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성의 사람] 혼자 보내기에는

김영현 형 먼 길 가시는 길에

말단비대증 굵은 손가락으로 써내려간 
문장은 보드라웠다. 

자신이 고문 받던 기억도 
수 놓듯이 쓰지 않고는 못 배겨 냈다. 

불밭을 헤쳐가는 치열한 현실문학에 
물기 촉촉한 인간의 다리를 놓으면서 나아갔다. 

술자리 끝나고 날마다 이별을 두려워하여 
벗이 앉았다가 떠난 굳은 돌에서도 눈물을 보았다. 

늘 일렁이는 큰 눈망울은 
펜으로 찍어 쓰면 먹으로 번질 것만 같았다. 

크낙새 우는 하늘을 붙잡아놓고 대포 한 잔 하자던 
옛 약속을 잊고 가버렸다. 

거기가 어디라고 혼자 보내기에는 
봄 빗줄기 길게 날려서 저 길 가도가도 멀겠구나. 

▲ 진보문학의 산실로서의 실천문학사를 이끌었던 김영현 작가가 9일 별세했다. 향년 70.
▲ 진보문학의 산실로서의 실천문학사를 이끌었던 김영현 작가가 9일 별세했다. 향년 70.

* 나이든 선생 선배들만 떠나는 줄 알았더니 봄비 뿌리는 오늘(9일) 하오에 가까운 선배 부고를 받았다. 죽음이여 너는 좋겠다. 너를 봄 강물 같은 문장으로 새겨줄 사람 방금 내려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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