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60~70년대 산업화, 80년대 민주화, 90년대 정보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중진국을 넘어선 지 무려 30여 년 동안 선진국의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성장의 엔진이 식어가고 급속히 저출산·노령화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개인과 나라 빚도 늘고 빈부 격차는 커졌습니다. 

과거 해방 직후 공산주의가 우리 사회를 뒤덮었듯이, 지금은 포퓰리즘의 망령이 코로나 상황을 파고들며 온 나라를 휘감고 있습니다. 70년대 세계 7대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여러 나라들은 반미주의와 포퓰리즘에 빠져 후진국으로 후퇴를 했습니다. 우리도 석유 부국이었다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베네수엘라를 따라가는 무상 포퓰리즘이 판 치는 나라가 되어 갑니다.” (17일 홍준표 국민의힘 제20대 대선 예비후보 출마 선언문 중)

▲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 빌딩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니, 적잖은 대목이 과장됐다. 빈부 격차 등 사회양극화가 극심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계 부채가 역대 최고로 증가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선진국의 문턱”에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가까이 다가간 것은 갖가지 경제 지표가 입증 중이다. 

무엇보다 “베네수엘라를 따라가는” 포퓰리즘 주장은 홍 후보가 수 년째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해 온 레퍼토리다. 코로나19 뉴노멀을 이겨내고 있는 국민들이, K-컬쳐와 K-방역을 몸소 누리고 경험한 유권자들이 홍 후보의 이러한 주장에 얼마나 공감할지는 미지수다. 

17일 홍준표 후보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날 홍 후보는 <나라를 정상국가로 만들고 선진국 시대를 열겠습니다>란 출마 선언문을 통해 지지를 호소했다. 홍 후보는 “정권을 교체한 후에도 국회 180석을 장악한 현 집권 세력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국정 경험과 강력한 리더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보수야권 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겨냥했다. 

이어 홍 후보는 국정 7대 과제로 ‘선진국 수준의 정치 행정 상승’, ‘선진국형 경제 시스템’, ‘민간 일자리 창출’, ‘공정 회복’, ‘선진국 사법체계 구축’, ‘외교 안보 기조 변화’, ‘문화의 다양성과 균형 회복’ 등을 내세웠다. 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사정기구 개혁이 포함된 ‘선진국 사법체계 구축’ 구상이었다. 

“국가정보원의 대북 정보 수사 기능은 유지하되, 국익수호를 위해 해외분야를 크게 강화하겠습니다. 검찰은 공소유지를 위한 보완 수사 기능만 유지하도록 하고 공수처는 폐지하겠습니다. 경찰 국가수사국을 독립시켜 ‘한국형 FBI’로 만들고 모든 수사의 중심이 되게 하겠습니다. 감사원에는 직무회계 감사 능력을 높이기 위해 계좌 추적권을 부여하겠습니다.”

대선출마 선언과 별개로 ‘윤석열 공세’ 이어간 홍준표 

윤 전 총장의 선배 기수로 검찰 출신인 홍 후보는 공수처 폐지와 함께 ‘한국형 FBI’(경찰 수사국) 신설을 천명하며 검찰은 “공소유지를 위한 보완 수사 기능만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현 정부의 검찰개혁 기조에 뜻을 같이 하는 동시에 ‘검찰주의자’인 윤 전 총장 견제의 양수겸장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KBS, MBC 민영화 등 논쟁적인 화두를 던진 홍 후보는 끝으로 ‘원팀’을 강조하며 출마 선언문을 끝맺었다. 

“도시락 싸갈 형편이 안 되어 점심시간마다 수돗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이 자라 대한민국 검사가 되어 이 땅의 정의를 세웠고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국회의원 5번, 경남지사 2번, 원내대표, 당대표 2번을 거쳐 다시 대통령 후보로 나섰습니다. 물로 배를 채우던 그 절박한 심정으로 마지막 정치 도전에 나섭니다.

진충보국(盡忠報國)의 각오로 혼신을 다해 빼앗긴 정권을 되찾아 오겠습니다. 경선에 나온 후보들 모두 원팀(One team)이 되어 내각과 당에서 나라 정상화와 선진국 시대를 다 함께 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선진국 시대, 희망의 나라로 우리 함께 배를 저어 갑시다.”

홍 후보의 이러한 ‘원팀’ 강조는 최근 국민의힘 내부에서 불거진 토론회 관련 파열음을 의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홍 후보는 연휴이던 지난 15일과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연일 토론회 개최를 촉구하는 스탠스를 취하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윤 전 총장 장모 최모씨가 구속된 사건의 미진했던 검찰 수사를 거론하는 등 수위 높은 비판을 이어간 바 있다. 

“사깃(기)꾼들끼리 모여 한사람에게 책임면제 각서를 써주면서  그 사람을 그 집단에서  빼주었다고 해서 그걸 근거로 처음에는 어처구니없게도 경찰로부터 입건도 되지 않았고 든든한 사위 덕에 불구속 기소되어 법정 최저형 봐주기 구형을 받았으나 법원의 준엄한 판단으로 구형된 그 형과 똑같이 실형을 선고 받아 법정구속 되고 봐주던 검찰이 뒤통수를 맞았다면 그 사건은 누가 보더라도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공정과 상식 아닙니까?” (15일 홍준표 후보 페이스북글 중)

이어 홍 후보는 “나아가 이제 와서 당내 경선에서 토론조차 회피하는 것이 공정과 상식입니까?”라며 “그런 어이없는 갑질 논리는 검찰총장일 때나 하는 겁니다. 지금은 전 국민의 심판대에 올라선 대선 예비후보입니다. 그만 떼쓰십시오. 토론 회피하지 마시고 꼭 나오십시오. 토론 때 봅시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16일에도 여론조사 상 지지율과 역선택 가능성을 거론하는 글을 통해 윤 전 총장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무산된 국민의힘 토론회 

“한때 저를 보고 확장성이 없다고 지적한 적이 참 많았습니다. 최근 다양하게 진보좌파 진영과 소통하고 국익 우선주의를 내걸고 활동 하니 진보좌파 진영, 2~30대, 중도층에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이제는 역선택이라고 비난 합니다. 대통령 선거가 우리 쪽만 데리고 투표하는 진영 선거입니까?

갑자기 받는 선거 여론조사에서 과연 현실적으로 역선택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요? 선거는 과학입니다. 역선택 운운으로 우물 안 개구리식 선거로는 본선에서 필패 합니다. 다양한 국민들의 투표로 대통령 선거의 승패는 갈라집니다. 30% 남짓한 같은 편만으로는 선거에 이길 수 없습니다.” (16일 홍 후보 페이스북 글 중에서)

▲ 왼쪽부터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와 윤석열 예비후보 <사진제공=뉴시스>

이 같은 홍 후보의 공세에 도리어 진보진영주의자들이 환호하는 분위기다.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는 ‘윤석열, 최재형 때문에 홍준표, 유승민이 나아 보인다’, ‘홍준표를 응원하겠다’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국민의힘은 17일 오전 예정됐던 토론회 개최를 전격 취소했다. 윤 전 총장 측 주장을 받아들여 정견 발표회 수준으로 개최되리란 예상까지 빗나가는 의외의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여론조사 1위 예비후보의 요구를 당 지도부가 못이긴 척 수용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처럼 지난 한 주간 당내 격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토론회 개최 여부가 허탈하게 결론 나 버렸다. 높은 시청률과 세간의 이목이 확실시 됐던 홍 후보와 윤 전 총장과의 토론이 무산된 것을 두고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지도력에 스크래치가 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파다하다. 

이제 관심은 그 반사이익을 누가 누릴 것이냐는 데 쏠린다. 잇따른 ‘본인 리스크’로 지지율을 까먹고 있는 윤 전 총장 및 최 전 원장으로 인해 ‘홍준표가 멀쩡해 보일 지경’이란 평가까지 나오는 가운데 홍 후보가 공식 대선 출마 이후 지지율 상승을 이뤄낼 수 있을지, 윤 전 총장에 대한 견제 수위를 어느 수준까지 올릴 지 관심있게 지켜보도록 하자.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