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가짜뉴스 피해를 막을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차례 토론회를 개최하고 시민사회와 언론단체의 의견을 고루 수렴해 반영했습니다. 여야 합의에 따라 8인 협의체를 구성하고, 11차례나 합의 과정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국민의힘의 반대로 마지막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오늘(27일)까지 합의하기로 한 처리시한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어제(29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원내대변인이 내놓은 <더불어민주당은 언론개혁의 과업을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란 서면브리핑의 서두다. 이날 여야 합의 불발로 이른바 ‘가짜뉴스피해구제법’ 처리가 연내로 미뤄진 것에 대해 신 대변인은 “법안 통과를 기다리셨던 많은 분들께 송구한 마음입니다”라며 사과한 것이다. 해당 법안을 발의했던 같은 당 김승원 의원도 30일 페이스북글을 통해 ‘사죄’에 나서기도 했다.  

▲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관련 회동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가짜뉴스 피해구제법 또 미루어졌습니다. 국힘당 의원들의 방해에 새벽 4시까지 입이 헐도록 애썼던 시간들. 모든 분들께 사죄드립니다. 어떤 수모를 겪더라도 끝까지 완수하고, 그때까지는 세비를 어려운 국민께 반납하고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이와 관련, 여야는 이날 원내대표 합의를 통해 올해 연말까지 활동하는 언론미디어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특위 구성을 확정했다. 신 대변인은 “여야 동수, 18명으로 구성될 특위에서는 ‘가짜뉴스피해구제법’ 뿐만 아니라 유튜버 등 1인 미디어의 가짜뉴스 규제를 위한 ‘정보통신망법’, 언론사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공영방송을 국민께 돌려드리기 위한 ‘방송법’, 포털 뉴스 서비스의 공정화를 위한 ‘신문법’ 등 언론미디어 제도 전반에 관한 개선 방안을 논의하게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일견 보수언론 및 언론단체가 집중 비판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더 나아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대한 법률 개정안을 총체적으로 손보는 데 합의한 것으로 비춰질 만하다. 그러나 뒷말이 무성하다. 왜 그럴까. 

‘이낙연 1석’ 모자라 강행 불발? 의심받는 민주당 내 반발 세력의 언론개혁 의지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오늘 오전부터 오후까지 모두 세 차례 만나서 회의를 하면서 이견을 좁히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후에는 여야 원내지도부가 양당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에 다시 만났지만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박병석 국회의장도 여당 단독 처리에는 상당한 부담감이 있다면서 처리에 부정적이었던 걸로 전해집니다.

당초 민주당 지도부는 오늘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처리하겠다라는 의지가 상당히 강했습니다. 그런데 오후 의원총회에서 이 부분을 두고 찬반 의견이 상당히 나뉘었던 걸로 전해지는데요. 대선 정국을 앞두고 현재 대장동 이슈 등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데다가 다음 달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국감을 앞두고 이런 여야 간의 극한 대치가 부담스러운 만큼 단독 처리는 되도록 하지 말자는 의견이 많았던 겁니다.”

29일 MBC <뉴스데스크>의 <여야 ‘미디어특위’ 구성…연말까지 언론중재법 등 논의> 리포트 중 일부다. MBC는 여기에 “또 국제사회와 청와대의 우려 그리고 추가 검토 요구 등도 지도부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걸로 보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국회 내 대치와 청와대의 우려 등 외부 요인 중 어느 쪽이 언론중재법 불발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까. 이날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는 페이스북에 “언론개혁법안 처리를 또 미루는군요”라며 “처리하면 대선에 진다고 하는 의원,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의원이 많답니다. 그런가요? 이게 그럴 일인가요?”라고 반문했다. 

민주당 내 반대 의견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날 가짜뉴스 피해구제법 처리에 앞장섰던 한 민주당 의원도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 특위를 “면피용”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특정 계파 의원들이 ‘강행 처리 후 대선 패배’를 이유로 당 지도부 및 찬성 의원을 강력하게 압박, 결국 강행 처리가 무산됐다는 설명이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를 지낸 서울대 우희종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이런 후일담을 털어놨다. 그는 “도둑과의 타협이나 논의는 스스로도 도둑임을 말하는 것일 뿐”이라며 민주당 내 반개혁 세력을 질타하고 있었다. 

“내년? 결국 언론개혁 하지 않는 것으로 간다. 선거 표를 의식해 미루자는 잔머리파가 더 우세했다는 것이겠다. 힘들더라도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정치하기보다는 표 계산 수준의 정치다. 지난 총선 당시 사회개혁 취지로 모인 ‘더불어시민당’이 언론개혁을 강조하자 민주당은 선거에 영향 주니 끝나고 하자는 요청을 해 왔다. 

선거 경험 없는 입장에서 일견 맞는 말같아 수용. 근데 총선 후 초대형 여당이 된 후에도 협치, 사면 등 맹한 소리나 하더니 언론 개혁은 무슨…! 결국 이 모양이다. 정치공학 수준에서 어찌 삶과 역사를 위한 개혁이 가능하랴. 검찰 개혁 앞장서 사력을 다한 조국과 추미애를 그저 남 보듯 한 모습이더라니.”

▲ 박병석(가운데) 국회의장과 윤호중(왼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9일 국회 의장실에서 국회의장 주재 언론중재법 관련 회동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이미 한 달 전 예고됐던 불발탄?  

일각에선 여당의 강행 처리에 필요한 의석 수 179석 중 1석이 모자랐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최근 이낙연 전 대표의 의원직 사퇴가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송영길 대표가 강행 처리를 밀어붙인다고 해도 현재 민주당의 의석수로는 통과가 어려웠을 것이란 해석이었다. 

애초 민주당 지도부가 지난달 8인 협의체 구성을 허용했을 당시 법안 처리는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국민의힘이 반대 뜻을 굽힐 가능성이 전무했다. 주류 언론 및 언론 단체의 반대 목소리 역시 거세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민주당이 협치를 근거로 한 달 전 강행 처리에 나선 것 자체가 패착일 수 있었다. 

반면 정의당처럼 이참에 독소 조항 등을 제거하고 실효성 있는 법안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그럴 의지가 있느냐다. 

“언론중재법 처리가 무산됐습니다. 모양은 12월 말로 처리 시한이 연기된 것으로 하고 있지만, 그간 국회의 관행과 행태로 본다면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여당이 언론과 야당의 협박에 굴복한 것입니다.”

30일 추미애 전 법무부장과 역시 “비록 9월 처리가 무산됐어도 당이 밝힌 12월 말까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처리되고, 민주당이 다시 민주당다움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라며 이런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 또한 국민의힘의 반대를 뚫고 김승원 의원이 제안한 일명 ‘미디어바우처’ 법을 포함해 포털규제법 등 민감한 언론미디어 현안들을 개혁의 방향으로 이끌어낼 실천력을 담보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연 우희종 교수의 우려가 괜한 것이었을까. 민주당은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언론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뜻을 이행해 낼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자.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