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성의 사람] 지상에 마지막 인간, 송기원

송기원 선배 가시는 길에

먼 길을 앞둔 벗과 이별주 마시느라 끝내 그를 못 보내고 
명절날 고향 없는 젓가락집 여인네들 눈물 챙기느라 집에를 못 갔다. 
세상사 한 점 모순없는 모순 투성이였다. 

보안법 재판정에서 판사에게 나는 잡범이니 가두고 선량한 다른 사람들은 풀어주라던 
악하고 모진 데라곤 하나 없는 감때사나운 모진 팔짜였다. 
빨갱이 아들 두었다는 손가락질에 육이오 때 총 맞아 반신불수가 된 어머니가 대문에 목을 매고 세상을 떠났을 때도 
아무도 미워할줄 모르는 순한 소 눈빛이었다. 
분단이 앗아간 이름들 낱낱이 꿰고 들려주던 인간학 사전이었다. 
바보였다. 모든 술자리에서 끝을 지키고 가난뱅이 선후배를 골라서 차비를 찔러넣어주는 사정없이 쪼다였다. 
옥에 간 모든 글쟁이를 글과 삶으로 챙긴 옥바라지였다. 
인생사 팔구할이 남을 위한 노정이었다. 

전국 백일장을 모두 휩쓸어 대학에 들어갈 때 무시험 합격자였는데도 굳이 공평하게 시험을 봐서 떨어진 소년 문학 천재였다. 
운명은 거기 예정되어 있었다. 
시를 소설보다 구구하게 쓰고 소설을 시보다 베를 짜듯 쓴 
섬세하고 막힘없는 주술사였다. 
옥에서 구메밥 먹을 때 만난 도사에게 배워 한때 공중부양도 조금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탯줄을 묻은 곳은 남녘 갯가였어도 
넋 깊은 곳 한 뼘 쯤은 가보지 않은 땅 어디가 고향이었다. 

저 낮은 것들, 더 버림 받은 이름없는 것들을 하나하나 품고 울어 사람을 사람으로 살게 한 
늘 어딘가에 조금 취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탑골 주막에서 윗니 드러내고 희미하게 웃으면 구절초 꽃이 좌중이 피어나게 하는 인간꽃이었다. 
세상살이 한 점 티끌없는 맑은 티끌이었다. 
데모할 때는 알아서 잘 하고 술 생각 날 때는 연락하라던 
사람 중 사람이었다. 
후배들 술배를 채워주고 제 주머니는 날마다 빈털털이라서 
인간사 한 점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부자였다. 

▲ 서해성 작가
▲ 서해성 작가

지상에 마지막 인간아, 
비내리는 이 밤 희미한 귀뚜라미 소리 끌고 
한 점 먼지 되어 어디메로 불려가는가. 뵤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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