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여럿이었다.  
김씨로는 김삼수三洙였고, 또 김형신亨信이었다. 박씨로 박철희喆熙였다. 한자를 한 글자 바꿔 써서 다시금 박철희哲熙였다. 홍씨로는 홍일헌이었다. 원래 성씨 권씨로는 이름이 넷이었다. 권일이었고, 권부덕이었고, 권형신이었다. 무엇보다 권오설이었다. 

이름이 여럿인 사람의 운명을 아는가. 
이름을 바꿔 써야 하는 이의 노선을 되새겨보았는가.  
그가 이름을 여럿 쓰는 동안 안동 가일마을 권씨 집안은 멸문을 당했다. 

권오운이 죽었다. 곧 권오상이 죽었다. 권오헌이 죽었다. 권오기가 죽었다. 또 권오직이 죽었다. 권오설은 그 중 하나였다. ‘오’ 자 돌림들은 다 죽었다. 
이름 비슷한 사람도 죽었다. 
성씨 비슷한 사람도 죽었다. 
몰래 헤아려봐서 열둘, 열셋, 새로 열넷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름이 많은 사람이라서 정작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훈장 집안 아들이었다. 소작인이었다. 교육자였다. 농민운동가였다. 노동운동가였다. 사회주의 활동가였다.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였다. 항일투사였다. 6.10만세투쟁 펄럭이는 첫 깃발이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었다. 서른셋이었다. 

78년 만에 무덤 안에 햇빛이 들어갔다. 
유령처럼 떠돌던 소문대로 철제관이었다. 녹슨 함석관이 핏빛이었다. 저승에 가서야 겨우 울었구나. 
권오서얼. 

88년 만에 처음 내놓고 제사를 지냈다. 
일제와 싸우고, 또 싸웠어도 자랑이지 못했다. 
옥에서 죽었어도 억울하다 말하지 못했다. 
살았을 때는 살아서 말하지 못했고, 죽어서는 죽어서 말하지 못했다. 
살아서는 살아 있어서 울지 못했고, 죽어서는 죽었다고 울지 못했다. 
독립운동 훈장을 받고도 이름 석 자 입초시에 올리기 어려웠다. 

이름이 여럿이라서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여럿이어도 이름 부를 수 없었다. 
이름이 여럿이라도 운명은 단심으로 한 길이었다. 
스스로 지은 호처럼 막난莫難으로 헤쳐가는 새 길이었다. 

▲ 서해성 작가

이름이 여럿이라서 부르지 못한 이름 석 자를 부른다. 
권오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