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범에 딸을 잃고 고통스런 삶을 살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지난 2007년 12월25일 성탄절 선물을 사러 나간 뒤 유괴돼 숨진 故 이혜진 양의 아빠 이창근 씨가 4일 새벽 1시 심장마비로 숨졌다.

이 씨의 비극은 2007년 혜진 양이 유괴된 지 82일 만에 주검으로 돌아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이 씨의 삶은 모든 것이 바뀌었다. 딸을 찾아 돌아다니느라 인쇄공장도 그만뒀다. 친구를 만나도 할 이야기가 없었다.

대신 세상을 떠난 혜진이의 모습과 딸을 빼앗아간 유괴범을 떠올리며 밤이면 술을 마셨다. 하지만 생계는 포기하지 못해 공공근로사업에 나갔고 폐지를 모아 팔았다. 아내는 2010년부터 식당일을 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딸을 잃고 나서는 세상이 무서워졌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때 해병대에 복무 중이었던 아들 때문에 “아들마저 잃는 줄 알았다”며 펑펑 울었다.

이 씨는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에는 열심히 참석했다. “아픈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가 딸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지난해 12월이다. 혜진이와 함께 희생된 예슬이를 기리는 ‘혜진·예슬양 6주기 추모제’였다. 당시 이 씨는 7년 동안 술로 아픔을 참아온터라 몸을 잘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추모제에서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중얼거리던 이 씨는 결국 석 달도 안 돼 숨을 거뒀다. 이 씨는 혜진이가 묻힌 안양 청계공원묘지에 5일 안장될 예정이다.

▲ ⓒ 전국 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이 씨처럼 아동 유괴로 자식을 잃은 가족의 비극은 여전하다. 혜진·예슬이 사건 때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아동 안전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정부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설치를 늘리고 ‘아동 안전 지킴이집’을 마련했다. ‘아동 지문 사전등록제’도 시행했다.

하지만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는 2만6984명, 2011년에는 2만8099명의 아이들이 실종 됐다. 2012년에도 2만7259명이었다. 이 중 매년 60~120명은 유괴 피해자다.

‘전국 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의 나주봉 회장은 <한겨레>에 “사건이 일어날 때만 관심을 갖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나 회장은 “평소에 아동 유괴·실종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유괴·실종 사건 수사는 경찰이 맡고 예방 교육은 보건복지부가 챙기고 있는데, 별도의 통합기구 마련이나 민관 협력 방안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외국의 경우는 우리보다 앞서서 실종아동 대책을 마련했다. 미국은 1984년 실종아동조력법을 만들고, 경찰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전국 실종·착취아동 방지센터’(NCMEC)도 설립했다. 캐나다 역시 비영리 단체인 ‘국가실종아동서비스’(NMCS)를 만들어 경찰의 실종아동 찾기 전담 부서와 협업하고 있다. 

이 씨의 안타까운 소식에 네티즌들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칠년간 정말 얼마나 큰 고통속에 사셨을지”(lov****), “사건에 대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럽네요. 아주 작은 기본만 지켜 진다해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ned****), “이제부터라도 억울하게 범죄피해를 당한 분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피해 회복을 위한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가해자들은 형을 살고 나오면 600억을 들여 만든 법무보호복지공단에서 별의별 도움을 다준다. 그러면 왜 피해자들은 어떡하라고. 그들은 사각지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는 조속히 국무총리실 산하에 범죄피해자를 위한 기구를 만들어 좀 더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펴길 바란다”(spj****), “읽는데 눈물이 자꾸 났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실종, 납치, 살인 등 모든 범죄가 이 땅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ami****)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