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를 펼쳐 짧은 글자를 노자 삼아 써 보내네
글끝에 점을 찍지 않아도 명이 황천에 닿았으니
산 자에게 건네는 인사가 아니라네
초를 밝히고 향을 피워서 삼가고 삼가도 
일곱 글자를 피할 수 없어 
謹祈故人之冥福근기고인지명복
겨우 쓰고 나니 북망산이 서늘히 가까워 
창을 열고 종이 한 장을 태워서 떠나보내노라니
그대가 두고 간 붓 한 자루를 하늘로 던지네
저승길 나그네가 어찌 오늘 손을 쓸 수 있겠는가 
한 자루는 푸른 벼루 같은 시아바다에 담가둘 터이니 
혹시 거기 가서도 갈비뼈 밑에서 묵향 밀려나오거든 끄집어내 휘갈기소 
세상 쪼개는 도끼 같은 생각 
갈밭 달리는 바람 같은 글씨 
시대의 어둠을 먹으로 찍어 쓰자던 옛 맹세도 두고 가소 
남은 몫 따위는 없나니 
꽃 피는 윤이월에 남녘으로 창을 열고 별 몇 점 헤아리건대
취한 그대와 헤어지던 작년 재작년 사월 오늘 새벽이라네

서해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