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보수 언론과 유튜버들의 정치적 이용은 괜찮나?
“서울 관악구 인헌고 학생들로 구성된 ‘학생수호연합’이 폭로한 이 학교 일부 교사들의 편향 정치 교육의 실상은 충격적이고 참담했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수업 중에 ‘조국 관련 가짜 뉴스를 믿으면 다 개, 돼지’ ‘자한당은 망한다’ ‘이명박·박근혜는 국격을 말할 자격이 없는 사기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자(24일) 중앙일보 사설 <참담하고 위험한 인헌고 일부 교사들의 ‘편향 정치 교육’>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른바 ‘인헌고 논란’과 관련해 중앙일보가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만약 중앙일보가 사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고 ‘학생수호연합’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자아(自我)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균형적 사고와 인지 능력을 키워주지는 못할 망정 편향된 정치의식을 강요하는 교육자는 더 이상 현장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중앙일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얘기입니다.
인헌고 일부 학생들의 주장은 아직 주장일 뿐이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실명을 공개하며 공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는 점에서 언론이 이를 주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직 주장일 뿐입니다. 인헌고에서 ‘학생수호연합’이 주장하는 내용과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데다 학교 측에서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어제(23일)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한 리포트를 잠깐 볼까요?
“하지만 교사가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인헌고 학생 A]
(선생님이) 강요를 한 적도 없고 사상을 주입한 적도 없고, 일부 소수 학생들이 너무 선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헌고 학생 B]
저는 (기자회견 한) 학생수호연합한테 욕먹었어요, 빨갱이라고… 말할 거리가 아니라서 말을 안하는 거거든요. 그냥 그런 일이 없었어요.
교육청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였고, 문제가 발견되면 교사 면담 등의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MBC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고, 학교와 교육청의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내용을 전하면서 ‘이견’이 나오고 있다는 쪽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물론 ‘학생수호연합’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고등학생이 실명을 공개하고 기자회견까지 했다면 학교와 교육당국은 당연히 진상조사에 나서야 합니다.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고 언론이 곧바로 사실로 단정해서 보도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 ‘학생수호연합’측이 주장하는 내용과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일부 언론은 관련 내용을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보수 유튜버들의 ‘정치쟁점화’ … 모른 척 하는 언론들
앞서 소개한 중앙일보 사설은 물론이고 오늘(24일)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교사가 정치적 편향을 강요하는 학교 현장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정치색을 드러내고 편향된 사상을 강요하는 것은 겁박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제가 보기에 ‘너무 앞서간’ 주장입니다.
저는 다른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이용하려는 일부 세력의 행태에 대해 왜 상당수 언론이 눈을 감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제(23일) 인헌고 부근은 일부 학생들의 기자회견을 생중계하기 위해 보수 성향의 유투버들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현장에선 ‘빨갱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정확한 진상규명이 필요하지만 그 전에 정치색 짙은 특정 세력이 학생들 문제에 개입하면서 이 문제는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가 됐습니다. 더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은 인헌고에서 나오고 있는 ‘다른 목소리’도 거의 주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헌고 학생회장단이 어제(23일) 입장문을 냈습니다. 언론에 제대로 보도가 안 됐습니다만 해당 입장문을 보면 현재 언론 보도가 얼마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대략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잘못하신 것이 있다면 마땅한 조치가 있을 것이고 학생과 갈등이 있다면 학교 내에서 대화로 해결해야 합니다. 수능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고 학생들에게도 중요한 시기입니다. 부디 우리의 교육권을 지켜주세요.”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마저도 정치 쟁점화 하는 일부 보수유튜버들과 언론들이 들어야 할 목소리입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