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검증’에 소홀한 채 ‘의인’ 만들기 주력 … 종편은 예능까지 출연시켜
“2017년 판문점에서 총상을 입으며 귀순했던 북한군 오청성 씨(26)가 최근 서울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된 사실이 확인됐다.”
오늘(9일) 동아일보 10면에 실린 기사 가운데 일부입니다. 제목이 <北서 음주사고 뒤 귀순 오청성, 南서 또 음주운전>입니다.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오 씨는 거의 ‘만취 상태’에서 음주단속에 걸린 것으로 보입니다. 동아일보 기사를 좀 더 보시죠.
‘북한에서 음주사고 뒤 귀순’ … 우리는 얼마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경찰 등에 따르면 오 씨는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에서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다. 당시 오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에서 본인도 음주운전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씨는 귀순 뒤 한국에서 정식으로 운전면허시험을 봐서 면허를 땄다. 평소에는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동아일보 보도에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북한에서 음주사고 뒤 귀순’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말이죠.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은 당시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입니다.
‘판문점 귀순’ 당시 기성 언론이 그를 ‘영웅화’ 하는데 무게중심을 두면서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2018년 1월부터 오청성의 귀순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의문들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동아일보가 관련 내용을 비중 있게 보도했는데 간단히 인용합니다.
“국가정보원과 군 당국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신문반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운전병 오청성 씨(24)가 만취한 상태에서 음주 교통사고를 내고 우발적으로 귀순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중략)
혼자서 7병 정도 마신 오 씨는 만취한 상태에서 ‘판문점을 구경시켜 주겠다’며 (친구 운전병) 이 씨를 지프차에 태우고 판문점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2, 3차례 추돌 사고를 일으킨 오 씨가 시설물을 크게 파손했거나 사람을 친 것으로 판단해 귀순한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동아일보 2018년 2월12일자 14면 <“소주 7병 마셔 만취 오청성, 교통사고낸 뒤 우발적 귀순”>)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은 대다수 언론이 주요하게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북한에서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사람이라도 귀순할 ‘자유’는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이라면 귀순 배경이나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보도해야 합니다.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고 귀순한 사람을 우리 사회가 포용하는 문제와 ‘귀순 이유’를 정확하게 보도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청성 영웅화’에 앞장 섰던 언론 …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시킨 TV조선
많은 분들이 오청성 씨를 ‘자유를 위해 판문점에서 목숨을 걸고 북한군의 총격을 받으면서까지 대한민국으로 온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면 그건 언론 책임이 상당히 큽니다.
당시 많은 기성 언론이 그를 ‘영웅 만들기’에 급급했을 뿐 ‘귀순 이유와 배경’에 대해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웅 만들기’에만 그친 게 아닙니다. 종편 등에서는 그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며 ‘셀럽’ 대접을 했고, ‘북한 비판’에도 적절히 활용했습니다.
당시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대략적인 제목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JSA 귀순’ 오청성 “김정은 무리하게 신격화…北 젊은층, 충성심 없어”> (KBS 2018년 11월17일)
<JSA 귀순 오청성 “총 쏜 북한군, 모두 아는 얼굴들”> (TV조선 2018년 11월22일)
<판문점 귀순병사 오청성, 방송 최초 출연…현빈 닮은 외모로 ‘눈길’> (매일경제 2019년 5월10일)
<오청성이 밝힌 신세대 북한군의 '은밀한 비밀'> (TV조선 2019년 5월27일)
<JSA귀순 오청성 “15분거리 편찮은 어머니 못만나 고통스러워”> (뉴스1 2019년 7월28일)
<JSA 귀순 오청성 “병든 모친 15분 거리 北에... 못 만나 괴로워”> (조선일보 2019년 7월28일)
물론 ‘판문점 귀순’ 당시 긴박한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언론 보도가 집중되고 ‘목숨을 건 탈출’ 쪽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2018년 2월을 전후로 일부 언론과 정보당국, 국회 정보위 등을 중심으로 오청성 씨가 귀순 당시 군 동료와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사고를 낸 뒤 처벌이 두려워 우발적으로 귀순한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후 언론이 오청성 씨와 관련한 보도를 하거나 TV에 출연시키고자 할 때에는 신중하게 접근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상당수 언론은 ‘그런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가 앞서 소개한 기사만 하더라도 모두 ‘2018년 2월 이후’ 보도된 기사들입니다.
특히 TV조선은 2018년 11월22일 <‘JSA 귀순’ 오청성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이라는 리포트에서 음주운전 의혹과 관련해 오씨의 일방적 해명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오청성 씨 ‘일방적 해명’ 리포트로 전한 TV조선
제가 이번 오청성 씨 음주운전 사건을 계기로 당시 ‘오청성 씨 관련 보도’가 적절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물론 오씨가 한국에서 잘 정착하기를 저 역시 바라지만 이 문제와 별개로 언론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늦게라도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참고로 서울 금천경찰서는 오청성 씨를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해 조사한 뒤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