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치재를 배경으로 벌인 검경의 ‘덤앤더머’

특별법 수사권 안 돼? ‘덤’과 ‘더머’ 끔찍이 아끼는 정권

이미지출처='사람과 세상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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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을 검거하기 위한 검경의 60일 대장정. 들여다보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짐 케리와 제프 다니엘스가 덜떨어진 두 남자의 좌충우돌 해프닝을 그린 영화 ‘덤엔더머’가 그것이다. 송치재를 배경으로 벌인 검찰과 경찰의 작태는 ‘덤앤더머’의 두 주인공이 시샘할 정도다.

국민 앞에 등장한 ‘덤앤더머’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도 어처구니없어 화조차 못내고 웃어야 할 정도의 황망한 짓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실 속에서 ‘덤앤더머’를 만나기 쉽지 않건만 2014년 여름 국민 앞에 보란 듯 모습을 드러냈다. 검경의 작태는 너무 황당해서 화도 낼 수도 없다. 차라리 웃자. ‘2014년 버전의 덤앤더머’ 한편 봤다고 치자.

금수원 압수수색이 임박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유병언은 4월 23일 금수원을 나와 구원파 신도 집을 전전하다가 10일 뒤인 5월 3일 순천 송치재 부근 목조건물(검경이 ‘별장’으로 호칭/이전에는 식당과 찻집으로 사용)에 몸을 숨긴다.

구속영장을 발부 받은 검찰은 유병언이 순천에 은신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검거 작전에 돌입한다. 송치재 휴게소 식당 주인인 구원파 신도 변씨 부부를 체포한 건 5월 25일 새벽 1시 20분. 은신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이 부부를 취조한 검찰은 이날 오후 4시 경 “유병언을 별장에서 봤다”는 자백을 확보한다.

4시가 조금 넘어 검찰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문은 잠겨 있었다. 은신 중인 사람이 거처의 문을 열어놓고 있을 리 없을 터, 별장으로 출동하기 전 이에 대비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별장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 된 건 출동한 지 5시간 지나서였다.

이미지출처='사람과 세상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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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에 숨어있던 그 사람, 얼마나 웃었을까?

별장 문을 열고 들이닥친 검찰은 미국 국적 신씨의 ‘영어 항변’에 대응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검찰은 유병언이 이미 별장을 빠져 나간 것으로 판단하고 자정 무렵 신씨를 체포해 일단 철수한다. 다음 날(5월 26일) 전남경찰청에 현장 감식을 의뢰하고 송치재 검문 검색을 강화했다.

하지만 유병언은 별장 2층 비밀방에 숨어 있었다. 목재를 이용해 벽처럼 위장한 비밀문 뒤 작은 공간에 몸을 숨긴 상태였다. 유병언만 찾지 못한 게 아니다. 맞은 편 또 다른 비밀방에 숨겨둔 돈이 든 큰 여행가방 두 개도 발견하지 못했다. “자다가 새벽에 깨보니 유병언이 없었고 누군가가 데려간 것 같다”는 신씨의 거짓 진술에 속은 것이다.

공간 일부를 잘라 2층으로 만든 복층구조라서 아래층에서 올려다보면 2층 전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양쪽 끝 모서리에 통나무로 벽을 만들어 그 뒤에 비밀방을 뒀다. 하지만 벽이 상당부분 돌출돼 있어 육안으로도 그 안에 빈 공간이 있을 거라고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검찰은 비밀방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린 것이다. 비밀방에 숨어있던 유병언이 이런 검찰을 보며 얼마나 웃었을까.

이미지출처='SBS', '사람과 세상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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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 진술로 돈가방 확보한 검찰, 잔머리 굴리더니

신씨가 진술을 번복해 “별장 압수수색 당시 유병언이 비밀방에 있었다”고 실토한 건 지난 6월 26일. 다음날인 27일 검찰은 부랴부랴 송치재 별장으로 간다. 신씨의 실토는 사실이었고 정확했다. 비밀방에서 유병언의 흔적과 함께 한화 8억3000만원과 미화 16만 달러가 든 돈가방도 찾아냈다.

이때 검찰이 머리를 쓴다. 돈가방 발견 사실을 경찰은 물론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비밀로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CCTV를 설치했다. 혹여 유병언이나 은닉 협조자가 이 돈을 가지러 별장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고 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유병언은 이미 죽어 부패된 상태. 유령을 잡으려고 CCTV를 설치한 셈이다.

검찰이 유병언 돈가방에 대해 쉬쉬하고 있는 동안 경찰이 뒤통수를 쳤다. 유병언 사체가 송치재 인근 매실밭에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이때가 지난 22일. 검찰이 유병언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를 하면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유병언 검거는 시간 문제로 이미 꼬리를 잡고 있다”고 말한 그 다음날이다.

이미지출처='SBS', '사람과 세상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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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영화 본 초등학생도 가능한 추리, 검경은 못했다

500~1000만원 짜리 고가의 외제 점퍼, 세모스쿠알렌 병, ‘꿈같은 사랑’이라는 문구가 찍힌 가방. 이런 것을 가진 시신이 송치재 별장 부근에서 발견됐다. 사체가 발견된 건 6월 12일. 사체가 유병언 일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올 때까지 무려 40일 걸렸다. 발견 위치가 별장 인근일 뿐더러 유병언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류품이 여럿 나왔는데도 이 사체를 유병언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첩보 영화 몇 편 본 초등학생도 ‘사체가 유병언일 수 있다’고 추론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경은 단순한 추론조차 하지 못했다. 배꼽 잡고 웃으며 뒹굴 수밖에. 이렇게 ‘덤(검찰)’과 더머(경찰)는 영화에서처럼 손발 척척 맞춰가며 국민을 웃겼다.

터질 게 한방 더 있다. 여론의 뭇매를 맞던 경찰에게 당장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유병언이 가지고 다녔다는 돈 가방의 행방을 찾는 일이었다. 다급해진 경찰은 검찰에게 돈 가방 관련 수사 상황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동시에 송치재 별장을 재수사하겠다며 검찰에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이미지출처='오마이뉴스', '사람과 세상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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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 수사권 안 돼? ‘덤’과 ‘더머’ 끔찍이 아끼는 정권

경찰이 재수사를 위해 영장을 신청한 건 지난 23일 오전. 검찰은 당황했다. 재수색이 이뤄지면 경찰이 별장에서 비밀방 존재를 확인할 테고 이렇게 되면 검찰 입장은 똥친 막대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수색영장 발부를 거부할 명분도, 둘러댈 핑계도 없다. 결국 검찰은 “송치재 별장에서 지난 6월 27일 돈 가방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덤’이 돈 가방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던 ‘더머’와 ‘덤’ 때문에 유병언이 호화판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땀 뻘뻘 흘리며 검거 작업을 했을 ‘더머’. 정말 빵 터지는 코미디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런 ‘덤’과 ‘더머’를 끔찍이 아낀다. 세월호 유족들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되는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절규해도 꿈적하지 않은 채 수사권과 기소권은 이 ‘덤앤더머’가 행사하는 게 맞다고 우긴다.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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