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시/ 서해성] 렌틸콩

▲ 서해성 작가.
▲ 서해성 작가.

쫓기는 가자 사람들 
주머니 속에 한 줌 넣고 가서 
사방이 막힌 팔레스타인 장벽 밑에 
다시 뿌린다. 

이 손을 놓치지 말자. 
언제나 다정하게 한 쌍씩 콩깍지에 들어가 산다. 
흙이 메말라도 살아내야 한다. 
높은 사막 능선인들 어쩌랴.  
추운 밤 어미가 얼어죽어도 
렌틸 종자만은 남겨두어라. 
그건 네 자식을 먹는 것이다. 

먼 별빛은 신맛이 나고  
달빛에서 단맛이 날 때까지
빌고 빈다.  
아침이면 절로 향신료가 스미길 비손한 게 
몇 해더냐. 
몇 해이더냐. 

사나운 모래바람에 멀리 날려가 
철조망 너머에서 
흰 싹이 돋는 날 돌아가리니. 
자루 속에 렌틸콩 몇 줌 넣고. 
다시 돌아가련다. 
사내들은 총을 엇메고. 

렌틸콩은 
장벽 안을 떠도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얼굴. 
렌틸 스프를 떠먹으면 
볼록한 콩알 하나하나가 렌즈인 양 맛이 확대되어 보인다. 
쫓겨가는 어머니들 기도소리가 
굽은 숟가락 뒤에서
중얼중얼 들린다. 

* lentil의 어원은 Lens다. 이 볼록한 콩 모양에서 렌즈라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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