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 모 씨가 이른바 사무장 병원을 세워 요양급여 수십억 원을 부정하게 타갔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죠. 동업자들은 모두 진작에 징역형이 선고됐지만 최 씨만 뒤늦게 재판을 받은 건데요. 검찰이 오늘, 최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31일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한 <‘법망’ 빠져나갔던 윤석열 장모…6년 만에 징역 3년 구형> 기사의 앵커 멘트다. 일대 사건 맞다. 직전 검찰총장을 지낸 유력 대선주자의 가족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검찰이 무려 징역 3년을 구형했다.

▲ <이미지 출처=MBC 화면 캡처>

검찰의 ‘조국 일가족 수사’에 화력을 퍼부었던 모든 언론이 달려들어도 모자랄 사안이다. ‘3년 구형’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염두엔 둔 것은 아닌지 분석하는 기사가 쏟아져야 정상이었다. 실상은 어땠을까. 

한국언론진행재단 빅카인즈 검색 결과, 종합일간지를 비롯해 이날 검찰의 구형 소식을 전한 기사는 단신인 ‘속보’를 포함해 총 43건이었다. 윤석열로 검색되는 기사가 총 262건임을 감암하면 실로 초라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43건 중 대부분은 건조한 스트레이트거나 이례적으로 피고인인 최씨 측 주장을 충실히 전한 기사가 다수였다. 

검색 기간을 한 달로 늘려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지난 5월 1일부터 31일까지 ‘윤석열 장모’로 검색되는 기사는 118건이었다. 같은 기간 최씨의 첫 번째 재판이 진행중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뭄에 콩 나듯’ 한 보도가 아닐 수 없었다. 단순히 재판 소식을 전하는 것 외에 별다른 취재도 없었고, 언론이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재차 강조하지만, ‘조국 가족’이어도 마찬가지였을까. 

대신, 언론이 관심을 집중한 ‘윤석열 보도’는 따로 있었다. 보수경제지가 하루가 멀다하고 ‘단독’으로 띄워주는 ‘윤석열 열공 행보’가 아니다. 이들 언론이 진짜 ‘열광’한 것은 윤 전 총장의 본격 정치행보였다.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29일 강원도 강릉에서 국민의힘 4선 중진인 권성동 의원을 만나 1시간 여간 대화를 나눈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윤 전 총장이 퇴임 후 현직 국회의원과 만난 것은 처음으로 알려졌다. 권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어제(31일) <조선일보>의 <윤석열 만난 권성동 “尹, 대선출마 강한 의지 드러내”> 단독 기사 중 일부다. 전 언론이 일제히 주목하고 나섰다. 윤 전 총장이 현역 국민의힘 중진 의원을 만난 것은 최초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권 의원은 역시나 검찰 출신이자 '이명박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그간 윤 전 총장이 여러 분야의 ‘과외교사’들을 만난 것조차 ‘단독’으로 포장해온  보수‧경제지들이 흥분(?)할 만 한 뉴스라 볼 만 했다. 그러자 TV조선도 단독을 달았다. 같은 날 <윤석열, 野의원 잇단 접촉…유현준도 만나 “LH 독과점 비판”> 보도였다. 

“권 의원은 동석자가 대선 출마를 요구하자 윤 전 총장이 ”몸과 마음을 바쳐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야당 의원인 본인을 찾은 데 대해선 ‘암묵적인 대권도전과 입당의사’라고 해석했습니다. 

윤 전 총장은 이에 앞서 지난주 충청권 중진 의원과도 만났는데, 정무적 조언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에 앞서서는 수도권 초선 의원도 만나 정책적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과의 접점을 넓히면서, 제 3지대론보다는 제1야당 입당을 통해 대선에 뛰어들 거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TV조선이 실명을 거론하지 못한 의원은 국민의힘 정진석‧윤희숙 의원이었다. 이날 ‘조선’의 단독 이후 관련한 ‘경마장식 보도’가 줄을 이었다. 윤 전 총장의 ‘대권도전 선언 초읽기’를 촉구하는 듯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들 언론이 외면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훼손이라 할 수 있었다. 왜 그러냐고?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의 최종 수사 책임자가 바로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윤석열 전 총장이었다.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권성동 의원은 지난 2019년 7월 윤 전 총장 임명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강원랜드 관련) 무혐의가 나온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어느 자리로 가는지, 영전하는지 승진하는지 보면 검찰 수사가 정치 수사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이 승진한 것으로 나타나면 윤석열 체제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 <이미지 출처=국민일보 홈페이지 캡처>

정진석‧윤희숙 의원의 경우는 어떨까. 검찰은 지난해 9월 지난 4.15 총선 당시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상대 후보였던 정 의원을 허위사실 공포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고, 박 수석은 그해 10월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낸 바 있다. 

또 검찰은 윤희숙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또한 무혐의 처분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4·15 총선 당시 호별방문을 통한 선거운동을 윤 의원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한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 <이미지 출처=한국일보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뉴시스 홈페이지 캡처>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참담한 보도 행태 

이 모두 윤석열 전 총장이 수사 책임자였거나 검찰총장 재직 시 검찰이 기소와 불기소 여부를 결정한 사건이었다. 더 나아가 검찰의 ‘선택적 기소 및 불기소’가 얼마든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언론이 ‘단독’으로 띄어주고 있는 윤 총장의 정치 행보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왜 일상적으로 확립돼야 하는지, 엄격히 지켜져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검찰권의 진짜 핵심인 ‘기소보다 불기소’, ‘봐주기 수사’라고들 하지 않던가. 또 이런 정치 행보가 일선 검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까. 

이런 문제제기는커녕 오매불망 ‘윤석열 단독’, ‘윤석열 정치행보’에만 목을 매는 보수‧경제지들의 언론보도는 기계적 균형은 고사하고 ‘윤석열 대망론’에 오매불망 ‘올인’한 ‘정치 플레이어’의 행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심지어 <윤석열, 강릉 단골 감자옹심이 칼국수집서 시민들 만났다>(31일 매일경제)가 단독 기사가 되는 세상이다. ‘윤석열 국밥’에 이은 ‘윤석열 칼국수’ 보도라고 할까. 

아울러 윤 전 총장이 시민들과 찍은 기사 속 사진을 두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 상에서 방역 수칙 위반 소지가 제기되자 일부 언론사들은 사진을 교체하는 친절함과 세심함까지 선보였다. 

이를 두고 한 커뮤니티 사용자는 윤 전 총장을 방역법(5인 이상 집합금지 및 마스크 미착용)을 위반했다며 질병관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김어준 방역법 위반’ 뉴스를 쏟아냈던 그 언론들이 할 일을 일개 네티즌이 대신 한 셈이다. 우리가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언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참담하다.

▲ 31일자 서울경제 <윤석열, 강릉 칼국수집서 기념 사진···권성동과도 회동> 기사. 사진 교체 전(오른쪽)과 후(왼쪽) <이미지 출처=구글 캡처>

▲ 31일자 매일경제 <[단독] 강릉서 시민들 만난 윤석열…대선출마 선언 임박한 듯> 기사. 사진 교체 전(오른쪽)과 후(왼쪽) <이미지 출처=구글 캡처>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