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제 꾀에 발목 잡힌 형국”
2011년 6월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의안 직권상정을 천재지변과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상태 또는 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하고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회법 일부 개정안(국회선진화법)에 합의한다.
새누리당이 19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이유
쟁점 법안의 경우 국회 재적의원 3/5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통과가 가능해 180석 이상 확보하지 못한다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라도 자체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렵게 만드는 법안이었다.
이런데도 새누리당은 19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울 정도로 국회선진화법에 적극적 이었다. 박근혜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하고 예상되는 18대 총선 참패를 모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던 상황에서 국회선진화법을 공약으로 채택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19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민주당 등 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게 당연지사로 여겨지던 상황이었다.
소수당 전락 예상하고 내놓은 고육지책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도 국회선진화법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 동기는 순수하지 못했다. 소수당으로 전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고안해 낸 일종의 '생존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야당이 과반을 넘는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야당이 다수당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과반 의석으로는 쟁점 법안이 통과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게 새누리당의 노림수였다.
의장석 점거 등 물리력을 동원한 몸싸움과 날치기를 예방하기 위한 취지라고 포장했지만 이면에는 정치적 꼼수가 숨어 있었다는 얘기다. 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거라는 예상을 전제로 하고 어떻게 야당의 발목을 잡을까 고심하다가 내놓은 게 바로 국회선진화법이다.
본색 드러내는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의 예상과 달랐다. 야당이 아니라 자신들이 다수당이 된 것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법. 다급해서 꺼내들었지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보니 국회선진화법은 눈엣가시였을 게다.
드디어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야당의 반대로 법률안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도 국회선진화법 예외 규정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선진화법이 국회를 정지시키는 데 악용되고 있다”며 “막무가내식 야당이 있는 우리나라에 맞지 않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또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위헌심판과 헌법소원을 제기해 법 자체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주호영 새누리당 국회법개정 TF팀장은 “다수결 원리가 작동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준비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제 국회선진화법은 눈엣가시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법안에 대해 민주당이 반대 당론을 확정한 것을 언급하면서 “이 정부가 박근혜정부인지 민주당 정부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며 야당을 비난했다.
소수당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 국회선진화법을 만들더니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되자 자신들이 만든 법이 거추장스럽다며 벗어 던지겠단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겠다는 얘기다.
야당과는 제대로 소통 한번 해보지 않고 국회선진화법이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며 사형선고를 내리겠다는 새누리당의 배후에는 청와대가 있다.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처결하고 싶은 박 대통령으로서는 국회선진화법이 크게 못마땅할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지난 19대 총선 직전 국회선진화법 통과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박 대통령이다. 그래놓고도 여당에게 국회선진화법 무력화를 주문한다는 건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 무력화를 공언하면서 “국회에서 부끄러운 폭력사태를 없애보자는 결단과 충정으로 만든 선진화법을 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두르고 있다”며 야당 탓으로 돌렸다. 정치판에서는 거짓말과 사술도 일종의 전략으로 통한다.
새누리당이 제 꾀에 발목 잡힌 형국이다. 19대 총선에서 자신들이 승리할 거라고 내다봤다면 국회선진화법을 절대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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