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태의 와이드뷰] “지금 선거 생각할 때인가” 답변 유보한 안철수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당시 바른미래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이었던 이준석 미래통합당 전 최고위원은 6.13 재보궐 선거에 노원병 후보로 나섰지만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후보에게 더블 스코어가 넘는 격차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당시 바른미래당에서 내에서 유일하게 2위로 낙선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선거가 끝나고 열흘 뒤 JTBC <정치부회의>를 통해 안철수 전 서울시장 후보에게 ‘공개편지’를 썼다. 이른바 공천파동의 앙금이 남아서였을까.
“안철수 후보님, 이제 선거가 끝난 지도 1주일 여가 되었는데 마음은 추슬러지셨는지요? 저는 물론 실력이 부족해 낙선했지만, 우리 상계동의 구의원·시의원 후보들이 불필요한 공천 파동 속에 억울하게 주민들께 봉사할 기회를 잃었다는 생각에 아직 저는 밤잠을 설칩니다. 다시는 누군가가 황당한 아집으로 우리가 같이 정치하는 동지들과 그 가족들의 선한 마음에 못을 박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전 최고위원은 ‘바람의 빛깔’이란 노래 가사를 소개하며 “인간의 탐욕에 대한 고찰”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었다. 당시 함께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는 “제가 안철수 후보의 지금 정치적 상황이라면, 부산에 가서 밑바닥부터 완전히 훑고 싶을 것 같다”라며 험지로 향하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 배경엔 바른미래당의 공천파동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친 바른미래당에서 안철수계와 유승민계가 6.13 지방선거 공천을 둘러싼 세 대결이 펼쳐졌고, 그 과정에서 과거 20대 총선에서 안철수 대표와 맞붙기도 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노원병에 홀로 공천신청을 했으나 안 대표는 이른바 ‘자기사람’을 심기 위해 공천을 한없이 미뤘다.
심지어 당 관계자들 사이에서 안 대표가 이 최고위원을 ‘싫어해’서 ‘공천을 안 줄 것’이란 말까지 흘러나왔다. 그런 앙금이 이 전 최고위원으로 하여금 선거 패배 후 안 대표를 향해 “인간의 탐욕”이나 “사람에 대한 존중”이니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조언을 던지게 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한참 연배가 높은 안 대표에게 험지로 향하란 조언을 건넸던 이 전 최고위원. 그랬던 그가 불과 2년 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안 대표의 상품가치를 높게 평가한 듯한 발언을 내놔 화제를 모았다.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다.
안철수 대표는 정말 최고의 상품일까
“최근에 저한테 안철수 대표의 최측근 인사 중에 한 분이 출마 어때? 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어서...”
내년 치러질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관한 질문 중에 나온 답이었다. 진행자가 “혹시 서울시장 다시 도전할 가능성도 있을까요?”라고 물었고, 이 전 최고위원은 위와 같이 입을 뗀 뒤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최고의 상품”이란 표현이 눈에 콕 들어온다. 2년 전 본인이 “인간의 탐욕”이나 “사람에 대한 존중” 운운했던 안 대표와 지금의 안 대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듯이.
“(안 대표 최측근이) 직접 저한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저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선택이고 지금의 국민의당이 처한 어쨌든 원내 현실에서 봤을 때는 안철수 대표가 최고의 상품 아니냐. 안철수 대표가 물론 대선 때까지 가서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전에 보궐선거에서 역할을 해서 좋은 성과가 난다고 하면 국민의당 전체 분위기가 살 것이다라는 취지로 제가 답을 한 적이 있거든요.”
이날 하루 보수언론들이 “최고의 상품”이란 이 전 최고위원의 ‘워딩’에 주목했다. 하지만 키포인트는 “국민의당이 처한 현실”이라는 것이 키포인트일 것이다. 풀이하자면, ‘어차피 나올 사람이 없는 국민의당이 처한 현실에서 봤을 때 안 대표가 유일한 선택’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고 할까.
그러자 안 대표가 이에 대해 말은 얹었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안 대표는 재보궐 선거에 대해 묻는 질문에 “지금이 선거를 생각할 때인가”라며 일축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문을 거부했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논란을 의식한 듯 안 대표는 “우리나라가 사자(死者)모욕과 피해자의 2차 가해로 (여론이) 완전히 나뉘어져 있다. 도덕 기준 등 여러가지 무너진 (가치를) 살리는 것이 정치권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답했다.
측근발 뉴스가 나온 것에 대해서도 “믿을 것 하나도 없다”며 말을 아꼈다. 언제나 그렇듯, ‘지금은 아니다’란 묘한 뉘앙스와 함께 일종의 여지를 남겨둔 발언이라 할 만하다. 향후 안 대표가 재보궐 선거에 대해 또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지켜 볼 일이다.
하지만 안 대표가 정말 ‘최고의 상품’일까. 지난 2018년 6.13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 대표는 19.55%란 득표율로 참패하며 대선후보의 자존심을 한껏 구긴 바 있다. 현 국민의당 지지율은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그럼에도 언론은 9년 전 ‘아름다운 양보’를 앞세우며, 박 전 시장의 안타까운 죽음 직후부터 안 대표를 소환하는 중이다.
그만큼 후보군이 없다는 반증이요, 또 통합당과 보수야권이 대선 전초전이라 불리는 내년 재보궐 선거 승리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일 터. 이날 <동아일보>는 아예 <여당은 서울·부산시장 공천 말라>는 칼럼으로 이를 입증하고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김순덕 대기자의 작품(?)이었다.
여당은 공천하지 말라고 겁박하는 ‘동아’의 속내
“더불어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은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선을 할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김상곤 혁신위’가 만든 혁신책이다. 뚝심으로 이름난 김부겸이 대통령표 당헌을 가볍게 깨뜨린다니, 뻔뻔함은 무서운 팬데믹이 아닐 수 없다.”
여당 역시 이 당헌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여러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후보를 내지 않는 것도 물론 한 방법이다. 당원에게 의견을 물어 당헌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또 국민 여론을 물어 후보자를 낼지 말지 결정할 수도 있다. 아직 시간 여유도 충분하다. 박 전 시장 관련 의혹을 둘러싼 진상 조사까지 갈 길이 멀다.
그런 와중에, 다짜고짜 공천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이 칼럼은 ‘1년짜리 임기라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은 보수가 가져가야 향후 대선에 유리하다’는 속내를 빤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김 대기자는 민주당 대표 선거에 나서는 이낙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마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듯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에 선 주장들을 쏟아내며. 헌데,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다. 실소가 터져나온다.
“당신들의 이념과 정책이 시대착오적이듯, 당신들의 성문화 또한 시대를 잘못 만났다. 이념과 정책과 성문화를 바꾸지 못한다면 노무현 정부 때 만든 성매매처벌법을 폐지하는 건 어떤지 묻고 싶다(필자가 폐지에 찬성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하성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