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부터 시행된 ‘도로명 주소’로 국민들은 물론 집배원들마저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우정사업본부가 집배원 등을 대상으로 언론 등에 문제점을 언급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불만을 토로한 일부 집배원들은 업무라인이 바뀌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새 주소가 본격 시행된 지난달 초 ‘도로명주소 시행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대응방안 통보’라는 제목의 공문을 전국 3600여개 지역우체국과 우편취급소에 하달했다.

A4용지 5장 분량의 이 공문에는 ‘집배원들의 도로명주소 숙지도 평가 결과 2011년에는 75%였으나 현재는 95%로 높아졌다’, ‘새 주소 사용으로 배송이 지연되는 등 혼란은 없다’, ‘도로명 주소와 관련해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가 우려되니 현장에서 혼란을 부추기는 말을 삼가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침을 받은 일부 지역우체국은 집배원들에게 “새 주소의 문제점을 언론 등에 발설할 경우 공무원법에 따라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집배원들의 입단속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은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한 거래가 있을 경우에만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 ⓒ SBS

특히 우정본부는 설을 앞두고 언론과 접촉한 집배원을 색출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한 언론이 우정사업본부를 통해 안양우체국의 당일 배송물량 통계를 요청하자 본부는 취재에 응한 집배원을 색출하라고 지시했고, 안양우체국은 150여명의 집배원을 대상으로 확인에 나섰다.

당시 취재에 응했던 한 집배원은 “새 주소 시행 이후 근무현장에서는 배송이 늦는다는 민원에 시달리는데 우체국에서는 근무환경 개선도 하지 않고 입조심하라고 강요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정본부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집배원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20년 경력의 한 집배원은 “새 주소 시행 후 근무시간이 배 이상 늘었다”며 “본부는 공문을 통해 충분히 교육했다고 하는데 책자가 한 권 발행된 것 외에는 교육은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집배원은 “최근 군포와 인천 등 일부 지역에서는 집배원 일부가 새 주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가 업무라인이 변경되기도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집배원들에게 오랜 기간 익숙한 배송 지역을 바꾸는 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집배원들은 혼란을 줄이기 위해 새 주소가 정착할 때까지 옛 주소와 병행할 수 있도록 자동전산출력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옛 주소에 익숙한 집배원들은 택배나 우편물 분류작업에서부터 배송과정까지 새 주소를 옛 주소로 재검색하느라 업무시간과 강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 집배원들의 이 같은 목소리에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시스템 개선 문제에 대해서는 목적지 순서를 부여하는 집배순로구분기에 이런 기능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또한 우정 본부는 ‘언론대응 공문’에 관해서도 “일부 지역우체국에서 다소 과하게 해석한 측면이 있다”며 “도로명주소 숙지도 평가결과를 토대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침이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네티즌들은 우정사업본부의 지침이 알려지자 “잘못된 점을 수정하기보단 우리가 한일이니 다 옳아 그러니까 힘없는 너희는 그냥 따르기만 해 이런 식인가?”(sky****), “정책을 제대로 해둬야지 이렇게 이상하게 만들어 놓고 불만을 억누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안을 내놓아야 한다”(기러****), “일제 때 만들어진 거라 바꾸려고 한건 이해가 가는데, 시행을 해보니 문제점이 많거나 불편하다고 국민들 원성이 높으면 원래대로 그냥 사용하는 게 옳지 않나요. 동 이름에 그 지역의 역사도 깃들어 있는 이름도 많은데 사라지는 것도 안타깝고...”(어느****), “우정사업본부가 꽤 독재적이네. 언론 대응 말라고? 이게 대체 어느 시대 얘기야?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언론과 말도 못하게 하고 살아? 조직을 저렇게 비민주적으로 운영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ody****)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