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태의 와이드뷰] 국내외 교수연구자 조직 성명과 이해찬의 ‘20년 집권론’
“(공수처법을 포함해) 그 많은 법들을 다 그냥 여당 단독으로 다 처리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민생법안 중에 제일 큰 게 생명안전법입니다. 생명 안전하게 만들라고 하는 이 법을 우리가 만들어달라고 하는데 그리고 벌써 국민들의 여론도 엄청 올라와 있고.
이 법을 만드는 데는 어떤 것보다 아주 중요한 거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국회의원들은 그렇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사실 명분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기업의 눈치 보느라고 그렇게 하지 않는지, 충분히 여당 단독으로 또 처리할 수 있는 건데 왜 안 하고 있는지 많이 답답한 상태입니다.”
28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인터뷰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을 이끌고 있는 김미숙 이사장의 호소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처리를 촉구하며 이날까지 18일째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김 이사장은 “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만 야당 핑계를 대느냐는 취지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위와 같이 답했다.
맞다. 정부여당과 언론의 관심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및 거취 등 사법개혁에 쏠린 가운데 무려 18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김 이사장처럼 사회 전반의 개혁을 촉구하며 이른바 ‘180석 거대여당’의 분발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커지는 형국이다.
같은 날 ‘개혁의 발걸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낸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도 마찬가지였다.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지식네트워크’)’는 이른바 ‘조국 사태’ 와중이던 지난해 가을 7,000명의 국내외 교수연구자들이 ‘검찰개혁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결성된 국내외 교수연구자 조직이다.
이들은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격동하는 현재의 시국을 맞아 보다 강력하고 근원적인 검찰/사법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며 “검찰총장 직무 복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거시적 개혁 진행은 흔들림 없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식네트워크’는 “검찰총장 거취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그동안 이룩한 검찰개혁의 성과를 제도적, 법적 차원에서 완성시키는 과제”라며 이를 한시바삐 마무리한 후 정부여당이 “정치, 경제, 분배, 노동, 언론, 교육, 남북평화 전 분야의 개혁단계로 신속히 진입할 것”을 촉구하며 아래와 같은 요구사항을 내놨다. 이 8가지 요구사항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포함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개혁과제들이었다.
교수/지식인들의 상식적인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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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넘는 요구사항이 검찰/법조/사법 개혁의 일환이었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일각에서 ‘검찰 쿠데타’라 비판하는 ‘윤석열 검찰’의 전횡에 대한 “한시바삐 마무리해야”한다는 당위가 반영된 요구라 할 수 있다.
특히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1심 판결 이후 검찰의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한 13가지 혐의 불기소 처리와 행정법원의 윤 총장에 대한 ‘징계효력 정지 결정’ 직후 한층 더 거세진 검찰/법조/사법 개혁의 여론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 중 ‘기소청 변경’, ‘전관예우 금지법 제정’, ‘재판 배심원제 전면 도입’, ‘고위직 판사/검사 유권자 선출제’는 기존 정부여당의 검찰/법조 개혁안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개혁안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같은 요구는 문재인 정부 들어 일부 시민사회에서 논의되던 개혁안이 좀 더 본격적으로 토론될 여지를 넓힌 것이라 주목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검찰/법조/사법 개혁과 함께 향후 개혁과제를 선명하게 제시한 것 역시 주목할 대목이다. 신속한 국회 처리가 요구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비롯해 향후 노동, 경제, 분배 입법은 물론 언론개혁과 통일 분야 역시 조속한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을 중심으로 현 정부의 레임덕 가시화가 제시되는 가운데 레임덕 주장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이야말로 거침없는 개혁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요구가 아닐 수 없어 보인다. 틀리지 않다. 작금의 검찰개혁이 시즌2를 맞은 것처럼 문재인 정부의 개혁 작업 역시 시민사회의 공감대와 함께 이제야 본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그리고, 이해찬의 ‘20년 집권론’
“보수가 너무 세기 때문에 20년 집권이 필요합니다. 제도정치권 딱 한 군데만 보수가 약해요. 220년 중에 210년을 집권한 세력이 보수입니다. 경제, 금융, 언론, 이데올로기, 검찰… 사회 거의 모든 영역을 보수가 쥐고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이렇게 균형이 무너진 나라가 없어요.”
최근 소셜 미디어상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인터뷰 중 일부다. 지난 9월 퇴임한 이 전 대표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정권 20년 집권론’을 재차 강조하며 한국사회의 보수기득권 세력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놨다. 현 정부를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가는 일부 ‘진보’가 참고할 만한 해석이었다.
“한국의 큰 역설입니다. 보수에 하도 시달리다 보니 역설적으로 국민의 정치의식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는 군이 나왔는데 1987년엔 못 나왔어요. 전국이 다 들끓으면서 군이 나왔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이길 수 있다는 경험, 폭력 없이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험을 하니 정치적 효능감이 올라갔습니다. 결국 대통령 탄핵까지 시켰잖아요.
1987년 6월항쟁부터 2016년 촛불까지가 하나의 흐름인 겁니다. 국민들 정치의식이 굉장히 높아졌기 때문에 다른 분야가 다 보수인 와중에도 제도정치만 섬처럼 예외가 되었습니다. 그것마저 없었으면 일본처럼 되었겠죠.”
이 전 대표는 결국 정치권력의 일시적인 교체만으로 한국사회 전체의 보수화를 막을 수 없고 기득권 카르텔의 해체 또한 요원하다는 진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20년 집권론’ 또한 그러한 개혁 작업의 일환이었고.
이 전 대표는 이어 “민주당이 이제는 집권세력인데도 아직 민주화 투쟁 중이라고 착각한다는 냉소”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정당이 밀려나면 다 밀려나는 것”이란 이 전 대표의 답은 작금의 ‘180석 거대여당’이 경청해야 마땅한 전망이었다.
“그렇지가 않아요. 경제, 사법, 언론 이런 곳이 민주화가 안 돼 있잖아요. 사회 제반 영역이 다 민주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강하고, 시민사회가 강하고, 언론이 강해져야 해요. 사회의 나머지 영역이 민주화되어 있으면 우리가 선거 한두 번 국민 선택을 못 받아도 사회는 회복이 가능해요. 지금은 제도정치 한 곳에서 정당만 섬처럼 있으니까, 노조·시민사회·언론이 다 취약하니까, 정당이 밀려나면 다 밀려나는 겁니다.”
28일 ‘지식네트워크’가 “대한민국 사회대개혁을 위한 전체 개혁진보세력의 총 단결을 호소하며, 동시에 정부여당에 강력히 촉구한다”며 내놓은 성명 또한 이러한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위한 고견인 동시에 이 전 대표의 전망과 일맥상통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식적인 요구에 과연 ‘180석 거대여당’은 무어라 답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실천적인 ‘액션’을 취할 것인가. 얼마 남지 않은 2021년의 과제가 명확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개혁의 끝이 아님을 안다. 신속히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 경제, 분배, 노동, 언론, 교육, 남북평화 전 분야의 근원적 개혁에 횃불을 높이 드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절박한 위기상황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생존권을 지키는 일, 자본권력의 전횡과 독주를 억제하고 혁신적 분배구조 개혁을 이루는 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통한 적폐 언론의 통제, 계층영속화의 도구가 된 현행 교육제도의 혁파, 지역·성별·인종·종교를 포괄하는 모든 구조적 차별의 철폐, 그리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위한 남북화해의 실행. 이것이 바로 촛불혁명이 성취한 민주공화국의 역사적 요구인 것이다!” (지식네트워크 성명서 중에서)
하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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