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검사들 행보, 되레 ‘개혁 필요성’, ‘정치검찰 퇴출’ 국민에 각인시켜
“검찰의 업보가 너무 많아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라고, 억울해 하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그러나, 마땅히 있어야 할 자성의 목소리가 없는데, 우리 잘못을 질타하는 외부에 대한 성난 목소리만 있어서야, 어찌 바른 검사의 자세라 하겠습니까.”
임은정 부장검사(대검찰청 검찰정책연구관)가 30일 오전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린 <검찰애사2>란 글에서 검찰의 자성을 촉구한 대목이다. 이날 임 부장검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법원 실형 확정과 김학의 전 차관의 실형선고와 법정구속에 대해 “우리 검찰로서는 할 말이 없는 사건”이라며 반성의 뜻을 밝혔다. 아울러 임 부장검사는 고 김홍영 검사 사건, 과거 검찰의 삼성 장학생 전력을 언급하며 이런 자아비판을 덧붙였다.
“민정수석의 유재수 감찰중단은 구속영장을 청구할 만큼 중대한 직무상 범죄라고 기소한 우리 검찰이 김학의, 김대현, 진동균 등의 범죄를 못 본 체 하였고, 그 잘못을 지적하는 따가운 비판 역시도 못 들은 체 하고 있지요. 범죄자에게 책임을 따져묻는 우리 검찰이 정작 정의를 지연시킨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날 오후 임 부장검사는 페이스북에 해당 글을 공유하며 “이런 목소리 하나 정도는 게시판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과거 검찰의 잘못으로 고통받는 분들의 아픔은 시효 다 지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동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글 쓴 의도를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자, 두 집단이 한꺼번에 임 검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먼저 내부게시판 게시글에 일선 검사들이 반박 댓글로 응수했고, 이를 보수 언론들이 앞 다퉈 기사화했다. 임 부장검사와 일선 검찰들의 대립을 강조하는 식이었다.
특히 전날(29일)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조카이자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사위인 최재만 춘천지검 형사1부 검사가 게시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비판 글에 달린 일선 검사들의 응원 댓글과 비교하는 논조가 다수였다. 무려 검찰 내부게시판 댓글 내용을 전하며 ‘단독’이라 표기한 <중앙일보>의 <전날 “커밍아웃” 동참 검사들, 임은정 반성글엔 “물타기”> 기사가 대표적이었다.
임은정 검사 비토한 일선 검사들 댓글 보니
“이는 전날 최(재만) 검사가 올린 글에 달린 댓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 글에는 ‘선배님 의견에 공감한다’며 ‘저도 커밍아웃하겠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최 검사가 글을 올린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은 30일 오전 90명의 검사가 그의 뜻에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해당 <중앙일보> 기사 중)
90명이 많은 수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들 검사 모두가 최 검사를 지지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중앙일보>를 비롯한 몇몇 언론은 댓글 숫자와 개별 내용을 바탕으로 일선 검사들이 임 부장검사에게 반대하고, 최 검사를 옹호한다는 프레임을 강화시키는 중이다.
임 부장검사의 게시글을 소개한 뒤 “이 글엔 ‘나도 커밍아웃하겠다’는 동조 댓글이 수십 개 달렸던 최재만 춘천지검 검사 글과는 달리 일선 검사들의 비판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고 보도한 <뉴스1>의 <임은정 “자성없이 성내는게 바른 검사냐”…검사들 “물타기냐”> 기사도 그 중 하나였다.
해당 기사가 소개한 A 검사는 임 부장검사를 향해 “물타기로 들린다”며 “이제 부장님을 정치검사로 칭하는 후배들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 달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 수사관이 “외로운 투쟁으로 개혁을 이끈 임 부장이 그런 류의 정치검사란 말이냐”고 꼬집자 또 다른 B 검사는 “‘그런 류의 정치검사’가 뭔진 잘 모르겠으나 후배 입장에선 ‘정치검사’로 오인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뉴스1> 소개한 또 다른 일선 검사들의 댓글 내용은 이랬다.
“후배 입장에서 보기에 정작 자성은 없고 남만 비판하고 있는 건 부장님 자신인 듯하다.” (D검사)
“검사들이 위 사건들이 아무 문제없이 처리됐는데 왜 그러냐고 성내는 게 아니지 않느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일 것인데 많은 검사들이 현재는 그 반대로 가고 있을 뿐 아니라 제도화되고 있다고 느껴 이토록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 아니냐.” (E 검사)
“현재 진행되는 이론의 여지없이 무조건 검찰개혁이고 반대는 무조건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이냐(...). 그 방향의 무오류와 의도의 순수성에 어떠한 의심도 허용되지 않느냐.” (F 검사)
검사들의 욕망과 이재명의 일침
댓글은 단 검사들이 일선 검사들 대다수의 의견을 대변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BBK 사건’이나 ‘김학의 사건’ 모두 대표적인 검찰의 ‘권력 감싸주기’, ‘제 식구 감싸주기’ 사건이었다. 특히 ‘김학의 사건’의 경우 문무일 전 검찰총장 당시 검찰개혁위원회가 진상조사에 나섰던 사건이었고, 고 김홍영 검사 사건은 후배나 동료를 안타까운 선택으로 이끈 내부비리 사건이었다.
이런 사건들에 자성을 요구한 임 부장검사에게 ‘물타기’, ‘정치검사’ 운운한 일선 검사들의 멘털리티를 어떻게 바라 봐야 할까.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해 해당 사건을 수사한 뒤 승승장구하며 권력을 누렸던 선배 정치검사들의 뒷길을 따르고 싶다는 욕망의 발로인 건가.
분명한 것은 ‘김학의와 이명박의 단죄’와 더불어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정치검찰의 완전한 퇴출을 검사들 스스로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는 확실하단 사실이리라. ‘추미애 vs. 윤석열’ 구도를 강화하며 장사에 나서는 언론들도 문제다.
하지만 임 부장검사의 정당한 자성 목소리마저 ‘비토’하는 일부 일선 검사들의 ‘조직 이기주의’나 ‘정치검사 눈감기’ 또한 분명 현재 진행형으로 봐야할 듯 싶다. 이와 관련,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MB의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해 쓴 페이스북 글에서 검찰의 부정의를 지적하고 나섰다. 맞다. 오늘도 임 부장검사와 일선 검사들과의 대립각을 강조하는 보수언론은 물론이요, 이들 ‘정치’검사들이야말로 이명박의, 김학의의 공범들이다.
“전직 대통령 잔혹사가 되풀이 된 것은 법질서의 최후수호자인 검찰이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부정의를 정의로 둔갑시킬 수 있었고 권력자가 이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과 원칙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지켜지는 사회였다면 현직 대통령이 ‘나는 예외’라는 특권의식으로 범죄까지 저지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법과 원칙이 한결같은 세상을 만드는 첫 단추는 김대중 대통령님 말씀처럼 ‘검찰이 바로 서는’ 것이고, 그 길은 바로 누구에게나 동일한 잣대로 같은 책임을 지게 하는 검찰개혁입니다. 국민이 맡긴 국가권력을 이용해 돈을 훔친 자는 이제 감옥으로 가지만, 국민이 맡긴 총칼을 국민에게 휘두른 자는 여전히 활개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하성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