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4년 KBS <심야토론>에 출연한 당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노회찬은 정치사에 회자되는 ‘삼겹살 불판론’을 들고 나왔다. 그해 17대 총선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정치인 노회찬’이 대중들에게 제대로 각인되던 순간이었다. 

이후로 노회찬은 지난 2018년 7월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까지 투표 한 번 해 본 국민이라면, 유권자라면 진보정당 이름은 몰라도 노회찬의 얼굴과 목소리는 친숙하게 느끼는 ‘진보 정치인’의 대명사로 인식됐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난 7월 23일 3주기를 맞은 고 노회찬 의원을 기리는 첫 번째 다큐멘터리 <노회찬 6411>이 오는 10월 14일 개봉을 앞두고 28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언론에 미리 공개됐다. 명필름과 노회찬재단 및 시네마6411이 공동제작하고 전주국제영화제가 ‘전주시네마프로젝트 2021’로 선정, 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던 <노회찬 6411>. 

‘시커메진 한국 정치의 판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 서민의 언어로 그들의 속을 시원하게 대변했던 사람, 함께 비를 맞으며 약자와 공감하고자 했던 사람,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길 희망했던 사람, 누구나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수 있는 사회를 꿈꿨던 사람’으로 노회찬을 기억하는 이들이 만든 다큐 속 ‘인간 노회찬’과 ‘정치인 노회찬’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사진제공=명필름>

명필름과 <노무현입니다> 제작사, 노회찬재단이 뭉친 ‘노회찬 다큐’ 

“명필름이 40편 넘게 영화를 제작했는데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번에 처음 제작했다. 노회찬 의원이 노동운동가이자 진보정치인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에 대해 민감한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 얘기를 한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 시민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노회찬 의원의 죽음이 못내 아쉬워서 다큐를 만들고 싶었고, 3주기에 맞춰서 올해 만드느라 힘들게 달려왔다.”(이은 명필름 대표)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을 필두로 한국영화사의 획을 긋는 작품들을 제작해 온 명필름이 처음으로 선택한 다큐멘터리. <노회찬 6411>이 영화계에서 지닌 특별한 이력 중 하나다. 그 만큼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의외로 명필름이 노회찬재단에 다큐 제작을 먼저 의뢰했다고 밝힌 노회찬재단 조돈문 이사장은 이날 상영이 끝나고 진행된 무대인사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제작을) 흔쾌하게 수용했다”며 “노회찬을 그리워하는 많은 마음들을 남겨두고 갔고, 많은 분들이 노회찬을 그리워하고 있고 그 마음을 저희가 알기에 (다큐 제작을) 수락했다”며 제작의 배경을 설명했다. 잠시 울먹이기도 했던 조 이사장이 전한 첫 번째 ‘노회찬 다큐’의 의의는 이랬다.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보니 자주 듣는 질문이 지금 노회찬이 여기 있다면 뭐라고 할까, 지금 노회찬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제안을 제시할까, 뭘 하자고 할까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 질문에 제가 대답할 위치도 아니고 제가 어찌 다 알겠는가. 그래서 노회찬의 삶을 조명해 보자. 

노회찬의 그리워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만족스럽지 않고 뭔가 답답해서 일거다. 그 그리움은 답답함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회찬을 생각하면, 노회찬의 통쾌한 촌철살인의 언어는 정서적으로 많이 도움이 되고, 영화에서 봤듯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평생에 걸친 한결같은 일관된 진정성은 노회찬의 삶을 잘 이해하게 한다. 근데 그걸 넘어서 뭔가 더 기대하는 게 있는 것 같다.”

▲ 명필름 이은 대표(왼쪽부터), 민환기 감독, 노회찬재단 조돈문 이사장, 시네마6411 최낙용 대표가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노회찬6411' 언론시사회 무대인사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명필름>

<노회찬 6411>은 정공법의 영화다. 과거 노동자 동료들에게 노동운동에 투신한 ‘노동자 노회찬’이 지녔던 노동자 계급으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것을 시작으로 정치인 노회찬의 첫 발걸음부터 끝까지를 우직하게 조명한다. 

그 안에 학생시절부터 지녔던 남다른 이상과 기개, 국민만, 서민만 바라보고 갔던 특별한 진보정치인으로서의 면모, 평생의 동지이자 동반자였던 아내에게도 다 못한 인간적 고민 등이 다채롭게 담겼다. 그렇게 정치인 노회찬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담담하게 되짚는 <노회찬 6411>은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 진보정당사와 겹칠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진보정치의 희망이 담겼던 민주노동당의 흥망성쇠를 주요하게 조명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 진보정당사의 중심인물이던 노회찬이 남긴 족적들, 예컨대 삼성 X파일 사건이나 6411번 버스 연설이 기본적으로 조명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조 이사장은 그렇게 다큐가 담아낸 그 역사에서 희망을 봐달라고 주문하고 있었다.  

“그게 미래에 대한 비전, 전망까지도 노회찬에게서 찾았던 거 같다. 노회찬재단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면 노회찬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게 2가지였다. 삼성 X파일 사건과 6411번 버스 연설이었다. 거기엔 세대차이가 있었다. 40대 50대는 X파일을 많이 기억하고, 20대, 30대는 6411버스 연설이었다. 

삼성 X파일은 노회찬의 삶,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했던 한결같은 진정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6411 버스에 의미 부여를 하는 거고, 그래서 젊은 분들도 많이 기억하는 것 같다. 다큐 제작할 때 감독에게 부탁했던 것 딱 한 가지다. 눈물 쥐어짜기 식의 신파조로 만들지 말자. 긍정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무현이 남긴 그 찬란했던 유산들 

<노무현입니다>를 제작했고 <노회찬6411>을 공동제작한 최낙용 대표는 이날 “여러 분들의 참여와 도움으로 제작했다”며 “1만2천 여명의 개인과 단체가 후원해 줬고 정말 많은 지원을 해줘서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인사를 전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영화인들은 물론 노회찬을 진심으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많은 이들이 뜻을 모아 다큐를 제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 <노회찬 6411>은 애초  ‘6411 서포터즈’ 목표인원이던 6,411명을 훌쩍 뛰어넘어 1만 2천 여명이 후원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 민환기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노회찬6411' 언론시사회 무대인사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명필름>

또 <노회찬 6411>은 어릴 적 친구들은 물론 노회찬을 기억하는 많은 노동운동가, 진보정당 정치인 및 활동가들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앞서 녹색당 고은영 제주도지사 후보의 정치 활동기를 그린 다큐 <청춘 선거>를 연출했던 <노회찬 6411>의 민환기 감독도 “제가 하고 싶은 얘기에 전혀 두려움 없이 만들 수 있었던 것 같고 접근이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웠다”면서도 “진보정당 운동하는 분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 영화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대로, <노회찬 6411>은 마치 ‘노회찬 평전’을 읽는 느낌 그대로 ‘인간 노회찬’과 ‘정치인 노회찬’의 삶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의미 있는 기록이다. 그가 왜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까지 과정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워낼 수 없는 노회찬의 유산과 역사들이 훨씬 찬란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노회찬의 역사를 오는 10월 극장에서 꼭 만나 보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눈물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노회찬의 언어를 들으면 즐겁고 웃고, 또 노회찬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그렇다. 그 과정에서 그리움도 달랠 수 있고, 그러나 영화관을 떠날 때는 가슴 속에 다들 긍정적인 메시지(를 가질 것이다). 다큐 영화의 제목인 6411 버스가 상징하는 투명인간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위한 실천. 그 긍정적인 메시지를 가슴에 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제작했다.”(조돈문 이사장)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