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도 겪지 않았는데 
나는 실향민이다.
이농현상도 없이 뿌리 뽑힌 채 도시를 떠도는 
실향민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따라지다.  

할아버지는 피란을 나왔고 
아버지는 무작정 상경했고 
나는 내 돈 주고 빌린 집에서 내쫓겼다. 
세계 10위 부자 나라에서 
나는 세금 내는 난민이다.  

밥 먹을 곳을 빼앗겼다. 
잘 곳을 잃었다. 
돌아가 쉴 곳이 사라졌다. 

이 세상에서 한국에만 있는 전세라서 
저승 가서도 정말 설명하기 어렵다는데 
오천년 동안 유구하게 납세, 혈세를 받아먹었건만
국가의 귀는 저승보다 어둡구나. 

차라리 지옥고마저 천국이던 날이 있었다니. 
이제 어느 구석에 일그러진 깡통 같은 
이 내 하루를 눕히나. 

십년 치 월급 차곡차곡 쏟아넣은 방을 강탈 당하고도 
하소연할 길 없는 이 밤 
길은 고단하고
어디로도 돌아갈 고향은 없어라. 
 
나도 세금 내는 
난민이다. 
지옥고보다 못한 전세 난민이다. 
바람벽에 이마를 기댄 채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

▲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등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20일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울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