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태의 와이드뷰] ‘송병기 수첩’을 ‘안종범 수첩’과 비교하며 ‘선거개입’으로 몰아갈 일인가
“작년 울산시장 선거에 ‘청와대 핵심 인사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도 개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검찰이 송병기 울산 부시장 업무일지를 확보했다고 한다. 이 업무일지에 대통령 청와대 개입 의혹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가 당시 한국당 소속으로 공천을 받은 김기현 울산시장을 낙선시키기 위해 선거 한참 전부터 기획하고 공작했다는 것이 더욱더 명백해지고 있다.”
18일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한 주장이다. 같은 날 오전 검찰이 국무총리실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예상 가능했던 주장이 보수야당 원내대표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셈이다. 그러면서 심 원내대표는 국정조사까지 거론했다.
“대통령 친구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 경찰청, 그리고 또 그 위의 권력기관이 어디까지 개입된 것인지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이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선거공작이다. 국민 주권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이다. 이제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 민주당이 떳떳하다면 국정조사를 받으시라.”
수순은 이렇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하필 청와대가 정세균 국무총리 임명을 발표한 바로 그 날이다. ‘첩보 문건 발견’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진다. 이를 전후해 ‘송병기 업무 수첩’이 발견됐다는 수사 정보가 언론에 흘러 들어갔다.
검찰이 흘린 정보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자 심 원내대표 주장의 근간이 되는 보도들도 속속 ‘단독’과 ‘속보’란 이름을 달고 전해진다. 바로 이렇게.
검찰 칼춤에 장단 맞추는 언론과 한국당
<VIP 면담자료’도 등장… 송병기 업무수첩, 스모킹건 되나> (18일 <한국일보>)
<청 , 강길부 의원 ‘숙원사업 도움 대가’ 송철호 지지 요구 정황> (18일 <경향신문>)
<[김광일의 입] ‘안종범 수첩’과 朴, ‘송병기 일지’와 文 다를게 뭐 있나> (18일 <조선일보>)
<[단독] ‘송병기 수첩’에 지역 4선 강길부 현역 의원 거론… 공약 사전 논의도> (19일 <서울신문>)
‘송병기 수첩’이 ‘안병기 수첩’으로 둔갑됐다. ‘조국 딸’을 ‘정유라’로 만든 바로 그 프레임과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의 출마 권유가 사실이라 할 지라도, 섣불리 ‘비선실세’를 등용한 것처럼 확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울산 지역 현안과 관련해 대통령이 공약 사항을 점검했을지 모를 면담까지도 ‘선거 개입’으로 몰아가는 듯한 인상이다. 검찰이 칼춤을 추면, 뒤이어 언론과 보수야당이 장단을 맞추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가 이제는 청와대를 쥐고 흔드는 모양새다.
청와대는 “작년 울산시장 선거에 어떤 관여도 한 바 없다”는 입장을 일관 중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송 시장에게 지방선거 출마를 요청했다는 것을 두고 역시나 박 전 대통령의 ‘공천 개입’과 비교하며 청와대 흠집내기에 동참하는 중이다. 18일 <한국경제는 <송병기 업무일지서 문 대통령 공천개입 정황 발견…박근혜는 비슷한 혐의로 징역 2년> 기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 개입’ 사건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 인사들을 당선시키려고 청와대 자체 여론조사를 하게 하고, 당시 새누리당 공천위에 친박 인사들 명단을 전달한 혐의(선거법 위반)로 작년 11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박근혜가 직접 하달한 비례 6명 중 강효상, 유민봉, 최연혜, 신보라, 김현아 당선
과연 그럴까. 2016년 20대 총선 당시 박 전 대통령의 공천과 경선 개입은 실로 광범위했고, 집요했다. 당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을 필두로 주요 인력과 엄청난 돈이 오갔다는 것은 ‘박근혜 재판’ 과정에서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당시 공천이 박 대통령을 필두로 현기환 정무수석, 이한구 공관위원장, 최경환·윤상현 의원이 주무른 ‘밀실 공천’이었다는 점은 후일 검찰 조사와 재판을 통해 모두 밝혀졌다. 청와대는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박 대통령의 뜻이라며 반드시 당선돼야 할 비례대표 후보로 이한구에게 전달된 명단은 총 6명이었다.
그중 당선된 사람은 강효상, 유민봉, 최연혜, 신보라, 김현아 등 5명이다. 이 명단은 이 글을 통해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신보라는 발표 전날 밤 11시까지는 당선권 밖에 배치됐었지만 밤사이 청와대의 항의로 원래 있던 사람과 바뀌어 발표됐다. 이한구는 청와대가 전달한 나머지 한 명을 당선권 밖으로 배치했다.” ([최초공개] 前 김무성 보좌관 장성철 “지난 총선 때 ‘박근혜 뜻’이라며 비례대표 6인 명단 하달”)
강효상, 유민봉, 최연혜, 신보라, 김현아 의원 등 한국당 현직 비례대표 의원이 ‘박근혜 밀실 공천’의 수혜자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2012년 박근혜 대선후보 공보팀장, 2016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실 부실장을 지낸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이 <신동아> 12월호에 최초로 공개한 내용이다.
18일 <신동아>는 “당 대표실 재직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 실상을 목격했다”며 “그가 ‘막장 공천’의 비화를 비롯해 ‘보수의 속살’을 보여준다. 당시 청와대가 '대통령의 뜻'이라며 여당에 비례대표 공천자 6인의 명단을 하달했다는 사실도 최초 공개한다”며 장 소장의 글을 공개했다. <오마이뉴스>의 <판결문으로 본 박근혜 국정농단> 시리즈와 함께 이 장 소장의 글을 읽어 보시라.
과연 지금껏 알려진 검찰의 수사 과정만을 놓고 ‘송병기 수첩’을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의 주요 증거인 ‘안종범 수첩’과 비교하며 ‘선거 개입’으로 몰아갈 만한 일인지, 검찰의 칼춤을 언론이 부화뇌동하는 건 아닌지, 과연 한국당이 ‘국정조사’를 주장할 만한 사안인지 말이다. 도리어 청와대를 겨냥한 ‘윤석열 검찰’의 칼춤이이야말로 스스로 ‘정치 검찰’임을 자임하는 자충수가 아닌지 냉정히 판단할 때다.
하성태 기자
고발뉴스TV_이상호의뉴스비평 https://goo.gl/czqud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