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사드로 인한 ‘불협화음’, 한반도 정전협정체제 모순에서 격화
북한이 9일 오전 5차 핵 시험을 감행한 것은 정권수립 68주년을 자축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맞서기 위한 다목적 노림수로 분석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과시는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 속에서 가해지는 경제, 군사적 압박과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정면 승부수의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은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인 지난 5일 황해북도 황주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노동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한데 이어 올 들어 두 번째 핵 시험을 강행했다. 유관국들이 경악하는 모습을 보여 강도 높은 유엔대북 제재가 취해질 전망이다.
북한 핵에 대해 핵 확산 금지 조약(NPT)에서 인정하는 핵무기 보유국으로 핵클럽으로 불리는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핵 이기주의가 완강한 측면이 강해 안보리 대북 제재의 강도가 높아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안보리의 대북 제재 협의가 10일 시작됐으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한미 두 나라가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와 함께 핫이슈인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중국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사드에 대해 러시아도 중국과 함께 적극 반대 입장인 것도 변수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사드의 한국 배치 불가피성을 G20 정상회의 기간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 강조했지만 두 나라 정상으로부터 ‘사드 배치 반대,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 해결’이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은 또한 지난 7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 도중 열린 제18차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중재재판 판결을 계기로 평화적이고 창의적인 외교 노력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해 사실상 미국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뉴시스 7일>
국제상설재판소(PCA)는 지난 7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중국의 패소 결정을 내렸고 중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초강경 입장을 펴고 동남아국가를 상대로 으름장을 놓고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수차 예고 발언을 내놓았던 이번 핵실험에 대한 유관국들의 반응을 보면 편차가 분명해 향후 대북 제재 등 한반도 상황에 대해 대응이 차이가 클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선 가장 강력한 반응을 보인 박 대통령의 경우 “김정은 정권이 핵실험을 통해 얻을 것은 국제사회의 더욱 강도 높은 제재와 고립뿐이며, 이러한 도발은 결국 자멸의 길을 더욱 재촉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의 공조 하에 유엔 안보리 및 양자 차원에서 추가적으로 더욱 강력한 제재조치를 강구하는 한편,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뉴스앤뉴스 9일>
박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북한에 대한 종래의 봉쇄와 압박 정책을 지속할 방침을 강조한 것으로 향후 남북간 대화나 협상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북한 핵과 미사일의 돈줄을 차단한다며 강행한 개성공단 폐쇄나, 이명박 대통령의 금강산 관광 중단과 5.24 조치 이후에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조치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두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한 회의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5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대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성명을 통해 “북한에 대해 엄중히 항의하고, 가장 강한 말로 비난한다”며 강하게 항의하고 추가 대북 제재에 나설 것을 밝혀 종래처럼 한미 두 나라와 공조할 방침을 내비쳤다.<연합뉴스 9일>
중국은 9일 북한이 제5차 핵실험을 강행한 데 대한 외교부 성명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오늘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반대를 고려하지 않고 다시 핵실험을 진행해 결연한 반대를 표명한다”면서 “중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확고히 추진하면서 6자회담을 통해 관련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을 견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민일보 9일> 중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의 입장을 여전히 밝히고 있다.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과 일본 외무장관과 이 문제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시리아 사태 논의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일 외무장관과 협상할 예정이다. <이타르타스 통신 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과 관련, 안보리 차원의 새로운 결의 채택을 포함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더욱 강력히 압박하기로 했으며 “미국이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를 비롯해 한미 상호방위 조약에 입각한 모든 조치를 취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9일>
북한의 연이은 핵 시험과 미사일 발사, 사드 한국 배치 추진 등으로 인한 불협화음은 1953년 체결된 한반도 정전협정 체제의 모순이 격화되고 그로 인한 질적인 변화 속의 심한 균열이 생기면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정전협정 체제는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껍질만 남은 채 한반도 정세 변화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한국은 중국, 러시아와 수교를 하면서 한중간 경제 관계 밀착으로 이어졌고 북한은 미국과의 수교를 희망했지만 이뤄지지 않으면서 핵과 미사일 추진 정책 강행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가 사드와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서 미국과 수평적 관계가 아닌 것이 거듭 확인된 바 있다.
중국의 경우 정전협정 당사국이면서 평화협정 전환에 독자적인 강력한 추진 방침을 실행한 적이 없고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해 미국과의 공조 속에 대북 유엔 제재에 합의, 이행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6자회담을 통해 추진하다가 벽에 부딪힌 상황이다. 중국은 특히 사드의 한국 배치 추진에 대해 한국의 등거리 외교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파기된 것에 대한 민감한 반응과 함께 한국에 대한 보복성 대책을 중국 언론을 통해 밝히는 방식으로 사드 백지화를 모색하는 모양을 취한다.
중국이 한국 경제에 대해 직접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점이 정전협정 당시 또는 수교 이전의 한중관계와 차이가 있다. 중국과 한국은 사드로 인해 수교 이래 최악의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중국이 평화협정을 강력 추진할지 여부와 북한에 대해 유엔 제재에 동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동북아의 신냉전 등장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 등이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미국이 사드 배치와 남중국해 분쟁을 통해 중국을 압박할 경우 중국이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북한이 위협을 느낄 만큼의 강력한 태도를 취할지는 의문이다. 러시아의 경우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면서 남북한과 러시아의 3각 경제협력 관계 추진을 한국에 압박하고 있어서 향후 북한에 대한 초강경 제재를 가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유엔 제재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입장에 따라 결의안 추진, 의장 성명, 언론성명 등의 형식으로 이뤄졌지만 북한의 행보를 멈추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반도 주변 4강은 상황 변화에 따라 대응할 다양한 카드를 준비하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사드와 북한 5차 핵 시험 이후에도 유관국들의 대응 자세는 종전처럼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취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한국은 ‘대화 협상은 없다’는 태도가 너무 명백하다. 미국도 한국과 유사한 대북정책이면서도 비공식 대화 채널을 최근까지 유지하고 자국민의 북한 방문을 금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우 민간 차원의 대북 교류는 전면 금지된 상태다. 특히 박 대통령은 북에 대해 ‘자멸, 김정은 정신상태, 통제불능’이라며 최고 수준의 정치적 격정을 쏟아내고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징후를 보이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지휘부를 직접 겨냥해 응징 보복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해법 제시보다는 규탄과 응징에 주력하는 태도를 지속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미뤄 박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을 전제로 한 대북 압박과 봉쇄 정책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독자적 역량 확대를 더 어렵게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이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더욱 기울 경우 중국과의 대립각을 더 크게 하면서 정전체제의 모순은 더욱 극대화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붕괴하지 않을 경우 현 정권의 대북 정책이 향후 어떻게 평가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 이 글은 자유언론실천재단(http://www.kopf.kr)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