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체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퇴임하고 나서 다 잊어버렸습니다. 진술이 어떻게 됐는지 알지도 못하고….”

지난 28일 부산을 방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딸 조민씨의 고교동창 장모씨가 법정 진술을 일부 번복한 것에 대한 질문에 위와 같이 답했다. 풀이하자면, ‘대선 출마하느라 바빠 다 잊었다’는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었다. 아울러 과거 ‘조국 일가족 수사’와 같은 주요 사건은 본인이 직접 진두지휘한다던 국정감사에서의 발언과도 배치되는 답변이었다. 

▲ <이미지 출처=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이에 대해 ‘조국 백서’ 집필에 참여한 김민웅 경희대 교수는 30일 페이스북글에서 “사람이 아니지요. 자신이 저지른 수사범죄와 인권유린을 국가전체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며 모르쇠로 나오고 있습니다”라며 이렇게 꼬집었다. 

“퇴임한 지 얼마 되었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고 거짓말이 쉽게 나오며 무엇보다도 끔찍하도록 무책임한 자입니다. 전국민을 우롱한 자가 국가전체의 문제를 고민한다면서 대권행보를 하는 것을 더 봐야할까요?”

이와 관련, 지난 28일 정경심 동양대 교수 변호인단은 항소심 재판부에 장씨의 진술 번복이 담긴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글을 통해 “조민씨를 본 것이 맞다”고 밝힌 장씨의 진술이 조민씨가 2009년 5월 서울대 주최 세미나에 참석한 것이 분명하다는 정황을 입증하는 증거란 판단이었을 것이다. 

때린 사람은 잊어도 맞는 사람은 잊지 못하는 법이다. 윤 전 총장이 아무리 “다 잊었다”고 발뺌을 해도 본인이 시작해 나라 전체를 뒤흔든 ‘조국 사태’, 아니 ‘윤석열 항명 사태’를 잊은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번복한 장씨의 진술처럼 진실을 가리키는 증거도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역시나 국민들이 잊지 못할, 윤 전 총장만큼은 꼭 기억해야 할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의 진술도 마찬가지다. 

상반된 참고인들의 일관된 기억, ‘유력 대선주자 조국 막기 위해...’ 

“나는 그때 위기절명이었어 왜 위기절명이었느냐 하면 정경심 교수가 우리 학교에 있는 한 우리 학교는 이상하게 흘러가게 될 거고(...). 또 하나는 조국이 대통령이 되면 법무부 장관 되어 갖고 그 순서대로 밟아서 (대통령이)되면 우리나라 망한다 이 생각을 했는 거야.” (대구 MBC가 지난 27일 보도한 ‘최성해 녹취록’ 중 일부)

지난 4월부터 ‘최성해 녹취록’을 연속보도 중인 대구 MBC에 따르면,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이 최측근 J씨에게 자신이 이른바 ‘조국 사태’에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한 시점은 지난 2020년 12월 하순이었다. 닷새 전인 2020년 12월 23일 정경심 교수 1심 판결이 나온 후였다.

조국 전 장관 딸 조민씨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사건과 관련해 증거 인멸 및 위증 의혹이 제기된 최 전 총장이 1심 판결 직후 일견 홀가분한 심정으로 최측근에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 놓은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해당 녹취록에서 최 전 총장은 또 “우파 좌파보다 지금 현 정권이 너무 잘못하고 있다”거나 “(문재인 정권 정책대로)통일을 하면 틀림없이 북한 쪽에서 원하는 좌파로, 적화통일이 될 것”이란 정치적 견해를 강하게 피력했다. 

사실상 향후 ‘조국 대통령’ 선출을 막기 위해 자신이 나섰고 정 교수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주장을 전개한 셈이다. 그의 뜻(?)대로 조국 전 장관은 처절히 유폐됐다. 그 대신 윤 전 총장이 보수야권 대선후보로 도약했다. 

최 전 총장은 또 측근과의 대화에서 동양대의 부실한 표창장 관리 실태 및 상장대장 소각을 실토한 내용과 함께 자유한국당 최교일 전 의원과의 회동 및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의 통화 등 보수야권과 보수언론과의 유착설, 최 전 총장의 횡령 및 배임 의혹에 대해 봐주기식 수사로 일관한 검찰과 최 전 총장과의 교감설 등을 실토한 바 있다. 

이 모두 증인인 최 전 총장 진술에 대한 신뢰성 및 증언의 신빙성, 정경심 교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이유가 없다는 1심 결과를 뒤집고 2심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줄 만한 정황 증거라 할 수 있다. 정 교수 측은 지난 5일 2심 재판부에 이 녹취록 등을 새로운 증거로 제출한 바 있다. 

기억하라 윤석열, 응답하라 ‘정경심 재판부’  

“정치적인 색채가 뚜렷한 싸움입니다. 민주당의 문재인 대통령을 계승할 제일 적합한 차기 대권인사는 ‘조국 사태’가 터지기 전 민정수석이신 조국 교수님이셨다고 하여도 무방하고, 이는 큰 확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권당에 반대하는 세력은 이 계승이 그대로 일어나게 되는 것을 절대 막아야 했겠죠. 그러니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겠죠.” (25일 장씨 페이스북글 중에서)

▲ <이미지 출처=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장씨가 유추한 사태의 발생 원인은 이랬다. ‘국가를 고민하느라’ 바빠 ‘다 잊었다’는 윤 전 총장과 달리 장씨는 조국 사태 당시의 기억이 또렷한 듯했다. 이처럼 장기간 언론에 침묵 중인 최 전 총장과는 다른 길을 간 장씨의 고백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윤석열 검찰’이 사활을 걸었던 ‘조국 사태’ 당시 검찰 수사 및 관련 1심 결과가 과연 상식적이었는지, 검찰과 언론, 보수야당이 합작해 만든 허상 위에 재판부가 답을 정해 놓았던 것은 아닌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증인) 박씨와 장씨처럼 친구 부모의 수사·재판에서 사실대로 진술하는 게 어떤 이유로든 어려웠다면 그것은 문명사회의 형사절차가 아니다. 동영상이 증거로 남아 있는데 거기에 찍힌 인물이 조씨라는 기초적인 사실을 확인하는 데 결과적으로 2년 가까운 법정 공방이 필요했다는 이 비합리성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조 전 장관의 딸은 지난달 법정 증인으로 나와 ‘재판에 유리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친구들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으로 형사절차가 객관성을 잃어버린다면 전근대적 여론재판과 다를 게 없다.” (지난 29일 한겨레 박용현 논설위원 <‘조국 수사’의 오염된 증거가 말하는 것> 칼럼 중)

그 여론재판을 진두지휘한 것이 바로 윤 전 총장이었다. 그리고 이제 대선후보로 나선 윤 전 총장이 그 여론 앞에 섰다. 2심 재판부가 ‘윤석열 검찰’에 사찰을 당하고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장씨 진술 관련 의견서에, 최성해 녹취록에 담긴 ‘사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