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없는 연금개혁, 정치 게임 중단해야”

“청와대, 친박, 비박, 야당.. 각각 제 주판알 튕기기 바빠”

지난 2일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 연금기여율(연금보험료)은 현재 7%에서 향후 5년 동안 9%까지 순차적으로 인상하고, 연금지급율(퇴직연금액)은 현행 1.9%에서 향후 20년간 1.7%로 낮추는 것이 골자다. 월급이 300만원인 공무원이 30년 근무할 경우 월보험로는 21만원에서 27만원으로 오르고, 퇴직 후 받게 되는 연금은 월 171만원에서 153만원으로 18만원 줄게 된다.

여야 합의 깬 친박 “협상결과는 퍼주기식 포퓰리즘”

여야는 이 안에 합의하면서 소득대체율(생애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수령액)을 40%에서 50%로 인상하고, 공무원연금개혁 재정절감분의 20%를 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국민연금에 투입한다는 내용을 근간으로 한 공적연금 강화방안과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조정안을 포함시켰다. 이것을 두고 또 다시 각 정파 간 대립이 불거졌다.

이미지출처 = 오주르디 블로그
이미지출처 = 오주르디 블로그

여당 친박계 중진들은 “여야 협상 결과는 개악”이자 “퍼주기식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비난한다. 김태호 최고의원은 “야당에게 된통 되치기 당한 꼴”이라며 “자신의 모든 직을 걸로 (합의안을) 철회시켜 나가겠다”고 목청을 높였고, 서청원·김태흠·이장우 의원 등은 “공무원 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오히려 혹을 붙인 꼴”이라며 당지도부를 성토했다. 그러자 김무성 대표는 “제대로 알고 지적하기 바란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여당의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간파한 야당은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명문화해 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여당은 수치를 못 박을 수 없다고 맞섰다. 야당이 숫자를 명기하지 않는데 동의하겠다는 뜻을 내비쳐 고비를 넘기는 듯 했지만, 문재인 야당대표가 “소득대체율 인상은 사회적대타협의 핵심”이라며 ‘50% 명기’의 불가피성을 강조하자 상황은 또 바뀌었다. 규칙에 명시하지 않는 대신 부칙의 별도 첨부서류에 반영하자는 절충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이 마저 친박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다.

승승장구 김무성에게 큰 펀치 날린 청와대

친박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배경에 청와대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당초 기대에 못 미쳐 아쉽다”며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것에는 국민의 동의와 해당 부처의 신중한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와대 비서실은 “50%로 인상할 경우 570조원이 더 든다”며 대통령을 거들었다. 대통령이 여야 합의를 ‘월권’으로 규정하고 나선 것이다.

야당은 박 대통령과 친박계를 싸잡아 비난했다. 문재인 대표는 “청와대가 앞장서 괴담을 유포하더니 여야 합의를 뒤집었다”며 “야당 무시, 국회 무시, 의회민주주의 무시로 정부와 여야가 합의한 사회적 대타협을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도 청와대를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도) 다 알고 있었으면서 (합의를) 하고 나니 이럴 수 있느냐”며 불만을 표출했고, 유승민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논의 과정을 다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청와대와 따져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금개혁 중심에 있어야 할 국민인데...

정치권이 뜨겁다. 하지만 정작 연금개혁의 중심에 있어야 할 국민에게는 쟁점이 뭔지 차분히 살펴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국민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각 정파들의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연금 개혁이 정치 게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연금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공무원연금개혁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국민연금이 더 문제라는 얘기다. 2060년 국민연금 고갈 상태가 도래할 경우 국민연금이 운용했던 주식, 부동산, 해외투자, 예금 등을 다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주식과 금융시장이 붕괴되고 부동산 시장도 파탄을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지출처 = 오주르디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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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면 수지균형보험료가 현재의 두 배 이상 높아져 20~30대 청년들이 장년이 됐을 때 세금폭탄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당 수준의 보험료 인상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현재 젊은 세대는 연금을 수령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 거라는 우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 친박, 비박, 야당... 각기 제 주판알 튕기기 바빠

세대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도 보인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기로 한 여야 합의에 대해 청년층은 ‘기성세대의 이기주의’라고 반발한다. 반면, 연금혜택을 받고 있거나 곧 받게 될 장년·노년층은 인상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제 이득만 따진다. 박 대통령은 당장 공무원연금개혁을 밀어붙이려 안달이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식이다.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게 연금개혁인 만큼 조바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잘 되면 역사에 남을 일인데 잡음이 따른들 무슨 대수냐는 생각에서 무리수를 둬도 그만이라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게 단임제 대통령들이다. 박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개혁이 달갑지 않다. 대통령의 뜻을 꺾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밀어붙이지만 공무원 집단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득대체율 50% 인상’ 은 '공무원층 감표'를 벌충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장년·노년층의 호응을 이끌어 내 지지기반을 견고히 다지는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연금개혁과 국민연금을 연계하는 야당의 요구에 합의해준 것으로 보인다.

합의안대로 진행될 경우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쪽은 야당이다. 공무원연금개혁 재정절감분 20%을 연금사각지대에 지원하게 되면 서민층으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고, 소득대체율 인상은 지지층이 얇은 장년·노년층에서 야당 호감도가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치 게임 그만, 국민이 판단할 시간과 기회 줘야 할 때

정치권은 성급하기만 하다. 지난 2일 여야가 합의했다는 안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합의안대로 시행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험료가 얼마나 오를지, 받게 될 연금액에 어느 정도 영향이 미칠지, 보험료 인상폭 대비 연금수령액 증가폭이 어느 정도일지 따져볼 시간도 없이 4월 국회 처리를 밀어붙이려 했다.

국민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줄 중대사다. 그런데도 여야가 합의서에 서명한 잉크도 마르기 전에 국민에게는 충분한 설명 없이 국회통과를 시도했다. 더 이상 자신들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연금개혁 문제를 재단하려 해서는 안 된다. 청와대와 여야 모두 연금개혁과 관련된 정치 게임을 일단 중단하기 바란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좋은지, 어떤 방안이 최대다수의 국민에게 최대치의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인지,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간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지금 정치권이 할 일은 그간 고심한 내용을 국민에게 있는 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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