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뒷받침할 예산 부족.. 시민단체 “아동보호체계 퇴행” 우려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처벌을 크게 강화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29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상습적으로 자녀를 학대하거나 크게 다치게 한 부모는 친권이 박탈되고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다.
이번 특례법은 지난해 전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칠곡 계모 사건’과 ‘울산 계모 사건’ 이후 만들어졌다. 갈비뼈 16대가 부러지는 등 끔찍한 학대를 저지른 계모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법원은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15년형을 선고했을 뿐이다. 국민들은 터무니없이 가벼운 처벌과 허술한 학대아동 보호시스템을 비판했고, 뒤늦게 이같은 내용을 보완할 특례법을 제정했다.
특례법은 현행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집행유예가 가능한 학대치사죄에 대해 법정형을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높이고 특별한 감경사유가 없는 한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학대를 당한 아동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즉시 보호될 수 있게 된다.
아동에 중상해를 입히거나 학대를 가한 부모의 친권 상실도 가능해지는데, 상습적으로 아동을 학대하거나 아동복지시설에 근무하면서 아동학대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가중 처벌이 된다.
경미한 학대사건의 경우엔 아동보호사건으로 분류해 가정법원이 형벌 대신 가해자에게 접근 금지, 친권 제한 및 정지, 사회봉사·수강명령, 감호·치료 위탁 등 처분을 내릴 수 있다.
특히 아동학대 신고의무도 강화됐다. 아동학대 범죄 발생시뿐만 아니라 학대 의혹이 들기만해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했다. 미신고자에 대한 과태료 기준은 ‘300만원 이하’에서 ‘500만원 이하’로 상향됐다.
법무부는 이번 법안에 대해 “지난 해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연이어 발생함에 따라 아동학대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여 제정된 특별법”이라며 “종래 ‘가정 내 훈육’으로 치부되던 아동학대를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특례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법안만 만들어 놓고 예산을 뒷받침하지 않아 학대 받는 아동을 보호·상담할 지역아동보호기관의 증설과 상담원 확충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지역기관 증설과 피해아동 심리 치료 등에 쓰겠다며 572억원의 예산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기획재정부는 이 중 169억원만 책정했다. 복지부는 현재 기역기관당 평균 6.8명인 상담원 수를 15명으로 늘려야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현장조사와 사후관리가 가능하다고 요구했으나 결국 예산부족으로 무산됐다. 정부가 아동학대 근절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세이브더칠드런 등 아동·사회복지단체는 “인프라 부족과 인력난으로 지금도 신규사건 현장조사 이외에 예방활동이나 사후관리는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라며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인프라 확충 없이 29일 특례법이 시행되고, 내년도 예산안이 현행대로 통과되면 아동보호체계는 또다시 퇴행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