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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의 사람] 뵤뵤김성동金聖東 선생 가시는 길에
서해성 작가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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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9.26  16:27:02
수정 2022.09.26  16: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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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만다라>로 유명한 김성동 작가가 25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5. <이미지 출처=연합뉴스TV 보도영상 캡처>

마른 몸에 가는 다리를 꼬아 얹고 길게 담배를 태우면서 주억주억 시대와 사람을 늦도록 말삼곤 했다. 천 개의 죽음을, 천 개의 망각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흐트러진 제 머리칼 틈새와 제 겨드랑이, 제 손가락 사이 구석구석에 살게 하던 그였다. 묵은 창호지 같은 표정으로 멀리 보면서 옛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눈물 한 방울 맑게 떨구던 숨 깊은 사람이었다. 그에게 바스락거리는 옛 이야기는 가다보면 다 아버지 이야기였다. 

애비 없는 사람, 애비가 총 맞아 죽은 글쟁이. 속세는 원래부터 버거웠고 심심 절간마저 마뜩찮더니 끝내 어긋났다. 바둑을 두다가 삼베 바지에 물방귀 새듯 잠시 방을 나가면 한 주일서껀 달포서껀 되어서 돌아왔다. 한낱 서투른 역마살이 아니라 바둑 상대가 꼼수와 함께 뿜어내던 상스러운 기운이 사라진 뒤라야 그 자리에 비로소 거처할 수 있었다. 시장화된 일상을 그는 낯선 나그네로 일생 내내 가까스로 버텨냈다. 하물며 사람이 움직이면 차례로 칸칸이 불이 들어오는 층계등조차 간사스러워서 못 견뎌하던 그였다. 

번잡스러운 세상, 왜말 양말 틈바구니에서 조선말 백성말 민중말을 수비하고자 정녕 모국어의 탐침봉이자 나침반을 자임하였다. 말은 그에게 피였고 어머니였고 대지였다. 잃어버린 아비를 찾듯 그는 말의 뿌리를 탐색하였고 다시 말의 씨앗을 심고자 했다. 그에게는 말이 조국이었다. 말이 겨레붙이였다. 말이 곧 사람의 관상이고 무리의 표정이었다. 말이 국토였다. 

모국어가 바이 없이 스러져가듯 까닭없이 이 땅에서 죽어가야 했던 이들을 섬기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분단이 야기한 거대한 망각의 허방을 거의 혼자서 바삐 채워나갔다. 국가는 청상과부로 생을 살아내야 했던 그의 어머니와 그를 연좌시켰지만 그는 망각에 자신을 기꺼이 연좌시킨 채 잃어버린 아비들 이름을 되찾아주고자 했다. 열 걸음을 함께 걸어가면 열한 명의 비감어린 이름들을 토해냈다. 쑥부쟁이 자줏빛이 얼마나 서러운지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듣는 이는 이내 알 수 있었다. 

말과 사람이 그의 생애에 그득했다. 그를 만나 겨레붙이 말들은 더러 나무에 올라 새싹이 되고 쟁기 끝에 가 붙어 봄날 대지를 뒤엎었다. 잊힌 사람들은 그의 붓끝에서 60년, 70년 만에 세상에 겨우 얼굴을 내밀었다. 남도, 북도 부러 잊은 사람들을 그는 낡은 책자와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내 넓은 광장으로 나오게 했다. 

그 사람 심중은 도무지 깊어서 한 삼백년 묵은 조선이 깃들어 있는가 하면 늘 현재로 치열했다. 산중에 살아도 그는 거울처럼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현실을 바꾸고자 한 생 뼈를 깎아내 붓대롱으로 삼았다. 그는 끓는 순혈의 모국어로 살고자 했다. 순혈의 인간상들을 망각 속에서 찾아내고 그 또한 그렇게 먼지 날리는 길을 까마득히 걷다가 떠났다. 

적어도 삼팔 이남에서 우리말들은 이제 닥종이 같은 그의 손길을 떠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이름 없이 사라진 숱한 넋들을 누가 글줄로 새기고 울어주나. 언제 지었을지 모를 조선 흙집에 등잔불 같은 먼 눈빛 김성동金聖東. 이 가을밤, 무엇이 저 등잔불을 가리는가. 어떤 바람이 등잔불 위를 고요히 휘감고 도는가. 뵤뵤. 

*’뵤뵤’를 처음 일깨워준 건 소진이 떠나던 하오였다. 김성동 선배에게 배운 말로 그를 보낸다. 배운 말이라서 더 아프다.

서해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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