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이 부회장 사건은 박 전 대통령 사건의 종속변수였다. 처음 수사했던 검찰조차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보았지만 박영수 특검이 뇌물 사건으로 바꾸었고 결국 강요를 당했다는 이 부회장이 뇌물 공여 범죄자가 됐다. 이 과정에서 문 정권은 고비마다 재판에 개입했다. 

청와대는 이 부회장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앞 정권의 캐비닛 문건을 찾아냈다며 법원에 제출했고,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례적으로 증언대에 서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문 정권이 이 부회장을 감옥에 보내려 작심했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10일 조선일보 사설 <5년 공백끝 복귀 李부회장, 경영 성과로 ‘억울함’ 입증하길> 중에서)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곧 죽어도 문재인 정권 탓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세력에게 회삿돈 86억을 횡령해 뇌물을 주는 중죄를 진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인데 “이 부회장을 감옥에 보내려 작심”한 것이 문재인 정권이란다. 대단히도 신박한 논리다. 

심지어 “문 정권은 고비마다 재판에 개입했다”는 단정까지. 이 부회장의 억울함을 어떻게든 대변하고 그 잘못(?)을 현 정권에 씌우겠다는 <조선>의 결기가 단단히 느껴진다. 이어 <조선>은 이 부회장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 이런 애정 어린 당부로 사설을 끝맺었다. 

“뒤늦게나마 경영에 복귀하게 된 이 부회장으로선 무거운 책무를 짊어지게 됐다. 초스피드로 펼쳐지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서둘러야 한다. 지연된 미래 투자와 M&A 결정을 과감히 내리고 경쟁 우위 분야에선 기술 격차를 더 벌려 나가야 한다. 이것이 억울함을 호소해온 이 부회장이 국민과 국가 경제에 답하는 길이다.”

<조선> 뿐만이 아니다. 지난 반년 넘도록 ‘이재용 사면론’을 주구장창 지펴온 보수‧경제지들이 지난 9일 법무부 가석방 심사위원회의 ‘이재용 가석방’ 결정 이후 물을 만난 듯 펜을 휘둘러댔다. 이 부회장에 대한 애정과 염려가 뚝뚝 묻어났다. 일부 경제지들은 ‘왜 사면이 아니냐’는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재용 몸무게 걱정해주는 언론들 

<이재용 가석방… 초일류 경영으로 국민 기대에 답해야> (10일 동아일보)
<이재용 ‘반도체 코리아’ 위기 탈출에 전력 투구해야> (10일 중앙일보)
<사면 아닌 가석방…경제보다 정치적 계산 앞선 것 아닌가> (10일 한국경제)
<이재용 부회장 투자 전념하도록 경영활동 걸림돌 없애야> (10일 매일경제)

그리고 13일, 이 부회장이 구치소를 나왔다. 이날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한 이 부회장을 향한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러자 평소 ‘이재용비어천가’에 여념이 없던 언론들은 가장 먼저 이 부회장의 ‘옥체’부터 걱정했다. 

“수감 생활 207일 만에 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수감 전보다 체중이 13㎏가량 줄었다고 한다. 흰 머리카락도 늘었다.” (13일 중앙일보 <13㎏ 줄고 흰머리 늘었네···이재용이 취재진 따돌리고 간 곳> 기사의 서두)

▲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취업 제한 등 출소 이후 경영 일선 복귀 제한 요소와 삼성전자 주가 등 경영을 둘러싼 현황을 기사를 통해 브리핑한 <중앙>은 전문가의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해당 기사에서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부회장은 국가적 경제 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이라는 가석방의 ‘취지’와 보호 관찰·취업 제한이라는 ‘처분’이 위배되는 상황에 부닥쳐있다”며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상황이지만 국민 경제 기여라는 취지에 무게를 두고 총수 차원에서의 의사 결정과 투자를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외에도 같은 날 뉴스1은 <7개월새 10kg 빠진 이재용..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하다”>라는 제목을 뽑았고, 한국경제>는 <이재용, 수감 7개월 만에 수척해진 얼굴..체중 13kg 빠졌다>라며 이 부회장의 ‘입소 전 출소 후’ 사진을 나란히 비교하는 정성을 들였다. 여기서 한술 더 뜬 것은 역시나 명불허전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가 쓴 ‘슬기로운 이재용의 감방생활’ 

“최근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한 인사가 본지에 전한 이 부회장 수감 생활의 일부다. 서울구치소에는 칸막이가 쳐진 10여 개의 독립된 운동장이 3층짜리 수용동 앞에 마련돼 있다. 2~3층 수용실에서 운동장 내부가 훤히 보이는데 구치소 안에서는 ‘매일 웃통 벗고 달리는 JY’가 화제였다고 한다.”

14일 조선일보 <“이재용 매일 웃통 벗고 구치소 운동장 달렸다”> 기사의 서두다. <조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가석방되면서 그의 수감 생활도 법조계에서 회자되고 있다”며 “코로나 재확산 전까지 ‘JY(이재용)’는 매일 웃통을 벗고 운동장을 달렸다”는 전 재소자의 입을 빌려 ‘감방 안에서도 건전하고 건강했던 이재용’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해당 기사에서 <조선>이 인용한 전 재소자 및 구치소 관계자, 법조계 인사의 멘트는 이랬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독방에 있으면 급격히 체력이 무너진다. 살려고 운동하는 것(이다). 당시 수감된 모 대기업 회장은 이 전 부회장과는 달리 매일 환자복 입고 환자방에서만 살았다.” (서울구치소 출소자)

“이 부회장은 운동장에 못 나가는 날이면 독방에서 ‘스쿼트(앉았다 서는 하체운동)’를 매일 30회 10세트씩을 한 것으로 안다.” (한 법조계 인사)

“많은 재벌 회장을 봤지만 이 부회장처럼 누구와 마주쳐도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매너갑’으로 통했다.” (서울구치소 관계자)

“밤 9시 불이 꺼지면 이 부회장 독방이 있는 구치소 1층의 다른 수용자들이 ‘이재용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구치소에 두 번 오는 건 조폭도 진절머리 치는 일이라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또 다른 출소자)

어느 매체도 역시 구치소에 구속수감중인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들의 ‘감방 생활’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하진 않았다. <조선>의 지향은 뚜렷해 보인다. 마치 드라마 <슬기로운 감방 생활> 속 주인공처럼 이 부회장이 건전하고 건강한 모범수였다는 인상을 주기위한 ‘소설’ 말이다. 

이재용 전 부회장은 사면된 게 아니다. 여전히 86억의 회삿돈을 횡령해 박근혜 국정농단 세력에게 뇌물을 바친 범죄자일 뿐이다. 취업 제한에 묶여 경영일선에 당장 복귀하지도 못할뿐더러 아직 ‘불법 승계’ 등 남은 재판도 2건이나 된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의 ‘옥체’를 염려하는 것도 모자라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대신 ‘연출’해 주는 언론들. 대통령 보다 위에 있는 것만 같은 ‘광고주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이들의 ‘용비어천가’를 지적하는 일도 이제 지칠 지경이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