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열사께서 저희 조상이라는 것은 제가 성인이 된 뒤 알았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그 울분을 죽음으로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결연하고 고통스러웠을지, 그 뜻을 늘 속에 품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출간된 <이낙연의 약속: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에서 이낙연 전 총리가 문형렬 작가와 나눈 인터뷰 중 일부다. 이어 지난 6월 ‘이낙연 공식 블로그’를 통해서도 공개된 해당 인터뷰 속 문형렬 작가의 관련 질문은 이랬다. 

“우리나라 최초의 검사가 누군지 압니까?(...) 이준 열사는 생활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함경남도 북청 출신이고 도산 선생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입니다. 이준 열사는 전주 이씨 완풍군파 18대 후손입니다. 대한민국 최초 검사 이준 열사의 후손이지요?”

▲ <이미지 출처=이낙연 전 국무총리 블로그>

이어 문 작가는 “이준 열사가 졸업한 학교가 대한제국 법관양성소입니다. 이 법관양성소가 나중에 서울대 법과대학이 됩니다”라며 “선대 이준 열사의 못다한 뜻을 이어받으라는 유훈이 내려와 서울대 법학과에 들어간 것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헤이그 특사로 순국한 이준 열사에 대해 ‘선대 이준 열사’라고 표현한 것이 눈에 띈다. 이에 대해 이 전 총리는 “그 때는 제가 어려서 뭘 몰랐을 때입니다. 그렇지만 정의감 같은 게 있었지요”라며 이런 답을 이어갔다. 

“혁명가를 꿈꾼 적도 있었다고 했잖아요. 청년의 분노 같은 것이었죠. 세상이 너무 절망적이고 절망에 허덕이는 농촌 사람들을 늘 주변에서 보니까 뭔가 도움이 될 방안이 없을까 속만 태웠습니다.”

인터뷰만 놓고 보면, 이 후보를 이준 열사의 후손이라 처음 언급한 것은 문 작가였다. 이 전 총리는 그런 언급에 “저희 조상”이란 표현으로 화답했다. 이렇게 이준 열사와 이 전 총리의 관계를 강조하던 문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실제 “직계 후손”이란 표현을 쓴 것도 문 작가였다. 이에 대해 이 전 총리는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긍정의 뜻을 드러냈다. 바로 이렇게 문답을 통해. 

“열사의 뜻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직계 후손에다 누구도 좀처럼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의 법학과 동문이니까요.” (문형렬 작가) 

“조금이라도 그 뜻을 거스르지는 않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역사의 진전에 무엇으로 기여할 것인가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낙연 전 총리)

▲ <이미지 출처=이낙연 전 국무총리 블로그>

이낙연 전 총리는 이준 열사 종친? 직계 후손? 

102주년 삼일절을 맞은 지난 3월 1일, 이 전 총리는 종로구에 위치한 이준 열사 집터를 찾았다. <뉴스1>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앞으로라도 우리는 어려운 시절에 독립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셨던 선조들의 발자취, 그 분들의 희생과 헌신의 기록을 찾고 유지하고 전승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될 것”이라며 “그것이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번영을 구가하면서 살고 있는 후대로서의 당연한 도리”라고 말했다. 

선후 관계를 따지자면, 이 전 총리는 지난 삼일절에 이준 열사 생가를 방문했을 당시엔 ‘직계 후손’임을 강조하지 않았다. 단순히 ‘선대’, ‘후대’라는 표현으로 순국열사의 뜻을 기리는 듯했다. ‘직계 후속’임을 부인하지 않은 것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경선 전이었던 지난 6월 자서전 출간 시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최근 이낙연 후보를 “헤이그 특사 이준 열사의 후손”이라 명시한 홍보물이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목을 끌었다. 앞서 ‘군필원팀’ 홍보물처럼 지지자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해당 홍보물은 이번엔 또 다른 논란을 야기했다. 

이 전 총리가 실제 이준 열사의 ‘직계 후손’인지 진위 여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민성진 회장은 16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준 열사 후손이 알려드립니다”란 글을 게재했다. 이 전 총리를 “헤이그 특사 이준 열사의 후손”이라 명시한 해당 홍보물과 관련해 이준 열사 후손이 “그냥 종친”이라고 확인을 했다는 취지였다. 

“이낙연 후보의 이준 열사 후손이라는 선거 홍보에 대하여 이낙연 캠프 오영훈 수석대변인께 항의를 하니, ‘후손이라 함은 단군의 후손과 같의 의미의 용어이다’라는 황당한 답변을 했습니다.” (16일 민성진 회장 트위터 글 중에서)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가 이준 열사 유족 측 입장을 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사업회는 지난 7월 28일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한 공지를 통해 조근성 이준 열사 외손자의 뜻을 대신 전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가 이준열사 후손이라는 분들께 알려드립니다. 이준 열사님은 전주이씨 완풍대군파 안소공파 종회입니다. 이낙연 후보는 전주이씨 완풍대군파 양도공파 종회입니다. 따라서 이낙연 후보는 이준열사 후손이 아니고 종친입니다.”

▲ <이미지 출처='(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회장' 트위터 캡처>     ▲ <이미지 출처='사단법인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트위터 캡처>

자서전 인터뷰로 논란 자처한 이낙연 전 총리 

“100년 전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됐다 순국한 이준(李儁·1859~1907) 열사의 후손에 대한 진위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열사의 외손들과 일성 이준열사 기념사업회측이 최근 이 열사의 현손(손자의 손자)으로 소개된 이요한(40)씨〈본지 2일자 A25면〉에 대해 “후손이 아니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2007년 7월 30일 조선일보 <‘이준열사 후손’ 진위 논란> 기사 중)

이 같은 논란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2007년에도 위와 같이 이준 열사의 후손을 자처한 이가 등장해 논란이 일었고, 이에 대해 이준 열사 유족 대표 측은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나선 바 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이 전 총리의 경우, 대선 경선 과정에서 본인이 직접 이준 열사의 ‘직계 후손’이라고 공언하지 않았다. 다만, 앞서 자서전을 통해 직계 후손임을 부인하지 않았고 “저희 조상이라는 것은 제가 성인이 된 뒤 알았습니다”라고 확인한 바 있다. 문제시 된 홍보물 또한 이러한 자서전 속 이 전 총리의 인터뷰를 근거로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후손이라 함은 단군의 후손과 같의 의미의 용어”라는 오 수석대변인의 발언도 일단 민 회장 일방의 주장일 뿐이다. 이준 열사 후손의 전언 역시 아직은 전언 수준이다. 팩트 체크가 요구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분명한 것은 앞서 ‘군필원팀’ 홍보물처럼 ‘이준 열사 후손’ 관련 홍보물 역시 이 전 총리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인터넷 상에 적지 않게 유포됐고, ‘이낙연 = 이준 열사 후손’을 기정사실화하는 이들까지 나타났다는 사실일 것이다. ‘종친’이냐 ‘직계 후손’이냐 논란을 야기한 것은 이낙연 전 총리 본인이다. 결자해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