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성의 사람] 어느 삶의 천재 이야기

세상에는 머리 좋은 천재들이 있다. 시험 잘 보고 재능이 좋은 사람들이다. 이들보다는 삶의 천재가 드물다. 이들은 고난을 자기 근육으로 바꿔낸 인간들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이끈 사람들은 주로 삶의 천재들이다. 전봉준 안중근 김구 등은 머리 좋은 인간이라기보다 삶을 모두 건 결단으로 역사의 중심부로 진입하여 이정표를 세운 사람들이다. 김대중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시대의 고난을 바탕으로 세상을 비추는 빛을 만들어낸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대개 삶의 천재들에게는 노선이 따로 필요하지가 않다. 삶이 노선을 만들어내는 터다. 이는 책상물림이 형성시켜내는 이론의 노선과는 다르다.

십여년 전 이재명과 함께 공부를 하고 그가 살아온 길을 듣고 글로 정리해서 책으로 묶어낸 적이 있다. <굽은 팔>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말삼곤 하는 성장기 이야기의 저본이 된 셈이다. 그때 그를 주목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이 과정에 내가 그에게서 듣고 배우고 새삼 깨달은 것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이재명의 도전과 성취가 피와 땀을 흘려도 약자로 상처 입은 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삶의 질료가 되고 노정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점이었다. 이재명은 일어서는 사람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재명을 세상에 소개하고 싶었다. 그는 우리 세대가 보통으로 겪은 것보다 훨씬 시련에 찬 세월을 살아내야 했다. 때로 그는 쓰러졌지만 곧 일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힘과 이윽고 지혜를 터득해갔다. 이재명은 집안도, 학력도, 친구도, 배경도 없는 인물이었다. 하물며 그는 사주조차도 없다. 사주를 만들기 위해 어머니가 점바치(점쟁이)에게 가서 날짜와 시간을 얻은 뒤에야 사주가 생겼다. 사주없는 자는 날마다 생일이거나 스스로가 사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은 오히려 어떤 이들에게는 강력한 혐오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이재명에게만 그러한 게 아니다. 증오와 혐오를 무기로 삼는 세력은 언제나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걸 안다. 나는 가난한 자, 배우지 못한 자가 얼마나 고통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보아 왔고 그들 편에 서야겠다고 다짐한 스무 살 봄 이래로 이 판단이 그릇되었다고 여긴 적은 한 번도 없다. 쿠데타 상황에서 국회 담장을 넘으면서 했던 것처럼 이재명은 쓰러진 사람들 속에서 일어서 외치는 사람이다. 나는 이것이 지도자의 첫 번째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평온한 사회에서는 지도자가 부재해도 지하철과 버스가 정시에 도착한다. 이 체계가 무너졌을 때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는 자, 또는 자기 이익을 위해 일부러 위기를 만들어내는 자가 나라를 망친다.

어찌 보면 이재명은 무얼 하려고 굳이 밤을 세워가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는 정치인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못 입은 것, 못 살아본 것, 못 해본 것을 세상에 돌려주면 그만이다. 실로 그는 그 꿈을 가지고 있었다. 교복 못 입는 학생이 없게 하고, 좀 더 나은 집에 신혼 부부가 살게 하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노인이 없게 하고자 했다. 흔히 말하는 정책은 그저 머리가 아니라 그의 삶과 가슴에서 절로 쏟아져 나오곤 했다. 절로 하고 싶은 게 많은 인간이 정치를 해야 한다. 머리에 있는 것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십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삶의 천재들은 머리와 가슴이, 뇌와 심장이 가까운 존재들이다. 이것이 심장의 정치가다.

이재명은 안동 출신이다. 스스로 말하고 있듯 제2의 고향은 광주다. 오월 광주를 통해 그는 다시 태어났다. 오월 광주를 말할 때 오월은 광주를 시간화하고 광주는 오월을 공간화한다. 오월 광주와 만나면서 이재명은 못 배운 소년공에서 사회의식을 뚜렷하게 가진 청년이 되었다. 이때 그는 역사가 주는 무게, 자기 시대에 대한 부채와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안동이지만 그를 단련시킨 건 오월 광주였다고 압축해서 말할 수 있다. 이재명의 정치활동은 대구 경북 사람들 상당수가 마침내 호남 사람들과 한 곳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내포하고 있다. 지역 운운하는 건 우리 세대에 끝내야만 하는 과제다. 분단이 삼팔선에 의한 강제 분할이라면 지역은 정서의 분단이다. 책임을 누구에게 묻든 이는 우리 내부에서 자초한 일이다. 이재명은 이를 완전히 고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남 출신 정치인이다. 이 또한 그가 의도했다기보다는 삶이 만들어낸 자산이다.

어떤 이는 그에게 희망을 발견하고, 어떤 이는 그의 삶에서 혐오를 끄집어내고, 어떤 이는 그에게서 한계를 찾아낸다.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저 그릇되었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게다. 이재명을 오래 보아왔고 그와 함께 공부를 하고 책을 쓰면서 확신을 하게 한 건 그가 살아오면서 획득한 굳건한 건 삶이다. 잎새는 화려하지 않을지 몰라도 뿌리와 줄기는 실로 튼튼한 인물이다. 머리 좋은 벗도 얻으면 좋겠지만 삶이 단단한 벗이 더 든든할 수 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 둔 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변치 않은 삶의 노정을 걸어온 자는 가히 믿을 만하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과 가치에 대해 배신을 모른다. 오늘은 어제와 또 어제가 쌓여서 만들어낸 것이지 수사가 화려한 몇 마디 말이 아니다. 아직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거든 삶을 중심으로 결정한다면 큰 패착이 없을 줄 안다.

다른 하나는 이재명이 쿠데타와 내란을 확실히 끝낼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발전도 좋고 꿈꾸는 미래도 기대해야 하지만 내란을 완전히 종식시켜야 하는 게 제21대 대선이 지닌 가장 큰 책무다. 여러 높은 전망과 바람이 있는 줄 잘 알고 있지만 적어도 이것만 가지고도 이번 대선 승리는 그 자체로 목적의 절반 이상은 이루는 셈이다.

▲ 서해성 작가
▲ 서해성 작가

이재명은 근현대 한국사를 개척해온 인물들에게서 배웠다. 또 자기 삶에서 익혔다. 오월 광주와 민주화운동을 자기 근육으로 바꿔냈다. 하물며 내란세력에게서도 결코 가지 말아야 할 길은 분명하게 변별해내는 뼈 아픈 소득을 얻어냈다. 오래도록 그는 행동으로, 삶으로 자기를 세상에 입증해왔다. 생각은 삶을 튼튼하게 만들어내고 삶이 튼튼한 자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강한 세상이다. 자기 고난을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바꿔낸 이 삶의 천재가 앞장서 열어갈 세상을 기다린다.

저작권자 © 고발뉴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