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한나라당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던 2008년 6월 말. 당대표에 도전한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이 KBS라디오에서 진행된 ‘후보 간 생방송 토론’에 출연했다. 당시 공성진 의원은 “서민이 타고 다니는 버스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아나”고 물었다. 그해 4‧9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정몽준 의원의 재산 신고액은 3조6천43억원이었다. 정 최고위원의 답은 이랬다. 

“요즘은 카드로 탄다. 한 번 탈 때 70원 정도 하나.”

당시 버스요금은 1000원이었다. 70원과 1000원의 간극이 아득하지 않은가. 즉각 질타가 나오자 정 의원은 “버스 종류가 여러가지 있지 않나”라고 둘러댄 뒤 “일반버스 요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서민 물가를 알아보기 위해 재래시장에서 물건도 사보고 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답했다. 

여론의 뭇매가 쏟아진 건 당연지사. 당시 <중앙일보>는 <정몽준 “버스비 70원 하나?” “버스요금 잘 몰라” 해명> 기사에서 “서민의 고통을 함께한다는 정몽준 최고위원은 버스비 요금도 제대로 몰랐다”, “정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한나라당=부자당 공식이 성립한다”, “강남에 아파트가 없어서 ‘강부자’가 아니라더니 버스를 타지 않아 버스비도 모른다고 하는 것인가?” 등의 비난 여론을 소개하기도 했다. 

▲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버스요금도 몰랐던 ‘재벌가’ 출신 당 대표 후보가 활약하던 그때,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이 이끌고 있었다. 돈이 너무 많아 100원, 1000원 가량의 푼돈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었던 ‘국회의원 정몽준’의 논란에서 당시 같은 당 오세훈 시장을 무얼 배웠을까.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그 전직 시장이 다시 서울시를 맡겠다고 나섰다. 헌데, ‘정몽준 버스비 70’ 논란으로부터 별반 배운 게 없는 듯 하다. ‘산업부 파일명 v1.1.hwp’를 두고 “vip(대통령)뜻하는 것”이라고 우기면서 여론을 집중시키는 신박한 선거전을 펼치는 걸 보면. 

짧은 유감, 긴 낙인효과 

“버전으로 보는 게 맞다는 의견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부분은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저의 입장에 혼란을 초래한 결과가 되어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원전대북지원에 관한 저의 입장, 즉 대통령께서 직접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 달라는 요청은 변함 없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이 이 문서의 보고를 받았느냐 여부이기 때문입니다.”

2일 하루 조롱의 대상이 된 ‘V논란’을 두고 오 전 시장이 뒤늦게 내놓은 입장이다. 이러한 사과 아닌 사과 같은 유감 표명에 차라리 깔끔하게 실수를 인정하라는 비판들이 줄을 이었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때아닌 ‘v. 논란’, 국민 여러분께 큰 웃음을 드리기 위한 공개 코미디입니까”라며 논평을 통해 이렇게 비꼬았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v. 논란’, 이 정도면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인지 코미디언 지망생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가짜뉴스 북풍 공작을 향한 국민의힘의 무리수, 이제 제발 좀 멈추십시오.”

▲ <이미지 출처=MBC 화면 캡처>

심지어, 이 같은 명백한 실수를 ‘팩트체크’해 준 친절한 언론도 있었다. <뉴스톱>은 이날 <원전문서 제목 v가 대통령을 뜻한다는 오세훈>이란 ‘팩트체크’ 기사에서 “뉴스톱은 산자부 공무원이 삭제한 파일의 ‘v’가 ‘vip’, 즉 대통령을 지칭한다는 오 전 의원의 주장을 ‘전혀 근거 없음’으로 판정한다”며 이런 근거를 제시했다. 가히 ‘팩트체크’를 가장한 고도의 돌려까기가 아닐 수 없었다. 

“뉴스톱은 파일 삭제 산업부 공무원의 공소장에 첨부된 범죄일람표 및 일람표에 표기된 파일을 모두 검토했다. 그 결과 파일명의 'v'는 대통령을 지칭하는 vip의 축약어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수정됐음을 알리는 version의 줄임말임이 명확해 보인다.

오 전 의원은 ‘흔히 대통령을 vip라고도 칭해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것 외에는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범죄일람표에서 제시된 파일명을 모두 살펴본다면 ‘v’가 vip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 ‘성폭력’ 대응 문건 지침 충실히 이행한 오세훈 

‘오세훈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단 한번이라도 이리 시원한 웃음 준 적 있더냐...’

이날 하루 오 전 시장을 향한 조롱과 각종 패러디가 이어졌고, ‘오세이돈’과 같은 과거 서울시장 시절 실책들도 다시금 회자됐다. 오 전 시장의 페이스북은 ‘성지순례’가 이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 전 시장은 페이스북에 ‘40대 이하 연령층에서 상대적으로 (나경원 후보보다) 우세’하다는 등 프레임 전환을 위한 게시물들을 연달아 올리고 있었다. 3일엔 서울시와 부산시의 성폭력 예방교육을 지적하고 나섰다.  

“젠더 특보까지 두고 페미니스트 시장을 자처했던 박원순의 서울시가 직원들의 (성폭력 예방) 의무교육 이수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시장 본인의 성범죄에, 지난해 7월 8일 박 시장이 피소된 이후에도 서울시 공무원 2명이 성 비위 사건에 연루돼 정직 처분을 받았다니 원인 없는 결과 없고, 이 무감각한 인식에 한숨만 나옵니다.”

▲ <이미지 출처=오세훈 전 서울시장 페이스북 캡처>

이걸 어쩌나. 아무래도 오 전 시장 측근들은 뉴스를 제대로 챙겨보지 않는 게 아닐까. 전날 자당에서 논란이 된 사안조차 챙기지 않으니 말이다. 전날 국민의힘은 오는 4일로 예정된 대정부질문에 “답변자들에게 성폭행 프레임을 씌우라”는 지침이 포함된 ‘대정부질문 사전전략회의 관련’이란 당 내부 문건을 최근 배포한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샀다. 

해당 문건엔 “질문자 4인은 질문 시작부터 결론까지 일관된 프레임 씌우기 전략을 구사”하라는 내용과 함께 ‘반(反)기업, 반시장경제, 반법치주의, 성폭행’ 등 “프레임 씌우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용어반복과 이슈 재생산이 필요하다”는 지침이 포함됐다고 한다. 오 전 시장이 페이스북에 게재한 서울시와 부산시 성폭력 예방교육 관련 게시물이 바로 국민의힘의 관련 지침에 부응하는 내용인 셈이다. 

▲ <이미지 출처=전자신문 홈페이지 캡처>

눈치가 없으면 염치라도 있으란 말이 있다. 과거 정몽준 의원은 즉각 납득할 만한 사과라도 했다. 오 전 시장은 본인이 자처한 어이없는 실수에도 짧은 유감만을 표명했을 뿐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다. 

심지어 국민의힘의 ‘성폭력 문건’ 지침에 충실한. 이런 오 전 시장의 헛발질을 보며 누가 가장 크게 웃고 있을까. 상대인 나경원 전 의원 아닐까. 박시영 윈지코라이 대표도 3일 이런 분석을 내놨다.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이 사안은 메가톤급이다. 뒤늦게 오 후보가 유감표명을 했다고는 하나 파장이 오래갈듯하다. 전달하기 쉽고 알기 쉽고 오래 기억에 남는 유형의 이슈이기 때문이다. TV토론에서도 상대의 집중적인 공격소재가 될게 뻔하지 않겠는가.

시민의 일상을 전혀 모르는 후보에게 표를 주겠나? 시장직을 맡기겠나? 특히 정치에 관심적은 2030들도 이 내용을 접하면 뜨~악할만한 일이다. 정권 때리기에 너무 몰두하다보니 벌어진 측면도 있어 보인다. 뭐가 씌우지 않고서야...허허 참. 국민의힘 후보는 결국 나경원인가.”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