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여, 무한한 ‘노오력’을 통해 실력으로 쟁취하라. 그것만이 ‘공정’에 다다르는 길일 테니. ‘이준석 돌풍’은 이렇게 속삭인다. 그 ‘실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공정’의 기준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묻지 않은 채 말이다. 이 돌풍이 얼마나 더 지속, 확산할지 아직 누구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한다. 다만 그가 다시 소환한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세계관을 넘어서는 대안적 세계를 정치가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 바람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 1366호 <시선② 이준석이 말하지 않는 것> 기사의 결론이다. 최근 여야 모두 주목하는 ‘이준석 현상’에 대한 갖가지 찬반 주장을 담은 분석기사였다. 사실 ‘능력주’의, ‘혐오정치’ 등 기존의 비판을 담은 이 기사보다 좀 더 흥미로운 쪽은 <시선① “이준석은 다르다”>는 평가를 담은 1편이었다. 

“이준석은 ‘와 이리 좋노’ 같은 일베에서 자주 나오는 용어를 자연스레 쓰곤 한다. 반페미니즘 노선의 극우 남성들까지 자기 편으로 끌어당기는 전략 같아 보인다. 다만 여성혐오를 조장하거나 극우 친화적 움직임을 보일 때는 나처럼 이준석을 지지하는 중도지향적 남성들이 떠나지 않을까 싶다.” (해당 기사 중 30살 은행원 ‘이준석’ 지지자)

▲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지난 4일 대전시 서구 괴정동 KT대전인재개발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한겨레21>은 해당 기사에서는 이러한 젊은 남성 지지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정치권 세대교체 분위기’, ‘기성세대의 기득권과 꼰대문화’, ‘정권교체 기대’, ‘이준석의 소통 및 정치적 능력’ 등 ‘이준석 현상’의 원인을 공을 들여 분석했다. 

‘이준석 현상’ 자체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안인지는 둘째치더라도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뛰어들거나 올라타고 있는 ‘이준석 현상’의 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기획이라 할 만 했다. 

이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다수 언론들이 역설적으로 진실을 드러내는 중이다. 지난 10년 간 ‘0선’이란 성적을 통해 이준석 후보 스스로가 정치인으로서 ‘능력 없음’ 혹은 ‘무능력’을 이미 확인시켜줬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그 언론들이 ‘이준석 현상’을 만든 것 아닌가하는 진실 말이다. 

자, 그리고 7일 의외의 인물이 그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날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는 이 후보의 발언을 근거삼아 ‘이준석 현상’에 대한 장문의 페이스북글을 쓴 판사 출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그 주인공이었다. 

‘친구들’ 길어 올린 이탄희 의원의 일침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이다. 서울법대를 나왔고 20대에 판사가 되었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학위를 받았고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 발령을 받았다. 여러차례 변협 우수법관으로 선정받았고, 특전사도 경쟁해서 들어갔다. 굳이 말하자면 참여연대 의인상, 노회찬 정의상도 표결해서 받았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내가 겸손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랬을까. 아니다. 그게 아니다. 

나에겐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큼 부모 잘 만나지 못한 친구들, 나만큼 건강하지 않았던 친구들, 나만큼 공부 잘하게 훈련받지 못한 친구들, 나만큼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없었던 친구들, 나만큼 시행착오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던 친구들, 나만큼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친구들,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날 기회가 없었던 친구들.” 

일정정도 자기고백적인 글을 통해 이 의원은 ‘하버드 출신’을 최대의 스펙으로 내세우는 이 후보와 본인과의 차이점을 명쾌하게 짚어냈다. 그건 바로 이 의원이 ‘친구들’이라 명명한 동년배 시민들을,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자신의 성취 전반에 대한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의원의 글을 좀 더 보자. 

“나만큼 행운이 따르지 않았던 친구들이 내 주변에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친구들이 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되었다. 그들과의 일체감이 나의 본질이다. 이들은 누구 하나도 남이 아니다. ‘이준석 현상’으로 표출되는 시대교체 열망은 반가운 측면이 있으나, ‘이준석’ 자체는 전혀 반갑지가 않다. 진보와 보수의 진검승부가 다가오고 있다고 느낀다.”

▲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학급당 학생 수 20명 법제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정확하다. ‘이준석 현상’은 그 자체로 정치공학적이다. 이준석 후보가 가리키는 가치관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청년정치’와 정반대 지향을 가리킨다. 이는 이탄희 의원이 적확하게 지적했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보든 열풍 자체에 올라타든 그 현상을 조명하는 이들의 멘탈은 어떠한가. ‘국민의힘이 무능하고 낡아 빠졌으니 이준석으로라도 닥치고 바꿔보자’가 전부 아닌가. 그런 점에서 검증 안 된 ‘윤석열 현상’과 일맥상통하는 교집합도 만만치 않아 보이고. 같은 ‘능력주의’가 기준이라면, ‘아빠 찬스’로 정치에 입문한 ‘0선’ 이준석 후보보다 본인 스스로 스펙을 나열한 이탄희 의원이 훨씬 더 검증된 ‘능력자’ 아니겠는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의 교훈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와 당심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요, 당심은 결국 이번 정권교체라는 큰 선거. 대통령 선거를 누가 제대로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정말 제대로 싸워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느냐. 이것을 당원들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여론조사는 분위기라면 당원 투표는 합리적 판단에 의한 선거일 것이고 그런 면에서 저는 당심이 빠르게 결집하면서 이준석 후보가 아닌 제가 당대표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나경원 전 의원의 말이다. 연일 ‘이준석 때리기’에 나선 당내 상대 후보의 검증이 때로는 진실을 가리킬 때가 적잖은 곳이 바로 정치판이다. ‘트럼피즘’부터 ‘능력주의’, ‘혐오정치’까지, ‘이준석 검증’에 나선 나 전 의원이 드물게(?) 옳은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작금의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 과정이다.   

이탄희 의원의 지적처럼, 정치공학을 걷어내고 본질에 천착할 때다. ‘이준석 현상’이 가리키는 가치가 한국의 정치를, 청년정치를 후퇴시키는지 아닌지를 말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 간 치열했던 검증이 대부분 사실이었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때다. 

▲ <이미지 출처=MBN 화면 캡처>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