앞에서 ‘부마항쟁‘을 거론해 역시 ‘역사 인식’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에 대해 윤 전 총장 측은 16일 “안중근 의사 사진은 이날 현장에서 촬영한 수많은 사진 중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된 여섯 장 중 한 장”이라며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은 해당 사진의 내용이 아닌 전체 당일 행보에 대한 취지와 윤 후보의 효창공원 방문 의미를 담은 글”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이어 캠프 측은 “특히 윤봉길 의사의 말씀을 발췌한 글귀의 뜻은 후보가 해당 일에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 등 효창공원 내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에 차례로 모두 술잔을 올린 것에 대한 의미 및 설명으로 넣은 것”이라며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판단해 게시글을 수정했다. 전체 사진과 글을 보면 후보의 광복절 행보에 대한 의미를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연 “오해”라는 해명에서 끝날 일일까. 공교롭게도,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역시 5년 전 광복절에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실언을 해 눈길을 끈다. 

5년 전 ‘박근혜 실언’ 눈감았던 언론들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2016년 박근혜씨 제71주년 광복절 기념사 중)

▲ <이미지 출처=YTN '뉴스가 있는 저녁' 화면 캡처>

팩트가 틀렸다. 실제 안중근 의사가 숨진 장소는 중국 뤼순 감옥이었고,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었다. 지난 17일 YTN <뉴스가 있는 저녁> 역시 <연미복과 안중근...정치권 ‘친일·역사 인식’ 공방> 리포트를 통해 박씨의 과거 실언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념사는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건국절’ 발언으로 빈축을 샀다. 도리어 건국절 논란으로 박씨의 ‘하얼빈 감옥’ 실언이 묻힌 감이 없지 않았다. 문제는 언론이었다. 

“어제(14일) 일본 도쿄에서 콘서트를 마친 뒤 올린 사진에 일장기 이모티콘을 붙였습니다. 오늘 오전엔 사진 공유 SNS 스냅챗에 고가의 가방을 찍은 사진에 일본 전범기 무늬로 장식된 ‘도쿄 재팬’이라는 문구를 함께 올렸습니다. 욱일기로 불리는 일본 전범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사용한 깃발로,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인기 연예인이 그것도 광복절에 SNS에 일본 전범기를 올린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 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습니다. 출연 프로그램 하차 요구로까지 번지며 논란이 커지자, 티파니는 문제의 게시물을 삭제하고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자필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2016년 8월 16일 SBS <8뉴스>, <소녀시대 티파니, 광복절날 ‘日 전범기 무늬’ 문구> 리포트)

▲ <이미지 출처=SBS 화면 캡처>

이처럼 당시 SBS는 여성 연예인의 단순 실수를 대서특필했다. 반면 청와대가 주관하는 국가 기념식에서 저질러진 박씨의 실수는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 또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어떤가. ‘1일1망언’을 이어가는 윤 전 총장의 역사 인식 논란 역시 언론이 집중 조명하느냐에 따라서 일반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을까. 국민의힘 최재형 예비후보 조부 및 증조부 관련 독립유공자 논란 역시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이어진 최재형 조부 검증, 그리고 ‘박근혜의 추억’ 

“‘조부 최병규가 주도한 1926년의 상장달기 운동이 강원도 최초의 항일학생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고요? 이건 또 뭔가요? 누가 그런 평가를 했는지도 알고 싶네요. 이번에는 직접 해명하겠다고 나서서 직접 헛발질을 하고 말았습니다(...). 

오직 자기 집안밖에 모르고, 오직 조부의 독립운동밖에 들은 적이 없는 인물이 1919년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춘천농업학교 학생들, 철원, 김화, 원주, 인제 등 수많은 지역에서 3.1만세운동에 참여한 강원도 학생들의 자랑스러운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알 턱이 있겠어요?”

오마이뉴스에 최재형 조부 검증을 이어가고 있는 김학규 동작역사문화연구소 대표가 18일 페이스북에 적은 글이다. 이날 <최재형 일가 땅 몰수, 부친이 맞나 캠프가 맞나> 보도를 통해 검증 보도를 이어간 김 대표. 

▲ <이미지 출처=오마이뉴스 홈페이지 캡처>

그는 “조부의 명예를 지키려다 강원도민의 자랑스러운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모독한 최재형 후보”라는 일침과 함께 “강원도민들이 가만 있지 않을 거 같은데요?! 강원도 출신들 모여서 최재형 캠프 앞에서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러한 연이은 검증보도에도 불구하고 다수 언론은 최 후보의 해명을 받아쓰기 보도하는데 그치는 실정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보도 역시도 “오해”라는 해명을 납득하는 모양새다. 잇따른 검증 보도나 논란에도 꿈쩍도 않는 최재형, 윤석열 두 정치초년생. 두 사람의 이 같은 대응이야말로 언론이 옹호해주니 궤변이나 모르쇠로 일관했던 박근혜 정부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 있지 않은가.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