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심 공소장’을 ‘사실’로 보도하는 언론

[신문읽기] 공판 중심의 취재시스템 개혁 절실하다

<“정경심, 2년 동안 차명계좌 6개… 미용사·페북친구 이름도 빌렸다”> 

오늘(12일) 조선일보가 1면에서 보도한 기사 제목입니다. 따옴표 속 문장이지만 큼지막한 제목을 본 독자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뽑은 기사 제목은 검찰의 판단일 뿐입니다. 

정확히 말해 검찰이 정경심 교수를 추가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적시한 내용입니다. 실제 조선일보 기사 문장 대부분은 ‘검찰이 밝혔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으로 시작하거나 끝납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검찰 ‘공소장’은 공소장일 뿐 … 사실로 단정해서 보도하는 언론들 

그런데 조선일보는 제목을 사실로 단정하는 듯한 내용으로 뽑습니다.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내용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검찰이 제기한 내용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앞으로 재판 과정을 통해 검찰과 변호인 간 ‘치열한 법리 다툼’이 벌어진다는 것이고,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내용과 ‘반대되는 증거나 증언’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언론이 검찰 공소장을 참고해 보도할 순 있지만 사실로 단정해서 보도하는 것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오늘(12일) 발행된 전국단위종합일간지를 보면 일부 언론은 ‘검찰 공소장=사실 혹은 진실’로 단정하는 듯한 제목을 뽑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건 검찰 피의사실 공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일단 오늘 관련 내용을 보도한 신문들의 대략적인 기사 제목을 좀 보시죠. 

<정경심, 혐의만 14개 달해…딸도 ‘공범’ 적시> (경향신문 8면)
<정경심 혐의 3개 늘어 14개로… 검찰, 추가 기소> (국민일보 8면) 
<檢 “정경심, 조국 장관직 사퇴 2주일전까지도 차명거래 계속”> (동아일보 6면)
<“단국대 인턴 부풀려 ‘96시간’ 써넣고 KIST 증명서엔 ‘성실하게’ 문구 추가”> (동아일보 6면)
<檢, 정경심 딸 ‘입시 비리 공범’ 공소장 적시… 조국 조만간 소환> (서울신문 8면)
<檢, 정경심 총 14개 혐의 구속 기소...딸 ‘입시비리’ 공범 적시> (세계일보 1면)
<“정경심, 2년 동안 차명계좌 6개… 미용사·페북친구 이름도 빌렸다”> (조선일보 1면) 
<“정경심, 조국 靑수석 되자 단골 미용실까지 동원 차명거래”> (중앙일보 2면) 
<정경심 79쪽 공소장 ‘조국 이름’ 곳곳에…딸도 공범 적시> (한겨레 6면)
<檢 “정경심, 조국 장관 지명 뒤에도 23회 차명거래”> (한국일보 12면)
<공소장에 ‘표창장 위조 공범’으로 딸 지목… 조국도 거론> (한국일보 12면)

조선·중앙일보, 제목에서 ‘검찰’과 ‘공소장’을 아예 빼다 

많은 언론이 검찰의 공소장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이 자체를 뭐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요. 문제는 앞서도 얘기했지만 정경심 교수 측이 검찰이 제기한 혐의 내용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경심 교수 측의 주장이나 반박도 지면에서 할애해야 한다고 봅니다. ‘재판 전략’ 때문에 변호인 측에서 상세한 내용을 언급하길 꺼려 한다면 검찰 수사의 문제점이나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법조계 인사들의 주장이나 견해를 반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자(12일) 신문에 그런 ‘형평성’을 보인 신문은 거의 없습니다. 누차 얘기했듯이 검찰 공소장은 지금까지 검찰이 정경심 교수 등을 수사하면서 공소장에 적시한 것처럼 그렇게 ‘판단’했다는 것이지 그 자체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검찰 공소장에 많은 비중을 들여 보도한 언론이라면 이를 반박하는 내용 또한 ‘반론 차원’에서 당연히 지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보는데 조국 전 장관이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인용하는 식의 보도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가장 문제가 많은 언론은 조선·중앙일보입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제목에서 보셨겠지만 두 신문은 아예 제목에 ‘검찰’이나 ‘공소장’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따옴표를 붙이긴 했지만 사실상 제목에서 ‘검찰 공소장’을 ‘사실’로 단정하는 듯한 제목을 뽑았습니다. 

<“정경심, 2년 동안 차명계좌 6개… 미용사·페북친구 이름도 빌렸다”>(조선)와 <“정경심, 조국 靑수석 되자 단골 미용실까지 동원 차명거래”>(중앙)라는 제목을 ‘읽으면서’ 이것이 검찰 공소장 내용일 뿐이고 사실 혹은 진실 여부는 재판을 통해 가려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별로 없습니다. 

조선·중앙일보 제목은 다른 신문들과 비교해서도 유독 튑니다. 제가 두 신문의 제목을 보면서 공소장 내용을 사실로 단정하고 싶어 하는 조선·중앙일보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하는 이유입니다. 

▲ <이미지 출처=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유튜브 영상 캡처>
▲ <이미지 출처=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유튜브 영상 캡처>

엄경철 KBS 신임 보도국장의 ‘실험’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 

오늘(12일) KBS 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엄경철 KBS 신임 보도국장이 출연했습니다. 엄경철 국장은 출입처 중심의 취재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눈길을 끌었죠. 

그는 “검찰 기자실에 상주하는 국내 기자들이 200명 정도 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각 기자들이 기사를 쓰면 하루에 얼마나 많이 쏟아지겠나, 양적 균형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만큼 검찰발 기사들이 언론에 의해 많이 쏟아진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엄 국장의 그 다음 발언을 주목했는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어제(11일) 정경심 교수를 기소했는데 혐의가 15개다. 하지만 정 교수 측에서는 다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 공판에서 정 교수가 아마 반대 증거를 꺼낼 것이다. 어쩌면 법원이 가장 많은 진실들이 오픈되는 장일 것이다. (언론과 기자들이) 그곳으로 가자는 것이다.” 

저는 엄 국장이 말한 것처럼 현재 ‘검찰 중심’의 취재시스템이 아니라 ‘법원 공판 중심’이었다면 정경심 교수와 관련한 보도들도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봅니다. 오래전부터 ‘출입처 중심의 취재 관행’을 비판해온 입장에서 저 역시 공판 중심의 취재시스템으로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제가 엄경철 KBS 신임 보도국장의 ‘실험’에 지지를 보내는 이유입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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