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취재과정을 다 밝히라는 윤석열 총장…매우 위험하다
“해당 언론사가 취재 과정을 밝히고 명예훼손에 대해 사과한다면 고소 유지를 재고해 보겠다. ‘(접대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 밝혀졌는데도 고소를 유지해야 하냐”는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의 질문에도 ‘사과는 받아야겠다’고 답변했다.”
오늘자(18일) 한국일보 3면에 실린 기사 <윤석열 “한겨레 ‘접대 의혹’ 보도, 사과는 받아야겠다”> 가운데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어제(17일)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놀라울 만한 발언’을 많이 했습니다만 다른 것은 일단 논외로 하고 오늘은 이 얘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국회의원이 고소 취하 주문 … 정작 언론은 말이 없다
제가 어제(17일) 대검 국정감사에서 주목한 포인트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국회의원이 검찰총장에게 한겨레 기자에 대한 고소 취하를 주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몇 가지만 정리해 볼까요?
“검찰총장이 고소인인 사건 자체가 적절하냐. 검사가 언론사 기자를 고소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나도 윤중천에게 접대를 받았다고 윤 총장과 함께 (온라인상에) 이름이 올라갔지만 (그 누구도) 고소하지 않을 것이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소에도 나름 공익이 있지만 또 다른 문제점과 부작용도 있다. 총장이 고소하니까 LTE급으로 수사를 하고, 검찰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선택적 정의라는 말을 한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외에도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 등이 윤 총장에게 고소를 취하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미 고발뉴스를 통해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자신에 대한 언론보도를 두고 검찰총장이 관할 지검에 기자를 고소한 것-저는 이해충돌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겨레 보도가 전적으로 온당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겨레 보도의 적절성 여부는 별개로 논의하고 토론해야 할 문제입니다. 제가 계속 묻고 있는 건, 검찰총장이 자신과 관련한 보도를 관할 지청에 고소하는 게 온당한가 하는 겁니다. 이를 지적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언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구요.
그런데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제(17일) 국정감사장에서 윤석열 총장이 한겨레를 향해 지면에 공식 사과할 것을 요구했는데도 언론은 ‘국감장 풍경’으로 덤덤히 전할 뿐 윤 총장 발언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등에 대해선 입장 표명이 없습니다.
국감장에서 총장이 ‘저렇게 강경한 입장’을 밝혔는데 관할 지청인 서부지검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저는 검찰총장이 자신의 명예훼손 사건을 ‘이런 식으로’ 고소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듭니다. 이건 ‘요청’이 아니라 ‘지시’ 혹은 ‘압박’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총장이 한겨레 기자를 명예훼손을 고소하고, 수사에 착수할 때도 대다수 언론은 ‘침묵’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어제(17일) 국정감사에선 ‘공개적으로 한겨레의 지면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해충돌이 분명한 사안임에도 대다수 언론은 ‘입도 뻥끗’ 안하는 분위기입니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취재과정을 다 밝히라? 윤석열 총장은 고소한 의도가 무엇일까
어제(17일) 국감장에서 제가 눈여겨 봤던 윤 총장의 발언이 또 하나 있습니다. “취재 과정을 다 밝히고 …”라고 한 부분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보면서 윤 총장이 한겨레 기자를 고소한 이유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1일 제출한 고소장에는 한겨레21 기자 외에 ‘보도에 관여한 이들’이라는 취지의 표현이 나옵니다. 국민일보 등이 보도한 내용인데요. 고소장에 성명을 특정하지 않은 채 ‘보도에 관여한 이들’이라고 했다면 윤 총장 명예훼손 사건은 “보도의 사실 여부를 넘어서 누가 취재정보를 제공했느냐까지 수사 대상이 될”(JTBC)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적절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 어제(17일) 국정감사장에서 윤 총장이 “취재 과정을 다 밝히고 명예훼손이 된 것을 사과한다고 (신문) 지면에 밝힌다면 고소를 유지할지 재고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한겨레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을 밝히라는 요구나 마찬가지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팩트체크 전문매체 ‘뉴스톱’ 김준일 대표가 오늘(1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행간’에서 지적한 내용이지만 윤석열 총장은 “여권 쪽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윤석열에 불리한 보도를 해 자신을 찍어내려는 의도가 한겨레 보도에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취재 과정을 다 밝히라’는 요구를 국감장에서 공개적으로 할 수는 없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고소장에 ‘보도에 관여한 이들’이라고 한 점 △국감장에서 ‘취재과정을 밝히라’고 발언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윤 총장은 결국 ‘누가 정보를 제공했는지’가 궁금한 것이고 이를 알아내겠다는 것 아닐까요?
상황을 종합하면 언론 입장에선 매우 압박을 느낄 수 있는 검찰총장의 고소이자 발언입니다.
그런데 상당수 언론이 ‘이런 압박’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만만한(?) ‘알릴레오’에 대해선 언론자유와 품격 등을 거론하며 엄청난 기사를 쏟아내면서 법무부 장관도 ‘날리는’ 위세 등등한 검찰총장 앞에선 ‘찍소리’도 못한다고 하면 지나친 지적일까요? 이런 진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만 대체 언론은 윤 총장의 ‘언론 압박’에 왜 조용히 있는 걸까요? 누가 답 좀 해주기 바랍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