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격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막말을 했습니다. 정중히 사과를 드립니다. 그럼에도 이해찬 전 대표가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치적 의견이 달라도 상대의 인격과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됩니다. 한국 정치판은 네거티브라는 정치적 야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국민이 주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게 대권 주자 여러분은 정책 토론에 집중하길 바랍니다.” (20일 황교익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자)

20일 오전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논란의 종지부를 찍으며 게시한 페이스북글 중 일부다. 며칠 사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판을 뒤흔든 자신의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과 관련 이낙연 캠프와 설전을 벌였던 황씨는 “이미 경기관광공사 직원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듯합니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경기관광공사 사장 후보자 자리를 내놓겠습니다”라고 밝혔다.  

▲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이재명, 이낙연 후보가 12일 경기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정책 라이브 커머스 '더 민: 정책마켓'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렇게 18일 최초 보도 이후 설전이 오가고 19일 오후 공식 사과를 거쳐 이틀 만에 사퇴 의사를 밝힌 황씨. 그는 “중앙의 정치인들이 만든 소란 때문”이라면 논란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했다. 또 위와 같이 우회적으로 이낙연 캠프가 자신에게 씌운 ‘친일 프레임’에 대해 “네거티브라는 정치적 야만”이라 규정하기도 했다. 

헌데 어쩌나. “정책 토론에 집중하길 바란다”는 황씨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하락 중인 이낙연 캠프는 검증이 아닌 네거티브 공세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을. 19일 밤 이낙연 ‘필연 캠프’는 배재정 캠프 대변인 명의의 <이재명 지사, 이천 쿠팡 화재 당일 행보에 대해 성실하게 소명하시라> 논평에서 이런 주장을 이어나갔다. 

“경기도 재난재해 총책임자인 이재명 후보가 경기도 이천시 쿠팡 물류센터 화재사건 당일, 최근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으로 논란이 된 황교익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황교익TV’ 촬영을 강행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국민들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

황교익의 충고에도 아랑곳없이  

19일 기호일보의 <이재명 경기지사, 이천 쿠팡화재 당일 ‘황교익 TV’ 녹화> 보도를 인용한 배 대변인 주장을 요약하면,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사건 당일인 지난 6월 17일 이 지사가 유튜브 채널 <황교익TV>를 찍느라 화재 현장에 뒤늦게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배 대변인은 (이 지사가)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상생협약 등을 위해 경남 창원을 방문했으며 이날 오후부터 저녁까지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일대 거리와 음식점 등에서 황교익 내정자와 유튜브 채널용 방송 녹화를 진행했다“며 이런 주장을 이어갔다. 

“기사에 따르면 이 지사는 화재 당일 창원 일정을 강행했으며 다음날인 18일 오전 1시 32분에야 화재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는 화재 발생으로 인해 처음 경보기가 울린 17일 오전 5시 27분 이후 약 20시간 만이자 김(동식) 구조대장의 현장 고립 사실이 알려진 지 13시간이 지난 시점이라는 게 기사의 설명이다.

이 기사가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이는 경기도 재난재해 총책임자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보이다. 이재명 후보는 기호일보의 보도에 대해 성실하게 국민들께 소명하실 것을 요청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로서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이 “더욱이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화재진압 중이던 김동식 소방구조대장이 고립됐고 결국 이틀 후 화재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사실이었다. 헌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실 관계를 끼어 맞춘 과장된 주장인 건 아닌지, 이를 네거티브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 이낙연 지사에 어떤 도움이 될 지도 의문이다.

배 대변인이 밝힌 대로 화재 당일 이 지사는 예정된 출장을 소화 중이었다. 당시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17일 오전 5시 40분경 시작된 화재는 발생 2시간 30분여 경 만에 잡히는 듯 했으나 그로부터 3시간 만인 오전 11시가 넘어 재점화 됐다. 그로 인해 소방당국의 대응단계 역시 시시각각 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경기도는 이 지사가 출장 중임을 감안, 이용철 경기도 행정1부지사가 화재 현장을 방문해 화재 진압 상황을 살펴봤다. 

배 대변인의 논평 이후,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이재명 황교익 TV 먹방’ 등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19일 조선일보는 <이천 쿠팡 화재 때.. 이재명, 황교익과 ‘떡볶이 먹방’>이란 제목을 뽑았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해당 기사에서 이 지사 측 김남준 대변인은 “당일 오전엔 초기 진압이 어느 정도 완료된 것으로 보고받아서 오후 황씨와의 예정된 녹화 일정을 진행한 것”이라며 “이후 이 지사가 직접 현장에서 화재 진압 지휘를 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해 다음 날 일정을 취소하고 바로 현장으로 이동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조선일보는 “화재 상황도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며 관련 지시를 했다는 것이 이 지사 측 설명”이라고 덧붙였다.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이낙연 캠프의 무분별한 네거티브  

이낙연 캠프의 주장은 ‘이 지사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17일 오전부터 화재 진압을 진두지휘했어야 옳다’에 가까워 보인다. 한데 의아하다. 시시각각 변했던 당시 화재 상황을 출장 중이던 도지사가 정확히 예측, 출장을 취소하고 현장에 달려가는 것만이 최상의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안타까운 소방구조대장의 죽음을 앞세워 책임론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아닌가.  

이낙연 캠프는 당시 화재 현장 상황을 감안, 행정부지사가 현장을 살펴보고 실시간 보고를 거쳐 출장 일정을 취소한 이 지사의 행보 자체를 “무책임과 무모한 행보”라 몰아가는 중이다. 일부 언론도 ‘떡볶이 먹방’을 앞세워 이 지사를 향한 윤리적 책임에 포커싱을 맞추는 중이다. 

당시 쿠팡 물류센터 화재에 대한 경기도의 늑장 대응이나 지각 대응에 대한 지적은 찾기 힘들었다. 결국 황교익씨 ‘보은 인사’로부터 파생된 또 다른 네거티브가 아닐 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지난해 논란이 됐던 이 후보의 ‘조문 논란’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제가 지금 현직에 있지 않다. 책임 있는 말을 할 위치는 아니다. 여러분 말을 잘 전달하고 빠른 시일 안에 협의가 마무리되도록 돕겠다.” 

지난해 5월 5일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이던 이낙연 후보가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과 나눈 대화 중 일부다. 

당시 이 후보는 화재 책임을 묻고 슬픔을 토로하는 유가족을 향해 “제가 정부에 있는 사람인가. (현직) 국회의원도 아니다. 조문객으로 왔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냈고, 급기야 “그럼 가시라”던 유가족을 향해 “(그럼) 가겠습니다”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언론과 보수야당의 공세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시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글을 통해 이 후보를 향해 이런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 <이미지 출처=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화면 캡처>

“이낙연 전 총리는 너무너무 맞는 말을 너무너무 논리적으로 틀린 말 하나 없이 하셨네요(...). 이것이 문재인 정권의 직전 총리이자, 4선 국회의원, 전직 전남도지사,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차기대통령 선호도 1위이신 분이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유가족과 나눈 대화라니 등골이 오싹하다(...). 머리만 있고 가슴은 없는 정치의 전형을 봅니다. 이성만 있고 눈물은 없는 정치의 진수를 봅니다.”

네거티브를 이어간 끝에 결국 고 김동식 구조대장의 안타까운 희생까지 앞세우고 있는 이낙연 캠프. ‘황교익 논란’과 마찬가지로 보수언론을 등에 업고 ‘이재명 네거티브’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 캠프는 그러면 그럴수록 민주당 경선 전체에 타격을 주는 행위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걸까. 경기관광공사 사장직에서 자진 사퇴한 황교익씨의 충고에도 말이다. 이미 1년도 넘게 지난 ‘조문 논란’이 재조명되는 것도 같은 이치 아닐까. 

아래는 지난해 5월 6일 중앙일보가 <이낙연 이천 조문 발언 논란…“대정부질의 하나” “등골 오싹”> 기사에서 정리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사고 유가족과 이낙연 후보가 나눴던 대화다. 왜 논란이 됐었는지, 이 후보가 조문 다음날(5월 6일)왜 즉각 사과하고 유감을 표명했었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길.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