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대표는 국민 여론에선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당원 투표에선 뒤졌다. 이것이 국민의힘 실상이다. 당내에서 이 대표의 쇄신을 언제든 가로막을 수 있다. 이 대표가 이 저항을 넘어서 쇄신에 성공한다면 한국 보수 정치, 나아가 정치 전체가 크게 바뀔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국의 캐머런 총리와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 같은 인물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하지만 이 대표가 좌초하거나 구습과 타협하면 지금의 기대와 희망은 빠른 시간 내에 사라질 것이다.

민주당도 변화의 바람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운동권 586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할 만큼 했고, 혜택 받을 만큼 받았다. 4년 여간 독주, 폭주하면서 온갖 위선과 불공정, 반칙을 저지르고도 반성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념과 특권 의식, 나만 옳다는 독선과 편가르기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내년 대선에서 다시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12일자 <조선일보>의 <‘30대 이준석 대표’ 등 野에 청년 혁명, 낡은 정치 확 바꾸란 국민 명령>란 사설의 결말이다. 온갖 미사여구와 축사를 늘어놓으며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의 당선을 치하하면서도 정부여당 비판을 잊지 않은 <조선일보>는 말 그대로 화끈했다.

이날 주말판에만 <2030, 판을 뒤집다>란 1면 톱기사를 필두로 무려 13개 기사를 이준석 대표 관련 기사로 도배했다. <중앙선데이> 7개, <동아일보> 9개를 압도하는 숫자였다. 물론, 표현 수위도 ‘격렬’했다. <서른여섯 야당 대표, 정치 구도 新-舊 대결로 바꿨다>란 제목의 ‘강천석 칼럼’은 “이준석 대표 세대는 문재인 시대의 희생자다”라며 이렇게 끝을 맺었다.

“‘문재인 보유 국가’라는 시대착오는 산산조각 났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지망생들이 문 대통령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축복을 기다리는 모습도 곧 사라진다. 대통령의 축복은 독(毒) 반(半) 복(福) 반이 됐다. 뭉치면 죽고 헤어져야 희망이 보이는 상황이다. 머지않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몸부림이 시작된다. 민주당의 각자도생은 국민의힘보다 훨씬 과격하고 격렬할 것이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가 아니라 흡사 총선이나 지선, 대선 승리를 방불케 했다. ‘미디어가 사랑한 정치인’이라 불릴 만 했다. 전날(11일) 지상파 3사 및 JTBC 역시 ‘이준석 선출’을 일제히 메인뉴스의 톱뉴스로 전했다. 이 중 눈에 띄는 인터뷰는 특히나 화기애애했던 SBS <8뉴스>와의 인터뷰였다.

▲ <이미지 출처=SBS 방송 영상 캡처>

이준석이 밝힌 뜬금없는 에피소드

“대통령께서 대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여야가 완전히 충돌이 없는 상태로 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국가적인 어떤 위기 상황에서 그런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에서 협조를 구하겠다고 이제 말씀하셔가지고 저도 당연히 뭐 코로나 방역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시급한 국가 사안에 대해서는 야당이 굉장히 협력을 잘하겠다는 취지로 답변을 드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나눈 전화 통화 내용을 묻는 질문에 이 대표는 “대통령께서 우선 지금 G7 방문하시는 일정이 있기 때문에 우선 성공적인 외교를 하실 거를 저는 이제 기원하고요”라고 운을 뗀 뒤 위와 같이 우호적인 대답을 내놨다.

앞서 11일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이 대표가 3~4분 간 나눈 통화 내용을 공개하며 문 대통령이 “아주 큰일을 했다”며 “우리 정치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우리나라가 변화하는 조짐이라고 생각한다”는 축하말을 전했다고 밝혔다.

여기까진 자연스런 수순처럼 보였다. 한데 이 대표는 SBS와의 인터뷰 말미 위와 같은 우호적인 답변 와중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고 보면 되느냐”는 앵커의 짤막한 질문에 “제가 뜬금없는 정보를 하나 공개하자면”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뜬금없던 <文대통령 축하 전화 놓친 이준석 “전화가 많이 와 못 봤다”>(중앙일보), <문대통령 축하 전화 놓친 이준석..“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란 기사의 배경이 바로 이 발언이었다.

“제가 사실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못 보고 지나쳤습니다. 대통령께서 먼저 전화하셨을 때(웃음). 그런데 이제 이철희 정무수석이 워낙 저랑 소통이 잘 되는 사이다 보니까 정무수석 전화는 또 알아보고 받아보고 바로 전화를 하게 됐는데 대통령께서 참 소탈하게 말씀해주셔서 참 감사하고.

그리고 여야 협치 모델이라는 건 저희가 항상 얘기하지만 구체적인 성과가 나와야지만 국민이 감동할 것이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 대통령님과의 관계, 그리고 송영길 대표와의 관계에서 저만의 모델을 한번 구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뜬금없는 정보’였을지언정 이 대표는 웃고 있었다. 누가 봐도 ‘내가 대통령 전화를 지나칠 정도로 대단한...’이란 뉘앙스를 전하려는 의도나 태도가 엿보였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정보를 흘리며 과거 <썰전>에 함께 출연한 이 정무수석과의 친분까지 과시한 이 대표. 분명 협치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지만 또 다른 해석을 낳을 만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를 두고 김필성 변호사는 이 대표의 ‘엘리트주의’를 읽어내고 있었다.

▲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당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미디어 샤워’란 독, 그리고 한국정치의 미래를 위하여

“그런 엘리트주의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수준의 경험이 없는 한 자신의 성향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그런 충분한 경험을 하기 전에 당대표라는 어마어마한 지위에 올랐습니다. 사실 저는 그 자리가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이준석 대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단정적인 말을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당선되자마자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대통령의 축하전화를 무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에게는 대통령도 ‘전화 따위 무시해도 그만인’ 존재입니다. 역시 그가 엘리트주의자이기 때문이고, 이 사건이 제가 그를 엘리트주의자라고 재차 확신하게 된 이유입니다.”

김 변호사가 “그가 극단적인 엘리트주의자라는 것을 이번에야 정확히 알았습니다”라며 본인 페이스북에 이준석 대표와 관련해 적은 글 중 일부다. 김 변호사는 그간 대놓고 엘리트주의와 능력주의의 신봉자임을 자처해왔던 이 대표가 문 대통령의 축하전화를 무시한 것이야말로 ‘0선’이자 ‘-3선’이면서도 “그동안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 없”다는 증거라며 이런 전망을 내놨다.

“이준석 대표는 앞으로 주변 사람들을 싸그리(깡그리) 다 무시할 겁니다. 처음에는 말을 조심할 수도 있습니다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모두 자기 발아래 있는 무식한 것들이니까요. 자신 때문에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이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대한 확신도 매우 높을 겁니다. 이준석 대표는 국힘의 독재자가 될 겁니다.”

김 변호사의 전망이 맞을지 틀릴지는 앞으로 이 대표의 행보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사를 안 한다’거나 막말이나 말투, 태도에 대한 지적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독재라는 표현만 없었을 뿐 선거 기간 상대 후보들도, 선거 전후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익명을 요구한) 당 내 중진들이나 당원들, 지지자들까지도 수없이 제기해왔던 문제의 다른 버전 혹은 심화버전인 셈이다.

전 언론으로부터 ‘오세훈 당선’급 주목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행여 자리에 취해, ‘미디어 샤워’에 취해 냉정을 잃는다면 독재보다 더 한 사태를 자처할 수도 있는 일이고.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당 대선후보 선출 등 이제 곧 대통령의 축하전화를 무시했던 때가 좋았을 때라고 여길 만큼 지난하고 고난스런 과정이 펼쳐질 테니 말이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